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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가 되는 말
  글·김종철 (충남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뉴 셀프 상담연구원 신실회 대표. 늘사랑교회. ㅣ E-mail : )
무대는 중세 프랑스. 남편이 생일 선물로 준 말을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부인이 있었다. 남편이 가르쳐 준 고급 승마법(乘馬法)을 익혀 남편과 함께 호젓한 시골길을 달리는 것은 그녀가 결혼 생활 후반기에 늦게나마 새로 발견한 큰 기쁨이었다.

그 부인이 승마를 하기 이전의 상황은 지금과는 달리 너무나 삭막하였다. 주말이나 휴일만 되면 사교 클럽 회원들과 어울려 새벽같이 승마하러 집을 나가버리는 남편이 그녀에게는 야속하기만 하였다.

바깥으로 나도는 남편을 마냥 포기하고 살 수만 없어서, 궁리하고 궁리하던 중, 마침내 이 아내가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집에 없는 동안 몰래 승마 개인 레슨을 계속 받은 후, 늦은 시간에 집으로 말을 몰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말 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상대로 “아내란 자고로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들만 잘 키면 되지 무슨 승마냐?”라고 호통을 치고 비아냥거리던 남편이었지만, 어느새 아내의 애교와 끈질긴 작전에 스르르 말려들기 시작하였다.

“말을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고 말타기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왜 그래? 승마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말 탈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말을 타다가는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죽기도 한다는 것도 몰라? 저녁마다 웬 성화냐? 다 늙은 아낙네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말을 탄다고 난리야? 이 극성에 내가 못 살아, 못 살고 말고.

그럼 어디 한 번 타보기나 해봐. 말 등허리에 올라갈 수만 있다면 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뭐.”라는 남편의 말이 드디어 떨어졌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말인가! 아내는 남편 앞에서 유유히 말안장에 올랐다. 이 날을 위해 갈고 닦은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귀부인의 기품이 넘쳐나도록 말이다.

“어어, 이 여편네 봐라. 말 타는 폼이 제법인 걸. 언제 이런 걸 다 배웠지? 대단하구먼.” 남편의 놀람에 놀랄 아내가 아니었다. 이미 예견된 반응이 아닌가.

“이거 보통이 아닌데, 그럼 어디 한 번 달려보기나 해!” 남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당당하게 달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남편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이렇게 해서 남편과 나란히 승마를 즐기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아내는 이내 사교계의 꽃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이런 행복에 제동이 걸리는 일이 생기고 만 것이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던 애마(愛馬)가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은 이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한 가족 이상으로 정성을 쏟아 돌보며 소중히 여기던 말을 잃은 부인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지는 듯 아프기만 하였다. 다시는 말을 타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남편과 같이 즐기려는 승마의 부푼 꿈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애마를 잃은 아내의 모습을 보는 남편의 마음도 착잡하기만 하였다. 부부가 함께 말을 산에 묻고 내려오는 날, 부부는 모처럼 속내 대화를 밤새도록 나누게 되었다.

오랜 부부 생활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 속 깊이 간직하기만 하고 나누지 못했던 긴 말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된 것이었다. 말(馬)을 잃고서 되찾은 말(言)!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말(馬)보다도 더 귀한 말(言)을 되찾은 부부는 오랜만에 부부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잊어버린 지 오래된 성관계이어서 신혼 초야처럼 서툴고 어색하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첫날밤의 순정을 되찾은 것 같아 더 감격스럽기만 하였단다. 까마득하게 잊고 살아왔던 결혼의 진미를 되찾은 값진 밤이었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매섭게 추운 겨울이 온 세상을 얼어붙게 한 다음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고 있었다.

이 부부는 수시로 사랑하던 말의 무덤을 찾아 들을 수도 없는 말에게 우리 부부가 너로 인해서 이제는 복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을 하기도 하였다.

봄이 무르익을 무렵, 말의 무덤에는 이름 모를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빨간색과 노란색 그리고 연분홍색과 보라색을 골고루 갖춘 예쁜 꽃이 피어난 것이다.

하도 기이해서 사진을 찍어 꽃 전문가와 식물학자에게 보여보았지만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신기한 꽃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신비한 씨가 날아와서 요렇게 멋지고 고귀한 꽃을 피웠을까? 무엇이 이 이 아름다운 꽃의 씨가 되었던 말인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드린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을 하실 건가요? “화훼(花卉)나 원예 전문가도 모르는 품종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사진이나 보여주고 물으면 몰라도 글의 내용만 보고 무슨 재주로 답을 할 수 있느냐구요.”, “난센스 퀴즈인가요, 아니면 정식 질의인가요?” 등등 여러 질문이 제게 마구 쏟아지고 있는 것 같군요.

날카로운 질문 공세에 제가 오히려 힘들어지군요. 빨리 대답하는 게 상책인 것 같군요. 정답은 “말이 씨가 되었어요.” 여러분의 웃음소리가 제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군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평소에는 느껴지지 않던 삶의 무게가 갑자기 우리를 짓누르면서 우리를 불안하고 거북하게 만드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자기의 감정을 털어놓고 풀어놓을 ‘믿을만한 상대’가 없는 사람은 정말 가련한 사람일 것이다.

대화의 상대가 없는 사람일수록 막힌 고무 호스처럼 그 감정적인 압력이 급격하게 상승하여 예기치 않는 순간이나 상황에서 폭발하기도 할 것이다.

감정의 대폭발로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하고 상처를 줄뿐만 아니라 결국은 자기에게도 엄청난 폭발의 상흔을 남겨둘 것임에 틀림없다.

말이란 것은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안전판(safety valve)이지만, 들을 준비나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 퍼부어질 경우에는 큰 싸움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생각하면서 말을 하고,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생각 없이 말을 하거나 말하고 난 한참 뒤에 생각하면서 후회하길 잘 한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알고,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말을 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경청할(Listening, not Hearing) 줄 안다는 것은 고도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힘든 과정이다.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전문 상담가, 성직자 등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도중에 환자나 내담자의 격한 감정이 순화되는 것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감정 폭발이 있는 동안에 지혜로운 경청자(敬聽者)는 그 사람의 감정적인 흙탕물 혹은 폐수(廢水)를 흘러보내게 하는 통로를 제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실 말하기보다는 듣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그러나 듣는 것도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성숙하고 객관적이고 허용적인(permissive) 경청이 아닌 방어적이고 무절제한 감정이입(感情移入的. emotionally involved)의 경청은 쌍방 모두에게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고 듣고 또 듣고 말하고 하는 ‘선 순환(good cycle)’이 가장 잘 이뤄져야 할 곳이야말로 바로 가정이 아닌가 싶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부부 사이에는 한없이 들어주고 또 끊임없이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일방(특히 남편)이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거나 한 쪽이 다른 쪽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한다면, 그 부부의 생활은 이미 금이 간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관계에서 정상적인 부부의 성생활이 이뤄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말이 씨가 된다. 좋은 말은 좋은 씨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는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좋은 말을 잘하는 부부는 풍성한 성생활을 누리게 마련이다. 한 여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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