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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호

후두암과 나의 인연
  글·이용식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두경부 외과 전문의)

두경부암 환자를 치료한 지 내년 3월이면 어언 30년이 되어간다. 전공의 1년 차를 우울하게 보내고 (내 눈에는 너무나 시시한 수술들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2년 차가 되었을 때 독일 본 대학에서 2년 간 두경부 암 수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은사님과 처음으로 수술을 한 환자가 후두암 환자였다. 당시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된 그 환자는 후두를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고 인어 공주처럼, 목숨을 건지는 대신 목소리를 내 놓아야 했다. 모든 암이 그렇듯이 초기에 발견되면 거의 모두 목숨과 음성을 살릴 수 있지만 늦어지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고 심한 경우는 둘 다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처음 부임한 원자력병원에서 후두암 환자를 많이 수술하게 되었을 당시의 일이다. 하루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내가 후두암에 걸린 것이었다. 비록 꿈이었지만 그 당시 내 마음이 얼마나 절망스러웠는지… 꿈속에서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할지 수술을 받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고, 수술을 받는다면 누구에게 받아야 할지를 놓고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애를 태우다 꿈에서 깨어났다. 꿈이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 후 후두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를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진행된 환자가 많아서 후두를 전부 제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후두를 가급적 많이 남겨서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수술을 고안해 내어 후두암 환자도 코로 숨을 쉬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은 이렇게 진행된 후두암 환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의료 보험의 확대와 의료 전달체계가 잘 발달되어 누구나 쉽게 병원을 찾을 수 있게 되면서 목소리가 조금만 이상해도 의사를 찾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가 초기에 발견된다. 이럴 경우는 작은 수술로 암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수술 후 목소리도 거의 정상이 되고 생존률도 100%에 가깝다. 이런 초기 후두암의 경우는 1박 2일의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7주간 매일 방사선을 쪼여야 하는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비용면에서도 수술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진행되어 한쪽 성대를 모두 제거해야 하는 경우에는 수술 후 음성이 나빠지기 때문에 성악가나 방송인, 목사, 교사, 승(중) 등 목소리가 중요한 경우에는 비용과 시간이 더 들더라도 음성 보존을 위해 방사선 치료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후두암은 전이율이 낮아서 작은 수술로도 완치가 잘 된다. 물론 후두암 중에서 성대보다 윗부분에 생기는 암은 전이율이 높아 목의 림프절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성대에서 생겨난 후두암은 암 부위만 잘 제거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두·경부암 중에서 가장 예후가 좋은 암이 아닐까 한다. 그래도 늦게 발견되어 후두를 모두 제거하게 되면 목아래 부분에 숨쉬는 구멍을 새로이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이 구멍을 통해 숨만을 쉬게 되고 자기 목소리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전혀 대화를 못하는 것은 아니고 식도에 공기를 넣었다가 그 공기를 내뱉으면서 식도 상부 점막을 떨게 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런 방식의 발성을 식도 발성이라고 하는데 숙련될 경우에는 연설도 가능하다. 또한 기도와 새로 만들어 준 식도 사이에 인공 밸브를 삽입하여 숨구멍을 막고 숨을 내쉬면 기도의 공기가 식도로 들어가게 되어 식도발성처럼 말을 하게 해주는 방법도 있다. 또한 전기로 작동하는 떨림장치를 목에다 갖다 댐으로써 진동을 일으켜 혀로 말을 하는 보다 손쉬운 방법도 있다. 이럴 경우 전자후두기라는 장치를 구매해야 하는데 의료보험에서 일부 비용을 대 주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특별한 노력이 필요 없는 발성법이나 목소리가 단조로워 로봇 목소리처럼 들리는 게 단점이다.


후두암은 왜 생겨나나?

흡연이 유일하며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담배가 발명되기 전에는 후두암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19세기 말 유럽에 흡연이 보급되어 건강을 위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추천되기까지 하였는데 이로 인해 온건한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3세가 후두암으로 일찍 죽게 되고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그 아들 빌헬름 2세가 황제가 됨으로 해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또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가 후두암으로 사망하지만 않았어도 오페라 투란도트 4막을 다른 사람이 쓰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후두암하면 흡연을 쉽게 떠올리지만 그 당시에는 그가 입에 물고 있는 담배 때문에 후두암에 걸릴 것을 예측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도 후두암을 일으키는 원인은 흡연이다. 흡연을 하게 되면 수십 종의 암 유발 물질이 입안에서 폐까지 흡입되는데 이로 인해 구강암, 후두암, 폐암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흡연을 하지 않으면 후두암에 걸릴 위험이 없어진다. 물론 간접흡연으로 인해 후두암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필자의 환자 중에 골초인 남편 때문에 늘 담배 연기를 마시며 지내야 했던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본인이 비흡연자였기 때문에 그녀의 후두암의 원인은 수십 년간의 간접흡연이 아니었을까 추정한다. 간접흡연이 위험한 것은 흡연자는 필터를 통해 발암물질을 상당량 걸러내고 들여마시는 반면 간접흡연자는 발암물질을 모두 흡입하기 때문이다.
근래에 흡연 연령이 더욱 낮아지고 여성 흡연자도 부쩍 늘어나 길가나 건물 뒷편, 공원 등지에서 남자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여성들을 종종 발견하게 되는데 앞으로 이삼십 년 뒤에는 여성 후두암 환자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니코틴 중독자 -나는 흡연자를 이렇게 부른다.- 들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금연 시작 며칠 후부터 시작되는 금단증상 때문이다. 이 증상이 상당히 격렬해서 이겨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데 내가 치료했던 거의 모든 니코틴 중독자들은 후두암 진단을 받고나서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즉시 담배를 끊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금연에 실패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금단증상 때문이 아니라 금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설마 내가 암에 걸릴까 하는 안이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흡연자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담배를 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담배를 끊음으로 얻어지는 유익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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