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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농사' 농부
  글·김종철 (충남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뉴 셀프 상담연구원 신실회 대표. 늘사랑교회. ㅣ E-mail : )
“어이구 힘들어. 다 그만 두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고 싶어.” -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실지로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듣기에는 너무나 거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굳이 전업 농부나 농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주말 농장에 다녀보거나 자그마한 텃밭이라도 가꿔 본 사람들 역시 그런 말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농사 좋아하네. 농사가 무슨 애들 장난이야? 아무나 농사하는 줄 알아? 농사짓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런 각오로 이미 하고 있던 자기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그래. 땅 파고 밭가는 수고의 절반만 투자해도 먹고살 걱정 없고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올해 늦봄에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빈터를 빌려서 마음 맞는 몇 사람끼리 작은 텃밭을 가꾸기로 합의하였다. 먼저 척박한 땅을 삽과 곡괭이로 파서 갈아엎었다.

돌덩어리와 자갈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그건 약과였다. 비닐을 비롯한 생활 쓰레기와 시멘트, 나무 조각 등 건축 폐기물들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에서 손을 털고 일어설 우리들이 아니었기에 비지땀을 흘리며 땅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모두들 힘들어하기에 다음 주말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종묘(種苗)에서 비료를 사들고는 그 다음 주말에 다시 만났다. 어느 정도 땅이 정리가 된 뒤에 그 땅을 다시 깊이 파서 듬뿍 시비(施肥)하였다.

세 번째 주말에는 양쪽에 골을 파서 두렁[둔덕]을 만든 후에 시골 장터에서 구입한 ‘가운데 구멍들이 송송 뚫린 비닐’을 길게 덮어 주었다. 씨를 뿌리기에는 이미 늦은 시기라 모종을 구매하기로 하였다.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고추, 상추, 고구마, 방울토마토, 치커리 등이 비교적 재배하기 쉽다고 했다.

금요일쯤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종묘상(鐘苗商)에 가서 야채 및 과일 모종을 사 왔다. 네 번째 주말에는 그 전 주에 만든 둔덕을 다시 정비한 후에, 비닐 덮개 사이사이에 나 있는 구멍을 통해 꽃삽으로 흙을 파서 모종을 하나씩 심어주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도 할 일은 잔뜩 남아있기만 하였고, 또한 심는 것만으로 일이 일단락 되는 게 결코 아니었다. 직장 생활하면서 주말마다 만사를 제쳐놓고 이 텃밭으로 달려와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 되었는데, 텃밭에 와보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비나 바람에 쓰러진 모종을 세워 주고, 우리가 없는 사이에 흘러내린 흙을 모종 주위에 다시 퍼 옮겨 꼭꼭 눌러 다져주어야 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더 어렵고 골치 아픈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비닐 안이 마치 온실처럼 되어서 그런지 온갖 잡초가 자라서 모종들의 발목을 욱죄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농사 초보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

엉터리 농부들이 중지를 모아 비닐 커버를 뚫고 그 속의 잡풀들을 일일이 파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일이 얼마나 섬세한 손길과 중노동 및 장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모두들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다보니, 여기 저기에서 “어이구 허리야!”, “다리가 아파 죽겠네”, “땀은 왜 이렇게 많이 흘러?”, “어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등등의 불평과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시작된 ‘잡초와의 전쟁’은 끝이 없었다.

주말마다 쪼르르 텃밭에 와서 기껏 하는 일이라고는 온실 같은 비닐 안에서 기세 등등하게 자리잡고 있는 잡초를 뽑아내고, 두렁과 두렁 사이의 골에 번지기 시작한 잡풀도 제거하고, 막대기와 비닐 끈으로 고추 지지대를 만들어 주고, 개울가에서 물을 떠와서 자라고 있는 밭작물에 듬뿍 물을 주고, 달려드는 새들을 쫓아내는 등의 일이었다.

뿌리째 뽑아도 어느새 또 자라고 있는 풀들을 보고 ‘잡초 근성’이란 게 어떤 것인지 뼛속 깊이 실감을 하게 되었다. 비가 많이 오면 농작물이 비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고, 땡볕이 쨍쨍 내리쬐고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으면 가물어 타 죽지나 않을까 하고 우리네 농작물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어느새 날씨 걱정을 하는 ‘초보 농사꾼(?)’이 되어버렸는가 생각하면서, 서로를 향해 쓴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코딱지 만한 텃밭’을 가꾸느라 겁없이 달려든 초보자들에게 항상 괴로운 일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 흙 냄새를 맡으며 밟아보는 땅의 포근한 촉감, 새들의 합창과 주위 푸른 산들의 멋진 정경 등은 도시에서 돈으로도 도저히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어느새 자라버린 상추, 고추, 방울 토마토, 토마토, 치커리 등을 따서 집에 가져와 흐르는 물에 씻어 먹을 때의 그 맛과 그 기쁨은 가히 전율적이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텃밭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돌팔이(?)’ 농사꾼의 어설픈 밭농사 체험기로 독자들을 한 번 웃겨 보려는 데에 있는 게 아니다. 씨나 모종을 옥토의 지정 장소에 잘 뿌리거나 심고 온갖 정성, 시간, 정력, 노동, 정보 등을 집약하여 사랑으로 잘 보살펴야 하는 총체적인 과정이 농사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말하려는 데에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농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식 농사’라고 우리 선조들은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손바닥만한 땅에 야채란 것을 심어봐서 농사가 얼마나 복잡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체득한 나이기에, ‘자식 농사’의 중요성을 갈파한 우리 조상들의 말이 얼마나 진솔한 경험과 심오한 지혜에서 비롯된 말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자식을 머나먼 외국에 유학 보내고 늘 노심초사()하는 나로서는, 내가 ‘자식 농사’를 계속하고 있는 ‘자식 농사 농부’란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가물고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고 한파가 몰아치고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마다 재배한 농작물과 농토를 걱정하는 농부처럼, 일년 내내 사시사철 아니 매일 매순간마다 자식 생각과 자식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찬 게 부모인 우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년 대학에 진입하는 다른 부모의 자식들을 정성껏 자격 갖춘 제자로 키워내고 대학 병원에서 수련의들을 최선을 다해 훈련시키고 있지만, 정작 내 자식을 제대로 키우는 데에는 전혀 자신이 없음을 정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자식 농사를 하는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고백일 것이다.

날이 갈수록 ‘원하지 않은 임신’이 많아져서 애꿎은 생명이 산모의 자궁 속에서 인위적으로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남자가 함부로 흘리지 말아야 할 게 눈물이나 소변뿐만이 아닐 터인데도 생명이 담긴 씨를 일회용품처럼 아무데나 흩뿌려 버리고, 또 아무 씨나 가리지 않고 마구 받아들이는 쾌락만능의 풍조가 10대들에게까지 만연하고 있어 큰 걱정이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신생아들이 누군가의 집 앞에 버려지고, 정체성이 없는 사생아들이 부모 사랑 모르고 어둡게 자라 방황하는 일이 증가하니, 의사이기 이전에 다 큰 자식을 둔 부모의 한 사람으로 위기의식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남의 자식은 몰라도 배 아파 낳은 내 자식만큼은 정식 결혼 후 부모가 될 때까지 조신하게 행동할 것이라는 꿈이 산산이 부서질 확률이 더욱 많아지는 게 요즈음이다.

우리가 자격 있는 ‘자식 농사 농부’가 되려면 “인간의 성적 연합은 분리와 고독의 벽을 뛰어넘게 하고, 편견과 반목을 융합시켜 온전하게 하며, 인생의 편린들을 결집시켜 새로운 존재로 통합한다(George Cornell)."라는 점을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을 통해 직접 보여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그들이 부모가 될 때, 우리에게서 보고 듣고 자란 대로 자식 농사를 제대로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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