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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호

나를 구하러 오신 아버지
  글·문지현 (정신과 전문의. 미소의원 원장. 사랑의 교회. )

얼마 전 친구와 요새 잘 나간다는 영화 한 편을 봤다. 테이큰(Taken)이란 영화인데, 영화 수입사 측에서 “개봉 16일 만인 지난 24일 전국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총 102만 7,589명을 동원했다”고 밝히기까지 한 영화다. 어차피 나는 영화평론가도 아니고 영화를 광고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정신과 의사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본 영화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아버지가 인신매매 범에게 납치된 딸을 구해내는 것이다. 아버지는 전직 특수 요원이고, 지금은 이혼한 채로 혼자 초라하게 살고 있다. 딸은 상당한 재력가와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양쪽 아버지 모두와 비교적 관계가 좋은 편이다. 문제라면 철이 없다는 것. 아버지가 노심초사 하면서 만류하다 겨우 허락한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납치의 빌미를 제공하고, 아버지는 말 그대로 죽을 고생(미행과 잠복 정도는 예사다)을 한 끝에 철딱서니 없는 딸을 구출해낸다.
영화 속의 아버지는 한계가 많다. 자기 딸 하나를 구해내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을 죽인다. (물론 영화 속에서 죽은 사람들은 다 악당으로 그려졌다. 그래야 피 튀기는 살인 장면이 덜 불편할 테니까. 그래도 불편한 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액션 스릴러 영화들이 갖는 공통적인 클리세(cliche)들도 계속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항상 ‘순결하지 않은’ 여자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주인공은 갈겨대는 총탄 속에서도 살아남고 악한은 총 한 방에 다 쓰러진다. 주인공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할 때 상대방은 주인공을 바로 죽이기보다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다가 역습을 당할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로서 가장 납득되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활약 덕에 살아 돌아온 딸의 모습이었다. 납치에서부터 귀국까지가 아무리 길어도 단 며칠뿐인 상황이었으니 (96시간 안에 구해내야 한다는 전제로 시작했다) 딸이 경험한 외상적 사건이 아무리 커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하기엔 기간이 짧다. 그러나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충분히 일으킬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는데. 영화 속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라면 주인공의 딸은 강한 두려움, 무력감, 공포나 혼란스러운 행동을 계속 보여야 하고, 주위 환경에 대한 인식이 떨어져서 멍하게 있어야 하고,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이 경우라면 인신매매 범에 의한 납치)에 대해서는 전혀 대화를 안 하려고 하거나 아예 부분적으로라도 기억을 잃어야 하며, 사소한 일에 짜증내고 불안해하거나 쉽게 깜짝 놀라야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물론 특수요원 아버지의 강인한 정신력까지 물려받아서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잘 견뎌냈다손 치더라도 너무도 발랄 상큼한 모습을 영화 끝 무렵에 계속 보여주는 것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점이었다.

무사히 귀환한 딸이 어머니와 새아버지, 주인공인 친아버지와 다 함께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갑고 즐거워요.’ 류의 해후만 하는 점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점이었다. 미국이어서 문화가 좀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라면 살아 돌아왔어도 “그러길래 엄마가(혹은 아빠가) 뭐랬어! 그렇게 제 맘대로 아무나하고 말하고 낯선 사람과 차 타고 어딜 가는 게 아니랬잖아!!”하고 한바탕 야단부터 맞아야 일반적인 모습일 것 같은데.

친구와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기 앉아 있는 철없는 이 딸내미를 구출해내기 위해 자신의 죽음도 불사하신 나의 하늘 아버지를 생각했다. 나의 하늘 아버지는 나를 살리시려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정도를 뛰어넘어 자신이 직접 죽임을 당하셨다. 내가 저지른 한심하고 바보 같은 죄들 때문에 내가 죽게 되었는데, 돈 아끼지 않으시고 몸 사리지 않으시고 한 달음에 뛰어와서 나를 건져내셨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빨리 프랑스로 날아가기 위해 전부인의 돈 많은 새 남편이 갖고 있는 전용기까지 띄웠다. 계산기 두드려서 딸을 건져낼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하나님이 나를 구출해내시기 위해 사용하신 비용은 그에 비할 수가 없다. 그분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계산조차 안 나오는 투자를 하셨다.

“킴(딸): 아빠, 마침내 저를 구하러 오셨군요.”
“브라이언(아버지): 그래, 아빠가 온다고 했잖아.”

영화 속의 아빠는 딸을 꾸짖지 않고 다만 안아주었다. 그렇듯 나를 안아주시는 하나님. 내가 벌여놓은 잡다한 죄들과, 내가 가지고 태어난 죽음의 본성들을 위해, 총탄을 뚫고 들어와 나를 건져내시는 하나님. 설령 그 딸이 이전에는 아버지라면 사랑한다고는 말하지만 데면데면해 하고, 사소한 일에 삐지고, 연락도 자주 안 하고 하던 딸일지라도, 그저 당신의 딸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는 하나님. 다른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딸이 살아서 자신의 품에 안기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시는 하나님. 살려줬다고 생색내지도 않으시고, 딸이 선택해서 가는 길을 바라보면서 딸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넉넉히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딸이 만나서 밥 한 끼 먹자고 전화해 오면 뛸 듯 기뻐하는 소박한 아버지처럼, 내가 모처럼 하나님 앞에 앉아놓고는 늘 하던 대로 이것 달라 저것 달라 기도하기만 해도, 간만에 성경책 펴들고 하나님의 뜻 구한답시고 하면서 (물론 중간에 딴 생각도 간간이 해가면서) 앉아있는 걸 보시기만 해도, 그것만으로도 기뻐서 펄쩍 뛰시며 나를 안아주시는 주 하나님.
친구와 농담처럼 얘기할 때는 “너나 나나, 아버지도 남편도 저렇게 람보 스타일이 아니니 우리는 몸조심 잘해야 하겠다. 여행도 자유 여행은 안 되겠고 패키지로만 다녀야겠는걸.” 했었지만, 사실 나의 하늘 아버지는 람보보다도 더한 능력의 아버지이신 것을. 아버지 되신 하나님, 나를 딸로 삼아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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