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건강과 생명
과월호 보기
특집
건생주치의
건생가이드
건생캠페인
건강한 사람들
신앙클리닉
시론
문학
2018년 1월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세상을 바꾼다
  글·김진수 (서울대 화학과 교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연구단장)

들어가는 말

유전자가위로 DNA를 수술해 암, 에이즈, 혈우병을 치료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바나나를 구할 뿐 아니라 모기와 같은 해충을 박멸한다. 크리스퍼(CRISPR)로 불리는 제3세대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전 세계 의생명과학자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2013년 1월, 서울대 연구팀과 미국의 연구팀 5곳이 각각 독자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유전체 교정 사례를 학술지에 처음 보고한 이후 불과 4년이 지난 현재, 하루가 멀다 하고 이 기술을 이용한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으며 국내외 언론을 통해 관련 성과가 보도되고 있다. 짧지 않은 생명과학 역사에서 이처럼 빠른 시간 내에 이렇게 널리 활용된 신기술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는 이를 크리스퍼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무엇이고 이 혁신적 도구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크리스퍼는 세균의 유전체에 존재하는 반복적인 DNA 서열과 이로부터 비롯된 면역체계를 일컫는 학술용어다. 세균의 천적은 바이러스다. 세균은 바이러스의 침입을 받으면 이에 대항하기 위해 그 바이러스의 DNA를 잘게 자른 다음 그 조각을 자신의 유전체에 삽입해 둔다. 이를 크리스퍼라고 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부분으로부터 작은 가이드 RNA가 만들어진 후 Cas9이라는 세균 자체의 단백질과 결합한다. 이후 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하면 가이드 RNA가 바이러스 DNA에 상보적으로 결합한 후 Cas9이 이를 절단해 바이러스의 복제를 차단한다. 다시 말해 크리스퍼는 바이러스라는 과거의 나쁜 경험을 기억해 두었다가 이를 물리치는 세균의 면역체계라고 볼 수 있다.
생명과학자들은 최근 이를 새로운 유전자가위로 개발하여 인간세포와 동식물세포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교정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크리스퍼 이전에도 제1세대 징크핑거 유전자가위와 제2세대 탈렌이 있었다. 필자가 1999년 창업한 ㈜툴젠은 이들 3종 모두를 독자 개발해 사업화한 세계 유일의 생명공학 회사이다. 그러나 징크핑거와 탈렌은 만들기가 어렵고 가격이 비싸 널리 활용되지 못했다. 이에 비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가이드 RNA만 교체하여 Cas9 단백질과 함께 세포로 전달하면 되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에 대량생산이 가능하여 생명과학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를 이용하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을 수술하여 원상복구할 수도 있고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잘라내 제거할 수도 있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버그를 발견하여 수정하듯이 생명과학자들이 손쉽게 인간 및 동식물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리프로그래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수술

미국인 티모시 브라운은 불행이 겹쳤으나 엄청 운이 좋은 사람이다. 10여 년 전 그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백혈병에도 걸렸다. 일단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았는데 신기하게 바이러스도 없어졌다. 세포의 기증자가 CCR5라는 바이러스 수용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생명공학 회사, 상가모(Sangamo Biosciences)는 이에 착안하여 1세대 징크핑거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즉 에이즈 환자의 면역세포에서 CCR5 유전자를 잘라 제거하면 바이러스가 더 이상 감염하지 못 해 에이즈가 치료된다는 것이다. 만일 이 치료제가 미국 FDA의 승인을 받는다면 인간의 유전자에 맞춤 변이를 일으켜 질병을 치료하는 최초의 사례가 된다.
하지만 1세대 유전자가위는 활성이 낮고 유사한 유전자들도 자른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상가모가 임상시험에 사용하고 있는 1세대 유전자가위는 CCR5 유전자 바로 옆에 있는 CCR2 유전자도 자른다. 그 결과 일부 세포에서는 두 유전자 사이에 있는 DNA 부분이 통째로 삭제되기도 하고 뒤집혀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최초로 확인한 필자의 연구팀은 혈우병 환자 세포로 만든 분화만능 줄기세포에서 2, 3세대 유전자가위를 사용해 뒤집혀진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혈우병 이외에도 유전병은 매우 다양하다.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는 1만 개에 달하고 신생아의 1%는 유전질환을 가지고 태어난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수많은 유전질환에 대한 근본적 치료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암이나 에이즈에도 활용 가능하다.
일부 세포의 유전자 교정으로 치료 가능한 에이즈나 혈우병과는 달리 어떤 유전병은 환자 몸의 거의 모든 세포를 교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생식세포 유전자 교정이다. 즉, 수정란에 유전자가위를 도입해 착상 전에 돌연변이를 원천 치료하자는 것이다. 실제 이런 방식으로 원숭이의 유전자 교정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치명적인 유전자 결함을 가지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 돌연변이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허용되면 유전병이 아닌 외모와 지능, 성격의 개선 등 다른 용도로 남용될 가능성도 있다. 그 결과 미래에는 영화 가타카에서처럼 유전적으로 개량된 인간과 평범한 인간이 갈등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늦기 전에 생식세포 유전자 교정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바나나 살리기

사람들만 감염질환에 걸리는 것이 아니고 농작물들도 매년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 질병에 시달린다. 19세기 중반 백만 명이 굶어 죽은 아일랜드의 비극도 곰팡이로 인해 발생한 감자 기근 때문이었다. 특히 무역 규모만 연간 10조원에 달할 정도로 세계인이 즐겨 먹는 바나나는 치명적인 곰팡이 질환 때문에 10~20년 내에 멸종할 수도 있다. 무성생식으로 번식하는 바나나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클론이어서 감염질환에 특히 취약하다.
다행히 식물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질병에 걸리지 않는 농작물을 개발하고 있다.
첫째, 교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적인 유전자 변이에 의해 질병에 내성이 생긴 개체를 만드는 육종법이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바나나와 같이 교배가 불가능한 여러 농작물에는 적합하지 않다.
둘째, 질병 저항성 유전자를 농작물 유전체에 삽입해 GMO를 만드는 유전공학이다. 그러나 GMO는 안전성, 환경유해성 평가 등 정부의 인허가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모된다. 다국적 종자회사가 아니면 GMO를 상품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GMO는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셋째,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병원균 감염에 필수적인 식물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유전자가위로 CCR5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작년 중국 연구진은 밀의 특정 유전자를 제거해서 곰팡이의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방법은 식물에 외부 유전자를 도입하지 않기 때문에 GMO로 규제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식물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키는 방식은 전통적 육종법과 그 원리가 다르지 않다. 다만 육종법이 무작위로 수많은 변이를 일으킨 후 운 좋게 원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난 개체를 찾는 방식인 반면 유전자가위는 특정 유전자를 정해 놓고 그 유전자에만 변이를 일으키는 것이다. 육종법이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방법이라면 유전자가위 기술은 감나무에 올라가 직접 수확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IBS 연구단은 바나나 연구자들과 손잡고 바나나 살리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곰팡이 감염에 필수적인 바나나 유전자를 제거해 건강한 바나나를 만들자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여 미래 세대 어린이들도 우리처럼 바나나를 즐겨 먹고 자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맺는 말

앞서 소개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치료제 및 농작물 개발 사례 이외에도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에 의해 무수히 많은 혁신적 연구개발이 수행되고 있다.





[Copyright ⓒ 건강과 생명(www.healthlif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컨텐츠 사용 문의 및 저작권 문의

Untitle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