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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호

영적 검진
  글·차 한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영적 검진 - 세 부류의 사람들


성경이란 진단 검사기를 통해 나의 영적 상태를 살펴보자

 

차  한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글은 필자가 <한마음미션>에서 설교한 설교문입니다

 

“14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니라.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것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15 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아서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졌느니라. 1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능히 못하기 때문이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였도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 4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하나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냐? 5 그런즉 바울은 누구며 아볼로는 누구냐? 그들은 단지 주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이와 같이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며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니라. 8 이제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하나이며 저마다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니라. 10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11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2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을 세우면 13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그것을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14 어떤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세운 일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고 15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고전 2:14-3:17)

1. 들머리

매스컴에서 기독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 피이드백이 엄청나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특별히 익명성을 갖고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기독교라는 말보다 ‘개독교’라는 표현이 일반 네티즌들에게 더 친숙한 말이 된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 비하는 너무도 많은 근거와 팩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 대학동문 중에 현재 큰 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일 년에 몇 번 부인을 따라 교회에 나가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가 오래전부터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해오고 있는 중인데 하루는 이 친구가 제게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기 병원 재무책임자가 아주 독실한 기독교 장로인데 (그래서 더 재무담당을 시켰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만) 몰래 수억 원을 착복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지난달 정말로 믿고 싶지 않은 사건이 모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주일마다 각기 다른 두 번의 예배 곧 ‘열린 새 신자 예배’ 및 한국으로 돌아온 교포나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포인트 파이브 예배’를 인도해 왔고, 비서실과 통역실 등 그 교회의 실제 업무를 담임목사를 대리하여 모두 맡아온 J 목사의 불륜 행각이 밝혀졌습니다.
J 목사는 존 파이퍼 목사의 설교와 필리핀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의 간증을 통역했고, 유명 연예인의 결혼 주례 및 외교부와 기업체 강의 등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한 분이죠. 그리고 기독교잡지 리빙라이프의 편집장이며 모 재벌그룹 부회장의 개인 성경공부를 수년간 지속해오기도 했는데 한 영화배우로부터 ‘청년 예수의 모습 같다’고 극찬을 받기도 하였죠.
이처럼 전도유망하던 J 목사가 상대방에게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 5년 전부터 서류상의 이혼을 못했을 뿐 이혼한 것과 같다.”라고 말하며 간통을 한 사실이 일 년 만에 밝혀졌습니다.
자, 이와 같은 현실에서 여러분들은 개독교라 칭해지는 오늘날의 기독교에 대한 변명을 어떻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세 부류의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기독교에 대한 변명을 하는 동시에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과 제가 함께 주님께로 온전히 나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 본성에 속한 사람

오늘 주일에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영적인 상태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눠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고전 2:14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니라.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것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첫 번째 부류는 ‘본성에 속한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natural man입니다. (참고로 natural man을 인문사회과학적으로는 ‘자연인’이라 번역하는 것이 일반인데 킹제임스흠정역에서는 진화론적 개념을 깔고 있는 ‘자연인’이라는 말 대신에 ‘본성에 속한 자’라고 번역을 잘 해놓았습니다.)
14절을 보면 본성에 속한 사람의 정의는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지 못한 자 곧 구원받지 못한 자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십일조 이상 헌금도 하고, 찬양대도 하고,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심지어 장로나 목사의 직분을 맡고 있더라도 구원받지 못한 ‘본성에 속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본성에 속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시편 14편 1절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즉 ‘본성에 속한 사람’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할 뿐 아니라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를 말합니다.
비록 인사기록지의 종교 난에는 기독교라 쓰지만, 또 오늘처럼 주일에 교회에 나름 열심히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기도 하여 기독교인으로 행세하고 있지만 ‘본성에 속한 사람’인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3. 육신에 속한 사람

두 번째 부류는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육신에 속한 자’는 일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영어로는 ‘carnal Christian’ 곧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은 받았지만 영적으로 갓난아이라 표현되는 경우입니다. 이 말은 구원 받은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10년, 20년 또는 한평생 신앙생활을 하였어도 영적으로 갓난아이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입니다. 제 전공 분야는 소아소화기영양학입니다. 그래서 신생아나 영아에게도 내시경을 시행하곤 합니다. 특히 동전이나 수은 배터리 같은 이물질들을 삼킨 아이들에게 내시경을 시행하여 위장관 이물질을 자주 제거하곤 합니다. 분별력이 있다면 결코 삼킬 수 없는 각종 이물질들을 삼키며 사고를 치는 것은 그들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갓난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영적으로 갓난아이이기 때문에 각종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계속하여 고린도전서 3장 2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능히 못하기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갓난아이이기 때문에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오직 젖만 먹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입니다.

“시간으로 보건대 너희가 마땅히 가르치는 자가 되었어야 할 터이나 하나님의 말씀들의 첫째 기초 원리들을 남에게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필요가 너희에게 있나니 너희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었도다.”
신앙 연륜은 오래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들의 첫째 기초 원리들을 남에게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성경말씀에 무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상태로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3,4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였도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하나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냐?”

‘육신적인 자’ 곧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특징은 시기와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며 세상 사람들처럼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구원은 받아 천국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지만 믿지 않는 불신자와 결코 구별되지 않는 인생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4. 영에 속한 사람

세 번째 부류는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5,16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아서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졌느니라.”

‘영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고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요 14:26; 벧전 2:12). 즉 성경 말씀을 늘 묵상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spiritual Christian 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능히 못하기 때문이라.”

‘영에 속한 자’ 곧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과 달리 젖이 아니라 비프스테이크 같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영적으로 장성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5장 1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에게 속하나니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자기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 선악을 분별하느니라.”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곧 성경 말씀의 깊은 이해를 통해 영적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써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5. 사역자

그래서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3장 5절입니다.

“그런즉 바울은 누구며 아볼로는 누구냐? 그들은 단지 주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대표적 인물이 바울과 아볼로입니다. 그들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믿고 구원을 받게 하였던 사역자들 곧 복음전도자들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6,7절을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이와 같이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며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니라.”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I am nothing. He is everything.”이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아울러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아 갈 때, 곧 심고 물을 주는 등의 행위, 일, 수고 등을 통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음을 믿는 자들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8,9절을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이제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하나이며 저마다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니라.”
그렇습니다. 수고에는 보상이 주어집니다. 또 그래야만 합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결코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의해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6. 행위와 보상

제가 O, X 퀴즈를 내겠습니다.  맞으면 O, 틀리면 X입니다.
“아무개 형제, 당신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어?” 이 말은 가능한 표현일까요 아니면 틀린 표현일까요?  또 “아무개 형제, 당신 그러고도 천국 갈 수 있어?” 이 말은 어떻습니까?
네,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어?” 이 말은 가능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러고도 천국 갈 수 있어?” 이 말은 성경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결코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 성경적 진리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또는 천국시민권자로서의 행위가 요구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을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단지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하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천국은 기본이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약함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행위를 잘 할 수 있도록, 그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우리에게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7. 그리스도의 심판석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을 보겠습니다.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을 세우면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그것을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어떤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세운 일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고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그 보상이 다르게 됩니다. 성도의 삶이 금인지 은인지 보석인지 나무인지 건초인지 짚인지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교회 시대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지상 재림에 앞서 공중으로 들려진 후 어린양의 혼인 만찬에 들어가기 전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때 보상으로 다섯 가지 관(crown, 왕관,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8. 다섯 가지 관(crown, 왕관, 면류관)

첫째, 의의 왕관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을 보겠습니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冠)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이것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크라운으로서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그분께서 주실 것입니다.

둘째, 썩지 않을 왕관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을 보겠습니다.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서 절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을 관을 얻고자 그 일을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관을 얻고자 하느니라.”

이것은 승리자의 크라운으로서 자기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킨 자들 곧 육신의 정욕에 굴복하지 않은 자들이 받을 것입니다.

셋째, 생명의 왕관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과 요한계시록 2장 10절을 보겠습니다.

“시험을 견디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단련을 받은 뒤에 주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관(冠)을 받으리라.”(약 1:12)
“네가 장차 당할 그것들 중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에서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넣어 너희를 시험하리니 너희가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 너는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이것은 순교자들이 받을 크라운입니다.
넷째, 영광의 왕관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2-4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오직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주인처럼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 떼에게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사라지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받으리라.”

  이것은 목자장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 말씀의 꼴을 잘 먹인 장로나 목양자들에게 주실 크라운입니다.

다섯째, 환희의 왕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20절과 빌립보서 4장 1절을 보겠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환희의 관(冠)이 무엇이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 있을 바로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그러므로 극진히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들 곧 나의 기쁨이요 왕관인 나의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서 굳게 서라.”(빌 4:1)

이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자가 받게 될 크라운입니다.

9. 마무리

이제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소개해드린 세 부류의 사람들 중 어디에 속해 있으신지요?
첫 번째로 여러분은 본성에 속한 사람이신가요? 그렇다면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여 속히 예수님을 구원자와 주님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구든지’에는 여러분도 다 포함이 됩니다. 여러분의 죄가 얼마나 크고 많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다 깨끗이 씻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그 보배로운 피로 제거될 수 없는 죄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을 여러분 개인의 인격적인 구주로 마음에 모셔들이셔서 영생의 복을 얻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두 번째로 혹시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신가요? 구원은 받았지만 영적으로 자라나고 있지 못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신가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상태로 머무르게 된다면 보상의 손실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과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은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나도록 힘쓰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여러분은 영에 속한 사람이신가요? 그렇다면 빌3:13,14에 나온 사도 바울의 고백과 비전이 바로 여러분의 고백과 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 함께 한 목소리로 빌 3:13,14을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내가 이미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에 도달하려고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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