성경으로 세상보기
특집
건생주치의
건생가이드
건생캠페인
건강한 사람들
신앙클리닉
시론
문학
성경에 나타난 화병
  글·차한 (가천의과대학교 소아과 주임교수, 길병원 홍보실장 ㅣ E-mail : onecar@gilhospital.com)


1. 들머리

불(火)이나 열(熱)에 관련된 신체증상과 분노와 충동성의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화병(火病; hwa-byung; wool-hwa-byung)은 한국의 문화적 기반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질환으로 정의되고 있지만 사실 ‘분노 증후군(anger syndrome)’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의 상처’가 쌓이고 쌓인 결과 발생하게 되며 또 풀리지 않은 ‘한(恨)’이 자꾸 축적되고 장기화되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상반응을 나타내게 되는 질병이 바로 화병인데 인간이 지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에 대해 결코 침묵하고 있지 않는 성경에서는 이 화병의 근원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에서 첫 번째로 언급되는 단어가 바로 그 단어의 성경적 정의를 내리게 된다는 성경해석학적 원칙(the first mention principle)에 따라 조사해 볼 때 화(火; anger, angry, wrath, wroth)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는 곳은 창세기 4장이다.

2. 창세기 4장의 화(火)

1) 원인

“아담이 자기 아내 이브를 알매 이브가 수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주께로부터 남자를 얻었다, 하니라.”(창4:1)
가인(Cain)이란 말의 뜻은 “내가 그를 가졌다” 또는 “그가 여기 있다”인데 이로써 이브는 아마도 가인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메시아(창3:15)이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브가 또 가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을 지키는 자이나 가인은 땅을 가는 자더라.”(창4:2)
진화론적 사관과 달리 성경에서는 인류의 초기시대부터 농업과 축산업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아마도 처음에는 가인이나 아벨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보여 주셔서 그들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그대로 행하며 자기들에게 전수해 준 하나님의 방법(창3:21)을 따라 피 헌물(blood offering)로 제사(祭祀)를 드렸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가인은 땅의 열매 중에서 헌물을 가져와 주께 드렸고 아벨도 자기 양 떼의 첫 새끼들과 그 기름 중에서 가져왔더니”(창4:3,4상)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고 인간의 관점에서 더 멋있게 보이는 인본주의 방법으로 곧 자기의 손으로 노력한 결과인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했다. 반면에 아벨은 계속해서 약속의 말씀에 따라 믿음을 갖고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제물로 드렸다(히11:4; 히9:22; 요1:29). 즉 가인의 제물은 죽은 종교적 헌물이었지만 아벨의 제물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드리는 믿음의 헌물이었다.

“주께서 아벨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가지셨으나 가인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갖지 아니하시므로”(창4:4하,5상)
어떻게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물을 받으시는지 또는 거절하시는지 알 수 있었을까? 정확하게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성경의 다른 곳들로부터 추정해 볼 수 있다. 즉 기드온, 엘리야, 다윗, 솔로몬 등이 하나님께 응답 받은 사건들(삿6:21; 왕상18:38; 대상21:26; 대하7:1)의 예를 볼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물이라면 불(火)에 의해 살라졌을 것이다.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서든지 아니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고 있던 그룹들(cherubims)의 화염검(火焰劍; flaming sword)에 의해서든지 아벨의 제물은 살라졌을 것이고 가인의 제물은 살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2) 증상

“가인이 몹시 분하여 침통해하니”(창4:5하)
가인의 분노는 바로 자존심(pride)의 상처에 기인하고 있다. 아마도 공개적으로 동생인 아벨과 비교가 되었을 터인데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화병(火病)의 한 증상으로서 안색이 변하였고 또 그 외에도 각종 증상들 곧 가슴이 답답함, 치밀어 오르는 눈물, 진땀, 불면, 신체열감, 한숨, 긴장 등의 신체 증상과 속상함, 억울함, 분함, 화남, 증오 등의 감정이 솟구쳤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영적 교만과 위선이 드러나자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계속 품으면서 분을 내고 있는 가인에게 하나님은 부드럽게 다가가시며 경고를 하신다.

“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분을 내느냐? 어찌하여 침통해하느냐? 네가 잘 행하면 어찌 너를 받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네가 잘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니라.”(창4:6,7)
물론 하나님께서는 답을 알지 못하셔서 질문하신 것이 아니셨다. 단지 가인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멈추시기를 원하셨다. 시기, 질투, 미움, 증오, 살의 등의 감정적 변화가 한 스펙트럼(spectrum; 全域)을 이루면서 죄가 드러나고 쌓여 가는 악의 고리를 끊어 버리길 바라셨다(요일3:15, 엡4:26,27).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죄의 파괴적인 능력에 대해 경고하셨는데 가인은 죄에 대항함으로 복을 받을 수도 있었고 죄에 빠져 몰락할 수도 있었다.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과 이야기를 하니라. 그 뒤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일어나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니라.”(창4:8)
그때까지 어떤 인간도 죽거나 살해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가인은 동물들이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살육되는 것을 수없이 봐 왔을 것인데 결국 아벨을 같은 방식으로 없애 버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가인의 행위가 무서운 것은 살인이라는 결과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사전에 계속해서 살인을 묵상해 왔었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한 때 대속자(代贖者; redeemer)로서의 희망을 가지게 하였던 가인은 마침내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

“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이니까? 하매”(창4:9) 
하나님께서 아벨이 어디 있는지 모르셔서 이러한 질문을 하신 것이 아니라 가인이 자기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물으신 것이다. 그런데 가인의 거짓된 대답은 하나님 앞에 전혀 소용없는 변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속이며 하나님에게 죄를 숨길 수 있겠는가? 가인은 형(兄)으로서 동생을 지켰어야 했는데 오히려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살인의 동기는 영적 질투심인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유1:11; 딤후3:5).

3) 예후

“주께서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동생의 피 소리가 땅에서 내게 부르짖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동생의 피를 받았은즉 이제 네가 땅에게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땅을 갈아도 이후로는 땅이 그 효력을 네게 내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땅에서 도망하는 자가 되고 방랑하는 자가 되리라, 하시매”(창4:10-12)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한다는 개념은 성경에 반복하여 나타나고 있다. 살인자로 인해 더럽혀진 땅은 살인자가 처벌을 받아야 깨끗하게 된다(민35:29-34). 아담이 타락하여 저주를 받은 것 이상으로 농부였던 가인은 땅에서 아무런 소득을 얻을 수 없게 되었으며 또 아담이 죄로 인해 에덴에서 쫓겨난 것과 달리 가인은 땅의 어떤 곳에서도 안식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가인이 주께 아뢰되, 내 형벌이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크니이다. 보소서, 주께서 이 날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얼굴을 떠나 숨으리이다. 내가 땅에서 도망하는 자가 되고 방랑하는 자가 되리니 나를 찾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런 까닭에 누구든지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배로 보복을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標)를 주사 아무도 그를 찾아 죽이지 못하게 하시니라.”(창4:13-15)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알 수 있는 표를 가인에게 주셔서 가인을 보호하셨다. 그러나 가인은 자기의 죄에 대하여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받은 벌에 대해서만 하소연하고 있다.

“가인이 주의 눈앞을 떠나 에덴의 동쪽 놋 땅에 거하더라. 가인이 자기 아내를 알았더니 그녀가 수태하여 에녹을 낳으매 가인이 한 도시를 세우고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 그 도시의 이름을 에녹이라 부르니라.”(창4:16,17)
가인은 자기의 수많은 여동생 (혹은 조카나 사촌) 중의 하나와 결혼을 하였을 터인데 당시에는 인간의 유전자 풀(gene pool)이 순수하여 근친 결혼이라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두사엘을 낳았고 므두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실라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는 자들과 가축을 치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동생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하프와 오르간을 다루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었더라. 실라도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놋과 쇠로 된 것을 만드는 자들을 가르치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더라.”(창4:18-22)
가인의 후손들이 급속도로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자 도시가 생겼고 건축, 음악, 미술, 금속 등의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가인부터 시작하여 여섯 번째 세대인 라멕(Lamech)은 ‘정복자’란 뜻을 갖고 있는데 역사상 최초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부일처(一夫一妻)를 거슬린 자이다. 아울러 두 부인과 딸의 이름들(Adah = 쾌락, 장식; Zillah = 그늘; Naamah = 귀여움)에서 유추해 보건대 라멕의 문화는 육적이며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실라여 내 음성을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내가 상처를 입었으므로 남자를 죽였고 내가 다쳤으므로 청년을 죽였음이라. 가인을 해치는 자가 일곱 배로 보복을 받을진대 참으로 라멕을 해치는 자는 일흔일곱 배로 받으리라, 하더라.”(창4:23,24)
가인의 때에 비해 라멕의 때는 그 타락과 죄악의 정도가 더욱 심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인본주의가 라멕의 시대와 같은 인류 초기에서부터 창궐하고 있는데 라멕은 자기의 살인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마땅히 가인보다 더 보호하실 것이라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있다. ‘나의 상처(my wounding)’와 ‘나의 다침(my hurt)’이란 표현은 양심과 감정에 상처(火)를 받은 상태를 말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가인이 살인 전에 소유했던 내면의 상태가 라멕에게서 증폭된 것이라 여겨진다. 즉 가인에서부터 시작하여 라멕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화(火)와 죄(罪)와 그 결과들이 반복되면서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4) 회복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를 알매 그녀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이르기를,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하나님께서 내게 다른 씨를 정해주셨다 하였음이더라. 셋에게도 아들이 태어나매 셋이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더라.”(창4:25,26)
아담과 이브가 낳은 수많은 자녀들의 이름은 기록이 되지 않았지만 유독 셋(Seth)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통로가 되기 때문에 그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비록 사악한 시대이지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롬10:13).

3. 창세기 4장의 그리스도

1) 아벨의 관점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도 아벨의 제물처럼 열납하셨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가인도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동생 아벨도 죽지 않고 형제가 사이좋게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바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사항과 하나님의 뜻이 상충될 때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의 바램을 포기하고 아벨처럼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2) 그리스도의 필요성

하나님께 열납되는 제물을 드렸던 아벨도 근본적으로는 죄를 용서받아야 될 필요가 있는 죄인이었다.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오게 된 죄의 영향력이 너무나 커서 어떤 사람도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다(롬3:23; 5:12).
오직 하나님께서만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밖에 없어서 하나님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마자 구원자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창3:15)하시면서 또한 그 구원의 방법(창3:21)도 알려 주셨다.
즉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영원한 진노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요 유일한 구원의 방법인 것이다(롬5:8,9).

3) 그리스도의 피

아벨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믿고 어린양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양의 첫 새끼’를 잡아 그 피를 흘리며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인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통해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계시하셨다.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양을 속죄 제물로 바쳐 그 피가 흘려지도록 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족속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이 방법을 계시하셨다. 노아의 장남인 야벳의 후손이 중국 땅에 들어와 살면서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를 열었을 때 황제의 사관인 창힐(蒼吉頁)이 만든 상형문자인 한자 속에도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수 있는 제사의 방법이 잘 나타나 있다.
한자어 제(祭)를 살펴보면 육(肉) + 우(又) + 시(示)와 같이 셋으로 구분되는데 양의 고기(肉)를 잡아 또 다시(又) 하나님(示: 한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인격으로 우리에게 드러나 보이심)께 드리는 것이 진정한 제사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義)롭다고 인정받는 것도 한자어 의(義)를 살펴볼 때 그 구체적인 방법을 잘 알 수 있게 된다. 의(義)는 양(羊) + 손(手) + 창(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곧 어린양(그리스도)을 손으로 잡고 창으로 찌를 때 흘러나오는 피(血)로써만 모든 죄를 씻음 받고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이다(롬5:9; 히9:12,22; 요일1:7).

4) 가인의 관점

요즈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방식을 용납하지 않으신다고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희생제물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뭐하러 예수님을 꼭 통해야 하느냐? 직접 하나님께로 가겠다. 나는 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다.”고 많은 이들이 주장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그렇다. 우리는 가인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리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4. 마무리

영화 ‘에덴의 동쪽’이나 소설 ‘카인의 후예’ 등을 통해서도 창세기 4장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갈등(火)과 관련된 이 가인의 스토리는 인본주의 작가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소재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들이 그 안에 내재된 진리를 왜곡함으로써 우리에게 심각한 영적 침해를 끼치고 있다. 즉 역사적 사실을 하나의 재미난 허구(fiction)로 변형시키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믿음을 좀먹기 시작하여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율법적이며 잔인한 하나님으로 바꿔 놓아 결국은 우리의 죄악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또한 창세기 4장에 나타난 (내면의 죄를 포함한) 죄를 기독교계 내에서조차 죄(罪)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고 대신 하나의 병(病)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즉 애통하며 회개하여야 할 죄(罪)가 심인성 질환(心因性 疾患; 잠15:13; 잠17:22)의 영역으로 전락해 버리기도 하는데 창세기 4장에서는 분명 화(火)와 죄(罪)가 동전의 앞뒤 면이며 죄(罪)는 회개하고 다스려야 하는 것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화(火)가 날로 솟구치며 죄(罪)가 나날이 증폭되고 있는 이 마지막 세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寶血)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사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롬3:25)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롬5:9)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화평을 이루사 모든 것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기 때문이니라.”(골1:20)





[Copyright ⓒ 건강과 생명(www.healthlif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컨텐츠 사용 문의 및 저작권 문의


Untitle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