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성,성 칼럼
특집
건생주치의
건생가이드
건생캠페인
건강한 사람들
신앙클리닉
시론
문학
아픔까지 품는 사랑
  글·김종철 (충남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뉴 셀프 상담연구원 신실회 대표. 늘사랑교회. ㅣ E-mail : )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촌의 각 나라에 “몸짱”과 “얼짱”시대가 도래한 지 이미 오래이다. 평소에도 그렇긴 하지만 특히 방학이나 졸업 혹은 취업을 앞 둔 시즌에는 성형 수술이 불티가 나니 말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의 성형외과도 예외가 아니다. 성형 수술을 받는 연령도 대학생과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중년, 중학생, 초등학생, 그리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며, 여성 전유물이던 성형 수술이 남성에게까지 확대된 것도 어제오늘이 아니다.

여대생을 상대로 실시한 어떤 설문 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 여대생의 반 수 이상이 성형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는데, 이들 중 70%가 또 다른 부위의 수술이나 동일 부위의 2차 수술을 원하더란다.

이런 소위 ‘성형 중독자’들은 일주일에 세 시간 이상을 성형 수술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이나 정보지 등을 서핑(surfing)한다고 했다. 성형 수술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 몇 차례 후속 수술을 받다가 부작용까지 생긴 것을 비관한 나머지 자살을 한 여대생도 있었다고 하다.

뚱뚱한 사람에 대해 ‘밥맛이 (떨어진)다’, ‘짜증난다’, ‘화가 난다’, ‘(그 사람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둔해 보인다’, ‘게을러 보인다’, ‘더럽고 지저분해 보인다’, ‘(자기 관리의) 의지가 약해 보인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바보 같다’, ‘성질[성깔]이 못된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뚱뚱하거나 못 생긴 사람은 아예 용서할 수 없다’라고 스스럼없이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내뱉는 젊은이들이 수두룩한 우리 사회이다.

살이 찌거나 외모가 ‘유행하는 사회적 기준(?)’에 비해 좀 떨어지는 사람들은 아예 죄인 취급을 당해 ‘왕따’를 당해도 할 말조차 없을 때가 많다.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취업 전선에서조차 실력이나 교양 혹은 인품보다 미모가 더 우대를 받는 실정이니, 실업[혹은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여고생[심지어는 남학생]들이 면접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성형외과에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 물가 상승과 구조 조정으로 하루하루를 불안과 공포 속에서 지내는 부모들조차도 자기 자녀의 취직이나 결혼을 위해서는 이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일 게다. 찾아다니며 대출해 주겠다고 설쳐대는 금융권에서 빚을 얻어서라도 성형외과 의사를 찾아 자기 자녀의 장래를 부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사회 전체가 “몸짱”및 “얼짱” 열풍에 빠져 정신도 못 차린 채 중병의 악순환 고리를 반복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적지 않은 비용의 경제적 부담(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성형 수술)과 통증(아무리 마취를 한다고는 하지만 수술 후에는 고통이 있기 마련) 및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비밀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형외과 앞의 장사진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몸매’를 갖기 원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신체적, 심적 통증쯤이야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또 어떤 아픔이나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되고 싶어 하는 “몸짱”과 “얼짱”의 환상 앞에는, 어떤 장애물도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구와 열의는 참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없다. 어떤 면에서는 진지하고 고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몸짱”과 “얼짱”이 성격이나 인격, 인생관이나 도덕관, 교양이나 실력보다 더 중요시되는 사회 풍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더더구나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는 그 “몸짱”과 “얼짱”의 성형 수술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자기 배우자를 위하고 또 배우자와 합의한 상태에서 자기 자신의 ‘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없애기 위해 실시된다면, 의사이기 이전에 한 남자요 한 여성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인 나로서도 대찬성이다.

자기 배우자가 전혀 동의하지 않는데 성형 수술을 고집하는 것은 사회적, 가정적, 개인적으로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 같다. 남들이 다하니까, 비교와 경쟁의 대열에 서기 위해, 자기 마음에 드는 (배우자가 아닌) 어느 누구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해, 주부 생활이 지겨워 가정에서 탈출하여 쉽게 돈 버는 직장 생활(예를 들어 퇴폐 노래방 도우미)을 해보기 위해 등등의 이유로 성형 수술을 받는 것은, 자녀들에게도 좋은 본이 되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남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자기만의 열등감이나 늙어감의 두려움에서 탈피하는 것만이 자기의 살길이기에 수술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까지 말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남들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는 강박 관념을 탈피할 방도가 필요하기에 말이다.

결혼한 부부가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처녀 총각 때의 몸매를 유지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도저히 불가능하기까지 한 일일 지도 모른다. 아무리 불경기라고 해도 요즈음처럼 (배고파 굶어 죽기까지 하던 옛 시절과 비교할 때 평균적으로) 살기가 좀 낳아진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결식아동과 끼니를 걱정하는 노숙자의 수보다는, 뒤룩뒤룩 찐 살을 빼느라 다이어트, 헬스(health), 웰빙(well-being)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이니 말이다. 자기 자신의 건강과 배우자의 만족을 위해 강한 의지를 요하는 식사 조절과 운동으로 몸매를 조절하는 것은 대환영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건전하고 생활 습관이나 사고방식 및 생산적인 정신 자세로의 과감한 전환을 위한 부단한 노력 없이, 성형 수술을 수동적으로 받는 것 하나만으로 지금까지의 자기 인생에서 역전(逆轉) 홈런을 치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오랜 삶을 같이 보낸 부부의 ‘사랑’에 대한 개념은 청소년 때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고, 또 결혼 연륜 만큼 달라져야 마땅하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연애 시절에는 자기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외모와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말 및 절도 있는 에티켓에 반해 사랑에 빠졌을지 몰라도, 기혼 부부로 한 이불 덮고 잠자며 살다보면 ‘사랑’이란 게 결코 시청각적인 매력이나 지위 혹은 재력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점차로 체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자기의 기준에 맞게 살도록 강요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존재가 더 커지도록 돕는 것, 즉 배우자의 존재 영역 확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존재 영역을 확장시키면 자신의 존재 영역도 확장되지만, 자기중심적으로 상대방의 존재 영역을 축소시키면 자신의 존재 영역도 좁아지니 말이다. 굳이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저술가인 스콧 펙(M. Scott Peck)의 저서『아직도 가야 할 길(The Road Less Travelled)』을 읽어보지 않아도, 이런 사실을 둘이 살아가면서 점차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둘이 무조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아픔까지 공유하는 공통분모와 각자 고유 영역의 직경을 넓혀 가는 것이어야 하기에 말이다.

아직도 우리 인생에는 “끝나지 않은 길”이 남아 있다. 가정과 직장 및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고통과 문제를 피하지 말고 정면 대결하면서, 그대로 수용할 것은 인정하고 고쳐야 할 것은 갱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함께 갈 길이 아직도 먼 인생 여정에서, 사랑이란 상대방의 아픔을 통째로 껴안기까지 상대방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이어야 한다. 왕년의 가수 남진의 가요 히트곡 “가슴 아프게”처럼, 자신의 아픔을 감내하면서까지 “가슴 아프게” 배우자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이 사랑과 자유를 향유할 진정한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Copyright ⓒ 건강과 생명(www.healthlif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컨텐츠 사용 문의 및 저작권 문의


Untitle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