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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고 껴안는 성(性)
  글·김종철 (충남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뉴 셀프 상담연구원 신실회 대표. 늘사랑교회. ㅣ E-mail : )
부부 싸움(fight a good fight)의 원칙에 대해 일련번호대로 재미있게 기술한 표현이 있어 소개한다. 일: 일단 싸워라, 이: 이성을 잃지 말라, 삼; 삼가야 할 것은 꼭 삼가라, 사: 사과할 것이 있으면 먼저 사과하라, 오: 오래 끌지 말라. 삶을 살아가면서 부부가 지켜야 할 소중한 원칙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외울 정도로 간략하게 언급한 보배로운 글이 아닐 수 없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숫자를 이어가다 보면 다음과 같은 기발한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육: 육탄 공격은 금물이다, 칠: 칠십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팔: 팔자 소관이나 집안 탓으로 돌리지 말라, 구: 구경꾼을 싸움에 끌어들이지 말라, 십: 십리도 도망 못 가서 발병 나는 부부임을 잊지 말라.

대개의 부부가 가끔씩 치열한 부부 싸움을 할 때에도 서로 등을 보이지 않고 마주 보면서 목에 핏대를 올리거나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해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생각하면, 서로에게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부부 사이의 갈등이란 ‘실제로는 서로를 열렬하게 갈망하면서도 순간적으로 미워져서 서로 등을 돌리는 것’으로 해학적 묘사를 할 수 있을 텐데, 심각한 갈등 속에서도 등을 돌리지 않고 부부 싸움을 하는 커플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많이 남아 있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마주 본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살가운 속성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대학병원의 영상의학과(구 ‘진단방사선과’)에 근무하면서 환자를 진료하고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마주 본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려면 환자와 마주 보며 대면을 해야 한다.

의사는 환자와 얼굴을 서로 맞대고 앉거나, 진료 침대 혹은 각종 시술 혹은 검사[채혈, 심전도, 뇌파, 근전도(筋電圖), 일반 X-선, 투시, 초음파 검사, CT, MRI, 혈관 조영술, 영상 중재술 등] 테이블 위에 누운 환자를 쳐다보아야 한다. 특히 영상의학과에서 촬영한 필름이나 영상을 판독할 때에는 영상의 오른쪽이 의사의 왼쪽이 되고 영상의 왼쪽이 의사의 오른쪽이 되도록 배치해야 한다. 이렇게 모든 의학적 필름이나 영상의 위치를 조절하도록 세계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다.

의과대학생이나 인턴들에게 필름 관찰대(view box)에 필름을 걸어 보라고 말하면 당황하여 좌우나 상하를 바꿔 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이런 국제 규약을 잘 이해 못해서 생기는 불상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학생이나 전공의를 가르칠 때에 필름이나 영상을 사람과 똑같이 취급하여 항상 마주 보는 것으로 생각하면 기억하기 좋고 또 쉽게 잊어버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곤 한다. 필름이나 영상이란 것이 무슨 사물이나 경치 혹은 현상을 찍은 것이 아니고 심신이 고달파 병원을 찾아온 환자를 촬영한 것이기에, <필름이나 영상 = 환자>라고 간주하면 틀림없다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교육하곤 한다.

사실 이런 설명은 의학 교과서나 의학 잡지에도 전혀 나오지 않는 ‘나만의 독특한(?) 해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랜 의대생 혹은 의사 교육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말이다. 이러한 내 노력과 재치 있는(?) 교육법에도 불구하고, 막상 환자의 필름을 걸어보라고 하면 아직도 엉터리로 거는 학생들이 있어 의사이며 교육자인 나로서도 꽤나 난감할 때가 적지 않다. 아무튼 여기서 가장 중점을 두고 싶은 것은, 남녀노소나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서로 마주 볼 때가 ‘더불어 함께 잘 살아야만 하는 사람’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정겹다는 점이다.

부부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운우(雲雨)의 정을 나눌 때에도 서로 마주 보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고 이와 상반되는 다양한 체위가 가능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마주 보고 성행위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암컷의 엉덩이에 수컷이 올라타는 게 대부분인 다른 동물들의 교미 행위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인간과 견주어 보면, 사람만이 서로 마주 보며 성관계를 가지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만 잘 살펴보더라도, 인간의 성행위는 단순히 육체적인 삽입이나 접촉만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면서 마음과 영혼까지 깊이 만나는 전인격인 합일 과정이라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해질 것이다. 마주 보며 부부가 사랑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복된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네 현실에서는, 정작 합법적인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마주 볼 수가 없고 또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풍성한 섹스를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모순에 자주 봉착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배우자 둘이 서로 마주 보며 환하게 웃으며 애정을 나누는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이 없을 텐데, 그런 부부를 보기가 점점 더 힘들어 지니 이게 보통 심각한 가족 및 사회 병리 현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부부가 어렵사리 서로 바라보는 것까지는 좋으나, 서로 쳐다보면서 눈꼬리를 치켜 뜨고 입술을 삐쭉이거나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내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이다.

그렇게 각자 상한 마음을 가지고 밤에 한 침대에 들어간들 서로 등을 돌리지 않을 부부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상황에서도 남편의 성욕이 발동하여 아내를 강압적으로 끌어안는다고 그 아내의 몸과 마음이 열리기나 하겠는가.

“인간의 삶이란 본국인 천국으로부터의 출장과도 같다”라는 표현이 제법 마음에 와 닿는 요즈음이다. 출장을 떠난 사람은 출장을 보내신 분의 의중을 잘 파악하여 원래의 출장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처럼 날씨가 추울수록, 출장 길에 혼자가 아니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파트너로 같이 붙여 보내어 주신 분의 깊은 배려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또 그분에 대한 감사의 정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야 하지 않을까. 낯선 곳에서 혼자 외롭게 걷는 길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선택한 배우자와 함께 걷는 길이기에, 영하를 주름잡는 맹추위도 그렇게까지 춥게 느껴지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출장 가서 이행해야 할 사항을 둘이 힘을 합쳐 하나씩 점검하면서 계획에 차질 없이 실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출장지에서의 새로운 공동 경험을 위해 둘이서 자투리 시간을 잘 조정하여 여러 곳을 여행하는 즐거움을 놓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고 또 여가를 잘 활용하고서는, 호텔에 돌아와 피곤한 몸을 씻고 둘이 껴안은 채 ‘둘이 하나가 되는’ 멋진 낭만의 밤을 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국적인 여행지에서의 기대, 호기심 및 흥분에 심신을 맡긴 채 부부가 색다른 성적 경험을 시도하면서 말이다.

이 때야 말로 서로 등 돌리지 않고 밤새도록 서로 마주 보며 서로를 기쁘고 즐겁게 하는 일에 몰두해야 하지 않을까. 둘이서 모든 과업을 마무리한 후에는 반드시 본국으로 귀환하여 출장 주관자께 업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온전한 부부라면 이국에서의 시간이 마냥 길 수만을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출장 기간을 정말 보람 있게 보내려고 애쓸 것이다.

둘 만의 출장 기간은 짧기만 하기에, 서로 마주 보며 방긋 웃느라 정신이 없을 게다. 출장 보내신 분께서 그 부부의 업무 달성 성적뿐만 아니라 부부의 사랑 나눔까지도 높이 평가하실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면서 말이다.

한겨울의 한기를 녹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랑하는 부부가 서로 마주 보며 자주 껴안는 일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 있으면 지금 당장 나와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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