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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은 더러워도...
  글·정유석 (단국대학병원 금연클리닉/ 가정의학과 교수. xsmoke.net<금연친구> 운영자 ㅣ E-mail : )
대한민국의 평범한 한사람의 성인으로써 요즘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보면 미안한 맘이 많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흡연률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비판적 보도가 부쩍 많아지면서 우리 청소년들이 마치 세계에서 가장 버릇없는 아이들인양 여기는 시각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은 피해자이지 절대로 범죄자가 아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운다. 청소년의 흡연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는데는 우리 사회의 성인 흡연률이 지난 20여년간 2%내외 감소하였을뿐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어른들은 담배를 엄청나게 피운다. 가난한 노숙자로부터 억대 연봉의 고학력자에 이르기까지 담배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국남자들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고위직 간부들은 각종 스트레스 때문에, 노동자들은 삶이 고달파서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성인남자들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을 제치고 흡연에 있어서만은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도데체 무슨 이유일까? 따지고보면 우리 세대의 어른들 역시 대한민국의 터무니없는 정책의 피해자들이다.

2001년도 국내 사망통계에 따르면 폐암은 전통적으로 늘 1위를 차지하던 위암을 제치고 사망원인 1위로 부상하였다.

폐암 환자 100명이 있으면 그중 90명이 흡연자일 정도로 흡연은 폐암의 강력한 원인이다. 그런데 담배를 배워 폐암에 걸리기까지는 20년 이상의 시간이 요구된다.

현재 폐암으로 희생되는 사오십대 성인들이 처음 담배를 배운 시기를 보면 그들의 20대 초반, 군대에서 배운 경우가 가장 많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담배를 처음 배우는 청년들이나 심지어 담배를 권했던 정부조차 흡연이 건강에 이처럼 해로운 것이라는 사실은 잘 몰랐던 것 같다.

필자의 금연클리닉을 방문하는 흡연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처음 담배를 배울 때 전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고 충동적으로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친구나 선배의 권유로 쉽게 시작한 흡연이 어느새 몸과 마음을 사로잡아 이제는 간절히 끊고 싶어도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전대통령인 클린턴은 ‘담배를 마약’으로 규정하면서 그의 재임기간중 상당히 강력한 금연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최근까지 담배의 제조와 판매를 국가기관이 독점하고 여기서 생기는 이윤을 나라살림의 주요한 수입원으로 삼아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의 심신 건강한 젊은이들을 군대에 강제로 불러모은 후(비실비실한 젊은이들은 군대에서 부르지도 않는다), 담배라는 마약을 이틀에 한갑씩 공급하여 3년간 중독시킨 후 이후 평생동안 담배를 사 피우도록 한 셈이다.

그 결과로 국가 재정은 다소 튼튼해졌을지 모르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사오십대는 건강을 잃고 폐암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 시대의 잘못된 정책은 당대의 성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도 모자라, 다음 세대에까지 그 파괴력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흡연의 피해를 연구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피해는 앞으로 다가올 재앙에 비하면 그야말로 전주곡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경험하는 흡연의 피해는 담배를 얼마나 오랫동안 피웠는가에 좌우된다. 하루에 피우는 개비수가 많을수록, 피운 년수가 길수록 해독이 심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중요한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담배를 처음 배운 시기에 대한 연구이다. 첫 담배를 15세 이전에 시작한 경우 20세 이후에 시작한 사람보다 폐암발생율을 비롯한 흡연의 피해는 2-3배나 높아진다.

과거에는 흡연의 시기가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으나 최근 청소년의 흡연추세를 보면 첫 흡연시기가 중학교에서 초등학교 시기로 가파르게 내려가고 있다. 성인의 폐용적보다 훨씬 작은 청소년 시기에 흡연을 시작하면 담배의 해독성분이 훨씬 고농도로 축적될뿐 아니라 세포분열을 방해하여 그 피해가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예언컨데, 이렇게 일찍 흡연의 피해에 노출된 학생들은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왕성하게 일할 나이인 40대 초반에 폐암으로 쓰러지는 불행한 사태가 속출할 것이다.

40대 초반이면 가정적으로 한창 기반을 잡아나가고 아이들이 커가며, 부모님을 돌보아야 할 인생의 중요한 시기인데 이때 한 집안의 가장들이 폐암으로 쓰러질 것을 생각하면 필자는 맥박이 빨라지고 가슴이 답답해져서 견딜 수가 없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담배인삼공사의 민영화와 함께 필립모리스나 BAT Korea, Japan Tobacco와 같은 다국적 담배회사들이 국내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등 본격적인 국내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외산 담배들은 매력적인 광고와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해서 특히 청소년들을 그들의 미래의 고객으로 확보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청소년 흡연자들의 30%가 외산담배를 피운다는 통계가 발표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은 국내 도입 초기의 이미지 관리를 위하여 마치 청소년 금연운동을 위해 힘쓰고 있다는 식의 엉터리 이미지 광고를 하고 있지만, 담배회사의 금연운동을 진심으로 받아들여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우리나라와 함께 다국적 담배회사들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정부와 민간단체, 학계가 힘을 합쳐 자국의 청소년들을 외산 담배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실상은 어떠한가?....

최근 몇 년간 매스컴의 주도하에 사회 각계에서 예년에 볼 수 없는 금연열풍이 불고 있다. 정부도 담배값의 인상을 비롯한 강력한 금연 정책을 계속 내어놓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4만여명이 금연을 시도하지만 매년 5만여명의 새로운 흡연자가 생겨난다. 이러한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흡연에 관심조차 가지지 못하도록 철저한 조기 흡연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중고생 흡연자들이 처음으로 담배를 피워본 장소는 놀랍게도 ‘자기 집’이나 ‘친구 집’이 가장 많다. 아이들이 아빠의 호주머니에 꽂혀있는 담배를 몰래 빼서 피워본다는 이야기다. 윗물이 더러우면 아랫물도 오염된다.

비록 지금까지는 어른들이 본을 보이진 못했으나 청소년들만큼은 정신을 차리고 담배의 유혹에 맞서 밝고 깨끗한 미래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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