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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호

톱밥 속에서 들린 시계 소리 外
  글·박재천 (목사. 시인. 가정·효 아카데미 대표. )

톱밥 속에서 들린 시계 소리

얼음공장에서 일하는 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톱밥이 쌓여 있는 곳에서 값비싼 시계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동료와 함께 2시간 이상이나 시계를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그런데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을 때  어떤 어린 소년이 그의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꼬마야, 그 시계 어디서 찾았니?”
“예, 제가 톱밥 위에 앉아 있는데 시계 소리가 ‘째깍 째깍’하고 들렸어요.”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정신없이 요란하게 찾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조용한 가운데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오케스트라와 신앙 생활

바이올린을 잘 켜는 청년에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찾아와 함께 연주하기를 청했다. 그러나 그 청년은 혼자서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연주함으로써만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킬 줄 알고 그 청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계속 몇 차례 권유하자 그는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연주에 참여했다.
그는 자기의 음악 재능이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화음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큰 만족을 느끼고 놀랐고, 다른 연주자들과 공통된 유대를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으로 자신만이 그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협연을 통하여 얻는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적인 은혜는 자신이 혼자 고요히 지낼 때 온다. 그리고 예배하는 자리에 나갈 때에도 온다. 우리는 교회에 무엇을 얻으려고 갈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한 지체가 되어 남에게 주려고 나가는 것이다.

해로운 책 피하는 길

우리는 “좋은 서적을 선택하여 읽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책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읽고 있는 책에 대하여 변명하면서 “이 책은 전혀 해롭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해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무해한 많은 서적들이 사람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않기에 유해한. 즉 해로운 책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많은 시간과 흥미, 두뇌를 소비시킬 뿐 영원히 가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주지 못한다.
당신은 독서에 들어가면서 자신에게 질문해 보라.
‘이 책은 나의 성품을 강하게 할 수 있는가? 나의 이상과 감수성을 높이는가? 아니면 세속과 죄에 가깝게 하여 망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이 책은 나를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는가? 이 책은 나를 진정제와 같이 생각하는 힘을 잠재우고, 정신적으로 태만하게 하여 바른 사고를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 정신적인 목욕을 한 것 같은 상쾌함이 있겠는가? 우리들의 읽을거리는 우리들의  인격을 반영하고 있다.’

풍랑도 두렵지 않아

영군 해군 대장 한 사람이 인도로 전임되어 가족을 데리고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났다. 배가 뒤집힐 듯이 요동하자 모든 사람들은 겁을 먹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대장은 태연히 앉아 안심하라고만 했다. 이런 가운데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달하였다.
그의 아내가 말했다.
“당신도 참 냉정하군요. 어쩌면 식구들이 다 죽게 되었는데 모른체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칼을 꺼내어 아내의 목에 대며 찔러 죽인다고 호령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태연히 앉아 웃고만 있었다. 대장이 물었다.
“어찌하여 당신은 두려워하지 않소?”
“그 칼이 도적의 손에 있으면 두렵겠지만 사랑하는 남편의 손에 있으니 어찌 두려워하겠어요?”
대장이 칼을 칼집에 꽂으며 말했다. “옳소. 풍랑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두려워할 것이 없소이다.”

자신을 비워라

어느 대학 교수가 생의 의미를 찾아 나섰다. 그는 수년 동안 수만 마일을 헤매다가 아주 경건한 수도사의 암자에 당도하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깨달음을 구했다.
그러자 경건한 수도사는 방문객을 초라한 자기 집 안으로 맞아들이고는 차를 대접하였다. 그는 그 순례자의 잔에 차를 가득 부었다. 마침내 잔이 가득 찼다. 그러나 수도사는 계속해서 차를 따랐다. 이것을 보고 있던 교수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말했다.
“그만, 잔이 차잖아요. 더 이상 부을 수 없어요.”
그러자 수도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잔처럼 당신은 이미 당신의 의견, 당신의 선입견, 당신의 가치관들로 꽉 차 있는데, 내가 어찌 당신을 가르칠 수 있겠소?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당신의 잔을 비우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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