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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호

생각하라 오직 예수님만을
  글·계인철 (안산초원침례교회 담임목사)
“첫째, 신은 풍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둘째, 풍요는 제한되어 있다. 셋째, 나는 자격이 없다. 넷째, 나는 능력도 재주도 없다. 다섯째, 나는 불행하다. 여섯째, 나는 늘 이 모양이다. 일곱째, 나는 풍요를 생각하는 방법을 모른다.” 웨인 다이어가 그의 저서 「생각 에너지」에서 인용한 어니스트 홈스의 ‘풍요를 가로막는 일곱 가지 생각’이다. 어니스트 홈스나 웨인 다이어가 하려는 말은 간단하다. 풍요는 생각의 결과이니 풍요롭기 원한다면 풍요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렇듯이 생각이 곧 어떤 것의 에너지가 된다. 생각에 따라 결과를 본다. 생각이 곧 결과다. 그뿐이 아니다. 아치발트 하트가 「마음의 습관」에서 언급한 것처럼 ‘생각이 곧 그 자신’이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이다. 생각이 곧 ‘나’다. 생각이 나의 인생을 미리 보게 한다. 그래서 성경도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잠23:7)”라고 말한다. 「바른성경」은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됨도 그러하니”하고 번역하고 있다. 생각이 곧 그 사람이고 그 사람됨이라는 것이다. 이같이 생각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할 것이다. 생각은 씨앗이고 그 열매다. 항상 있되 영원히 있을 사랑이란 말도 생각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랑’은 한자 ‘사량’(思量)이 변하여 된 말이라고 한다. 생각의 량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결정한다. 많이 생각할수록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많아진다 할 수 있다.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많이 생각하고 늘 생각하여야 한다. 말의 양이 아닌 생각의 양이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도 예수님 생각을 많이 그리고 항상 할 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생각은 에너지다. 힘이다.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무엇이 된다. 일본 한 은행가의 한 연구에 의하면 부자들은 부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생각을 하고 있고 가난한 자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한때 ‘부자 되세요’라는 말로 덕담을 나누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부자 되세요’가 아니라 ‘부자를 생각 하세요’라고 말했어야 했다. 즉 결과만을 말하기 전 동기를 부여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생각에서 꿈이 만들어지고 그 꿈이 비전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2일 열렸던 2008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전 세계 축구팬들을 열광시켰다. 우리도 그 열광의 도가니에 있었다. 이탈리아의 세리에 A, 에스파냐의 프리메라리가와 함께 세계 3대 프로축구 리그인 영국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EPL)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훌륭한 경기를 하고 있는 박지성 선수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지성 선수는 대단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영국은 축구의 종주국이고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히 뜨겁다. 그들의 이런 축구에 대한 자부심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프리미어 리그에는 소위 영국 선수가 별로 없고, 도리어 세계 곳곳에서 그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선수들이 모두 집합하여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축구에 대한 영국인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인종이나 국가를 떠나 축구 자체를 사랑하고 즐기는 것이다. 오직 최고의 축구를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미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지만 그들의 승리에 대한 생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W’, 즉 프리미어리그 승리와 함께 유럽축구 챔피언스리그까지 우승하고자 하였다. 그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경기의 모습은 승리가 충분하였다. 그래서일까, 프리미어리그에서 1,2위를 다투었던 첼시와의 20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그 어떤 것보다 우리를 흥분케 하였다. 박지성 선수가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한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을 생각하면서 5월 22일 새벽 3시 45분 킥오프와 함께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기를 소망하면서 뜬 눈으로 밤을 하얗게 밝혔다. 그러나 박지성 선수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선발 명단에는 고사하고 후보 명단에서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순간 하얀 밤이 검은 밤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하는 의아함이 정신을 짓눌렀었다.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 실망을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한국 언론이야 그렇다하더라도 영국언론들의 예상, 전날 퍼커슨 감독의 “큰 가능성(great chance)”을 언급하며 출전 가능성을 내비췄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박지성 선수의 출전은 한국인을 넘어 아시아인 모두에게 있어 축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아직까지 단 한명의 아시아 선수가 유럽 축구 챔피언스리그에서 뛰어 본 적이 없었기에 참으로 큰 기대와 기쁨으로 킥오프를 기다렸었다.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정말 속상하고 자존심 상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알렉스 퍼거슨감독과 박지성 선수를 바로 보아야 한다. 그들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단순히 감정이나 민족성으로 문제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 먼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생각해 보자. 그는 뛰어난 명장이다. 축구에 있어 그만큼 뛰어난 지도자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그는 20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첼시를 승부차기로 승리한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진 가장 위대한 자산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나는 내년 시즌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언론에 아주 민감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 그가 언론들이 그동안 언급했던 박지성 선수의 가치에 대해서와 출전 가능성과 그 타당성에 대하여 모르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도 박지성 선수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가 박지성 선수를 언론의 생각대로 출전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박지성 선수 대신 하그리브스 선수를 출전시켰다. 정말 잔인할 정도로 냉혹하다. 그는 그가 말한 대로 어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오직 승리에 두고 모든 게임을 시작했다. 선수 개개인에 대한 사적인 감정은 철저히 배제됐다. 그는 선수 한 명을 스타로 만들기 보다는 팀의 승리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팀의 승리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팀의 승리가 그 자신과 선수들 모두를 진정한 스타로 만든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수없는 유혹들을 철저히 팀이라는 방패와 승리라는 검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W’를 이루었다. 오직 팀과 승리만을 생각했던 결과다.

박지성 선수는 참으로 훌륭한 선수다. 그가 한 경기에서 무려 12km를 뛸 정도로 지칠 줄 모르는 경기력 때문이 아니다. 경기에 대한 그의 생각, 선수로서의 그의 생각이 진정 프로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예상을 벗어난 현장에 우뚝 서 있었다. 축구 선수가 경기장이 아닌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아야 했다. 그를 쫓는 카메라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챔피언스리그를 승리로 이끈 팀과 함께 우승컵을 높이 치켜들었지만 그의 마음, 그의 생각은 아쉬움으로 가득 채워졌을 것이다. 언론도 그런 그의 생각을 끌어내리려 하였다. 하지만 그는 역시 훌륭한 선수다. 진정한 프로다. 자신의 경기 출전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팀이 승리한 것을 기뻐할 줄 아는 선수였다. 그는 팀이 우승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을 만족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배신감을 운운하며 한국인 박지성 선수를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은 퍼거슨 감독을 비난하는 아마추어리즘에 빠져 있던 이들에 비해 박지성 선수는 진정 프로 선수였다. 자신이 꼭 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아닌 팀의 우승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출전여부와 관계없이 팀의 승리를 나의 승리로 받아들일 줄 아는 생각이 그를 더 큰 선수로 보게 한다. 언젠가는 그가 말한 것을 우리 모두가 보게 될 것이다. “아직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고 믿지 않는다. 맨체스터에서 내 안에 있을 더 큰 나를 꼭 만나고 싶다.”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은 무엇이어야 할까? 성경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고 한다. 하늘의 부름을 입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퍼거슨감독과 박지성 선수가 오직 팀의 승리만을 생각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만을 생각하여야 한다. 예수님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변화산의 결과는 오직 예수님만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시작과 결과는 예수님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생각은 오직 예수님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은 과연 무엇일까? 바울이 늘 성도들을 바라보며 그토록 염려하였던 육신의 것들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의 성공만을 꿈꾸며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고 찬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라고 찬송하며 세상의 즐거움을 쫓으며 세상의 자랑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직 예수님만 깊이 생각하여야 하는데, 몸은 예수님 앞에 있고 마음은 세상 콩밭에 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는 말씀이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일을 행하고, 예수님의 색깔이 어느 새 다 바래 버린, 더 이상 상품 가치를 상실한 물건처럼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아닌지. 참으로 요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 탄식뿐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예수님 생각을 하기는 하는지 궁금한 모습들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이대로 간다면 이 땅에서의 기독교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이제부터라도 다시,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 깊이 생각하자. 예수님 안에서 세상을 보자.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 생각으로 세상을 생각하자. 생각하는 만큼 산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만큼 그리스도인답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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