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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호

맛있는 대화, 배려가 우선이다!
  글·추부길 (웰커뮤니티교회 목사. 한국가정상담연구소(www.kofam.org) 소장. 안양대신대원 겸임교수)

“당신 왜 그래?”
“당신 해도 너무한 것 아니야?”
“아니, 왜? 잠 잘자고 있는 사람 깨워 놓고 무슨 일이야?”
“이것 좀 봐. 당신이 침대를 혼자 다 차지하고 나는 어디서 자란 말이야?”
“세상에… 잠 자면서 그런 걸 어떡하란 말이야?”
“당신은 맨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
“아니 이 사람이… 내가 잠자고 있었는데 일부러 그렇겠어?”
“아니야. 당신 요즘 하는 걸 보면 항상 나를 그렇게 대해. 사실이잖아?”
“와우. 미치겠네… 잠버릇 이야기하다가 또 무슨 말이야? 아이구야….”

부부싸움은 사실 너무나도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갈등 가운데 상당 부분이 별 의미 없는 사소함이 근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위의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아내는 평소에도 남편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편 중심의 사고방식에 대한 불만이 어느 날 갑자가 남편의 잠버릇을 보면서 폭발하게 된 것이리라.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자신의 잠버릇을 가지고 되지도 않는 불만을 터트리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황당해 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잠버릇에 대한 불만만 이야기한다면 또 이해가 되겠지만 그를 기화로 자신이 평소에도 그렇게 독점적 횡포를 부려 왔다는 아내의 말에는 화가 불끈 솟아오를 수밖에 없다. 왜 이럴까?

대체적으로 남자들은 귀에 들려오는 말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여자들은 그 말의 속뜻을 헤아리는 경향이 있다. 또 그렇게 말을 한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있는 현상을 현재 진행형의 상태에서 주로 말을 하지만 여자들은 과거부터 축적되어 온 어떠한 감정들이 한 단어 또는 몇 개의 문장으로 현재로 되살아나 표현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들이 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앞의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남자는 지금 자신의 잠버릇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지만 여자는 잠버릇은 표면적 현상이고 그 속뜻은 그동안 쌓여왔던 모든 불만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하는 말은 나타난 현상만 이해해도 쉽게 소통이 되지만 여자들의 경우는 오히려 드러나지 않은 빙산의 실체를 이해해야만 진정한 소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성적표를 받아 왔는데 영어 성적이 엉망이다. 남편이 말을 한다. “도대체 성적이 왜 이래? 지금 나가는 학원이 문제 있는거 아냐? 다른 학원 보내면 어때?” 그 말에 아내가 대꾸를 한다. “학원 바꾼다고 공부 잘 하나? 당신이 말하는 학원은 수강료가 얼마나 비싼지 알아요? 당신 월급 가지고는 턱도 없어.” 그 말에 남편이 발끈한다.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 학원 보내?” 화가 턱까지 차 오른 아내가 이렇게 말을 한다. “알아서 해, 그럼. 잘도 하겠다!”
남편 입장에서는 아이의 성적을 향상시켜 보려는 순수한 의도로 대화를 시작했다가 결국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고 또 특히 아내가 자신을 폄훼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아내 입장에서는 평소에 책임지지도 않고 질 수도 없는 말들을 자주 내뱉는 남편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말 한마디 하나마다 독기가 숨겨져 있다. 그러니 남편의 마음에 상처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내가 알아서 한다.”는 남편의 말에 대해 아내는 직감적으로 “우리 둘 사이에 벽이 생기고 있다.” 또는 “자신에 대한 남편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아내는 더더욱 화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부들이여.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도 근본이 다른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서로를 배워야 한다. 하기야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행복이란, 또한 인생에 있어서 기쁨이란 투자 없이 누려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더불어 자신의 이익을 조금만 더 손해 보려는 낮은 자세 없이는 어떠한 기쁨도 오래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요즘 “낮은 자세”, “섬기는 정부” 같은 단어들이 유행이다. 결국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아래에 서 있지 않고서는 도대체 불가능한 단어들이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은 다름 아니라 나 자신 위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우선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라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순간적으로 말을 하기보다는 한 번 더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려는 마음 자세로 숨을 가다듬은 다음에 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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