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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호

자식 노릇이 힘들다는 K에게
  글·전병국 (로고스 고전학교. 고전 읽는 가족 대표)

 안녕, K!

보내준 이메일 잘 받았어. 빨리 답장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또 늦어버렸다. 늘 느끼지만 속도만 강요하는 세상에서 방향을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근심은 언제나 생명을 주는 법이다(고후 7:10). “딸 노릇이 쉽지 않다”는 너의 근심에서 나는 해결의 빛을 본다.
사실 “아빠 노릇이 쉽지 않다”고 답장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부모 노릇, 자식 노릇에 뾰족한 답이 있을 리 없고, 또 부모로서 늘 부족함을 느끼며 사는 터라 그랬다. 하지만 우리가 족집게 정답을 요구하는 사이가 아니어서 용기를 냈다.

생각나니? 늦은 밤 지하철역이었지. 한창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너는 인생의 선택에 대해서 물었어. 부모님께 차마 말할 수 없던 두려움과 외로움도 털어놓았지. 제법 긴 대화 끝에 너는 환하게 웃으면서 지하철을 탔어. 사실 나는 해준 게 없었어. 부족한 선배에게 무슨 지혜가 있었겠어. 너 스스로 묻고 또 물으며 길을 모색한 것뿐이지. 부모들만 몰라. 자녀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어른인 것을. 덕분에 그때 배웠다. 많이 들어주는 게 최고의 조언인 것을 말이다.

그랬던 너였기에 “딸 노릇”의 고민이 철없는 푸념이나 반항이 아닌 것을 안다. 많이 아파 연락했겠지. 섣부른 충고가 무슨 소용 있겠니? 믿는 것은 딱 하나다. 너와 내가 붙잡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덧붙여 내 작은 경험들이 있다. 자주 잊어버리지만 한때는 나도 네 나이의 자녀였고, 또한 지금 네 또래의 자녀가 있고, 여러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으니, 멋모르는 소리만은 아닐 거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하나님의 예언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쓰셨다. 가족 관계의 지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편지하셨다.
“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1-4)

이 말을 뻔한 명령으로 듣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가슴 아픈 예언으로 듣는다. 어떤 것이 명령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사람들의 본성이 늘 반대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부모가 보여줄 모습들이 6장 4절에 들어 있다. 물론 부모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진심이 진리는 아니다. 툭툭 나쁜 모습들이 튀어나온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렇다. 자녀는 실망할 게 아니라 대비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날 때 부모도 태어났다. 부모는 딱 아이만큼 컸다. 여전히 부족하고 어리석다. 노력할 뿐이다.

1. 부모는 너를 노엽게 할 것이다

부모는 이랬다 저랬다 할 것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길 것이다. 다른 일로 기분 나빠 화를 내면서도 네가 잘못해서 혼낸다고 포장할 것이다. 잘못했는데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앞뒤가 안 맞는 말도 할 것이다. 자신은 못하는 것을 너에게 요구할 것이다. 부부는 툭하면 싸우고 등 돌리면서 자녀들의 불화는 눈뜨고 못 볼 것이다. 스마트폰에 빠졌으면서 너는 빠지지 말라고 야단할 것이다. 모르면서 알라고 할 것이고 반항하면서 순종하라고 할 것이다. 이런 모습에 너는 분노하고 낙심할 것이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로새서 3:2)

어떤 부모는 자신의 꿈이 너의 꿈이 되어야 한다고 압박할 것이다. 좌절의 기억을 너를 통해 보상 받으려 할 것이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무엇을 위한 헌신인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부정적인 말들을 할 것이다. 막말을 할지도 모른다. 어떤 부모는 자녀를 방치할 것이다. 어떤 부모는 성경적인 체벌을 넘어 자기 신념으로 가혹한 행동을 할 것이다. 어떤 부모는 자기 취향을 진리처럼 말할 것이다. 어떤 부모는 위선의 가면을 쓸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주려고 가족을 포장하면서 자녀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어떤 부모는 과잉보호할 것이다. 자녀는 부모 품에서 배우다가 서서히 떠나야 한다. 때가 되면 세상과 부딪히며 배워야 한다. 그런데도 계속 온실에 머물기를 강요할 것이다. 일일이 지시하며 부모 뜻을 압박할 것이다. 너의 의견, 너의 아픔, 너의 꿈은 듣지 않고 “나도 다 안다.” 한마디로 대화 아닌 대화를 끝낼 것이다. “나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날개를 펴지 마라.”, “나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땅에만 있어라.” 이상한 논리를 펼 것이다. 자녀는 꼭두각시놀음에 지칠 것이다. 분노하고 낙심할 것이다.

2. 부모는 속 좁은 교훈과 훈계로 키우려 할 것이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부모의 원인은 하나로 모인다. “부모의” 속 좁은 교훈과 훈계로 키우려 든다. 자신의 경험, 지식, 편견, 상처의 우물에서 자녀를 키우려 든다. 멋진 교훈과 훈계로 포장하지만 아니다. 심지어 신앙의 교훈과 훈계로 포장하지만 아니다. 과거의 사슬에 매여 있다. 과거로 미래를 교육하려 든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이끌어야 한다. “부모의” 우물을 부수고 “주님의” 바다로 인도해야 한다. 명령이다. 부모는 순종해야 한다. 죄인된 부모가 몸부림칠 몫이다. 자녀에게 부탁한다. 여기 순종하지 않는 부모가 실망스럽겠지만 부모의 몫으로 남겨두기 바란다. 원망하기보다, 상처와 어리석음과 연약함이 많은 사람임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그럼에도 정신이 들 때마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임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부모에게는 부모의 몫이 있고, 자녀에게는 자녀의 몫이 있다. 부모의 못다한 책임은 하나님이 물으신다. 남녀의 부부됨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부부의 부모됨이 얼마나 찬란한지 이어서 말하고 싶지만 이 편지의 길이 아니다.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제 자녀의 몫을 생각해보자.


자녀의 선택

1. 부모를 탓하지 않는다

자녀들은 흔히 말한다. 자신을 미숙아로 보지 말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라고 한다. 모든 어른, 모든 부모가 반성할 일이다. 그러나 자녀 편에서 생각할 것도 있다. 인격체는 자유뿐 아니라 책임도 있다.
사람들은 잘못되면 핑계부터 찾는다. 첫 사람 아담부터 이어진 버릇이다(창 3:12-13). 그런데 우리 삶에는 선택 없이 그냥 받는 것 투성이다. 중요한 것들이 그렇다. 국가, 부모, 신체 같은 것을 보면 내가 고른 게 없다. 그래도 인생의 핑계거리는 아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베이스캠프다. 선물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일 뿐이다. 현미경을 들이대고 더하고 빼면 거기서 거기다. 심지어 우리는 아담의 죄성까지 물려 받았다(롬 5:12-21). 하지만 우리의 최종 심판에 아담 탓은 없다. 각자 행위에 따라 이루어진다(롬 2:6, 계 20:12-13).
적지 않은 자녀들이 부모를 원망한다. 나도 한때 그랬다. 그러나 누구를 탓한다고 인생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진짜 피해를 입은 게 아니라 비겁한 변명인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핑계와 원망의 독이 퍼진다. 삶이 죽어갈 뿐이다.

2. 부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다

<에베소서> 뒷부분에 아름다운 공동체들이 나온다. 교회, 부부, 가족, 일터를 꽃피우는 원리가 나온다. 관계가 틀어진 자리마다 신비롭게 통하는 만능열쇠가 있다.
“그리스도2)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에베소서 5:21)

부부 사이, 부모 자녀 사이, 사회생활 사이 다 마찬가지다. 상대를 판단하고 요구하는 것은 상처만 준다. 인내하고 용납하고 싶어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열쇠다. 아내는 주님께 복종하는 것이 먼저고, 남편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아는 것이 먼저다. 자녀는 주님 안에 있어야 하고, 부모는 주님의 교훈과 훈계를 알고 경험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풀린다. 피차 복종한다. 공동체가 꽃핀다(엡 5:21-6:9).

자녀는 자신도 모르게 부모 모습으로 하나님 모습을 그릴 때가 많다. 왜곡이 일어난다. 자녀의 눈이 하나님을 향할 때, 주님을 경외할 때, 부모를 바르게 보고 가정을 바르게 볼 수 있다. 행복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다(잠 1:17, 9:10). 주님과 사랑에 빠져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순종한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에베소서 6:1)

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부모가 부모다워서? 무서워서? 경제권을 쥐고 있어서? 대안이 없어서? 아니다. 이것이 옳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순종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질서이기 때문이다. 주님께 순종하기 때문에, 주님이 순종하라 명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옳고 순종이 옳기 때문에 한다. 그러면 순종은 공경으로 이어지고 다시 생명의 약속으로 이어진다(엡 6:2).
주님은 가정을 통해 일하신다. 부모를 통해 일하신다. 또한 자녀를 통해 일하신다. 가정은 하나님이 가장 먼저 세우신 아름다운 공동체다(창 2장). 인생의 기반이고 인류의 기반이다. 세포가 망가지면 몸이 망가진다. 가정이 무너지면 인생이 무너지고 인류가 무너진다.
건강한 자녀, 올바른 자녀 교육법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름의 방법들도 이야기된다. 그러나 건강한 자녀와 건강한 부모가 따로 있을 리 없다. 건강한 사람들의 가정이 있을 뿐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지혜와 사랑을 아는 건강한 사람이다.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짧은 편지가 큰 위로나 해답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친구로서 선배로서 좀 더 솔직해지고 싶었다. 한 집에 살면 오히려 놓칠 수 있는, 부모 자녀 각자의 몫을 말하고 싶었다.

모든 부모는 한때 자녀였다. 부모로서 나는 이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녀로서 너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녀 역시 부모가 된다. 부모와 자녀가 각자 과거와 미래를 잊지 않는다면 가정은 최고의 베이스캠프가 될 것이다.

답장을 쓰면서 오래된 편지 <에베소서>가 새삼 다가왔다. 이번 토요일 오후에 커피 한 잔 들고 다시 천천히 음미할 생각이다. 너도 시간 내서 한번 읽으면 좋겠다. 우리 둘에게 배달된 편지로 말이다. 읽고 배운 것들을 다음에 나누기로 하자. 항상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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