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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호

손주의 옹알이
  글·강구원 (시인. 고려신학교 교장 )

며칠 전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뗀 일이 있었다. 거기에는 우리 부부와 우리 두 딸 다음에 사위 이름은 없고 외손주 민조엘이라고 적혀 있었다.
큰 딸과 사위는 결혼 후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과정 중에 있는데 조엘이는 우리 딸이 유학 중에 낳은 첫 딸이다.
조엘이라는 이름은 제 엄마가 지었는데 엄마이름이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엘림(Ellim)이라서 조그만 엘림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나 조엘은 성경에 하나님의 기쁨이란 뜻을 가진 요엘(JoElle) 선지자의 이름이다. 미국 시민권에 적힌 손주의 영문이름은 조엘 강 민(JOELLE GAHNG MIN)이다.
손주 조엘이는 이제 생후 6개월이다. 건강하던 내 아내는 손주가 태어나기 1년 6개월 전에 청천벽력 같은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전이(轉移)가 되어서 수술도 불가능하고 생명연장, 증상완화가 최선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내 아내는 그만 병원바닥에 힘없이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기대하고 사랑하던 큰딸이 해산하는데도 산바라지는커녕 가보지도 못한 채 딸은 제 남편과 그곳에 있는 교회성도들의 도움으로 건강한 딸을 쉽게 해산했다.
예정일이 이틀이 지날 때쯤 진통이 있어 병원에 갔을 때가 여기 날짜로 2015년 3월 1일이었다. 내가 예배 인도를 마치고 내 집무실로 막 올라오는데 내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여보! 사위에게 전화가 왔는데 엘림이가 순산했데요.”
“그래요? 산모는? 아이는 어떻데?” “모두 다 건강하고 정상이래요.”
금이야 옥이야 하던 딸이 이국땅 먼 곳에서 엄마 없이 저 혼자 해산하느라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순산의 기쁨인가 아니면 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가 여윈 눈꺼풀에 눈물이 가득하더니 누가 볼세라 흐르기도 전에 금세 증발해버렸다.

손주 조엘이가 할아버지에게 유아세례를 받기 위해 사위와 딸은 생후 2개월 된 신생아를 데리고 서울에 왔다. 새벽 5시 인천공항에서 나는 32년 만에 가족의 일원이 된 새 얼굴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림의 소중함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아이들이 유모차를 밀고 나왔다. 누가 나를 밀치기라도 하듯 나는 달려가 유모차를 받았다. 내 눈이 바구니 안에 있는 생후 2개월이 채 안 된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나의 생에 대한 보람과 함께 무한한 책임 같은 것을 느꼈다.
6월 7일 손주에게 유아세례를 베풀었다. 세례 받는 조엘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울지 않고 끝까지 나를 주시해 보고 있었다.

둘째 딸 혜빈이가 국제포럼 참석차 에티오피아에 갔는데 언니는 동생이 돌아오는 날에 맞춰서 6월 15일 조엘이 백일잔치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백일잔치 치고는 좀 특별한데가 있었다.
지금은 발달된 의학덕분에 옛날과 달리 신생아 생존율이 높아서 백일잔치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나는 내심 짐작되는 것이 있어서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백일잔치 행사 장소에 출장사진사까지 불러놓고 엄마가 된 엘림이는 조엘이와 함께 제 엄마도 특별히 좋은 옷을 입게 했다. 그리고 쫓기듯이 시댁에 어른들이 오기 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세 사람은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행사장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엘림이가 나에게 다가와 울먹이며 말했다. “아빠! 아빠는 알지?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그래! 알고 있다.” “엄마가 조엘이 돌때까지 살아준다는 보장이 없어서 그래…”하면서 새내기 엄마는 흐느끼며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다스리고 있었다.
나는 사랑하는 딸을 꼭 껴안으며 “엘림아~ 미안하다. 엄마를 잘 보살펴 주지 못해서… 내가 먼저 가야 하는데…” “비켜봐 아빠. 엄마하고 사진 더 찍을 거야~” “오냐~ 그래 많이 찍어라.”
엘림이는 조엘이와 함께 몇 달 더 있다가 가기로 했지만 갑자기 중동호흡기 증후군 메르스가 창궐하는 바람에 백일잔치 다음날 바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딸은 미국에 도착해서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조엘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몇 장씩과 동영상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온다. 우리가족은 사진이 올 때마다 카카오톡에 전달기능을 활용해서 온 식구가 동시에 보게 된다.
아내는 항암과 임상을 거듭하면서 고통을 견디느라 웃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아내는 둘째가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성경책을 펴놓고 잠을 잔다기 보다는 쓰러져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는 일과 매일 한 번씩 외식을 하기 위해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점을 찾는 것이 겸손한 나의 일과가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반드시 음식상을 찍어서 딸에게 보낸다. 딸은 그 사진을 보고 문자로 “아빠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엄마 많이 드세요. 천천히… 그리고 제가 인터넷을 통해 배달된 반찬도 꼭 챙겨 드세요. 몸에 좋은 거니까…”

요즘은 조엘이가 무척 컸다. 벌써 아랫니 두 개가 하얗게 보이고 뒤집기를 하더니 배밀이도 하고 기어 다니려고까지 한다.
얼마 전 아이들이 바닷가에 나가서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제 엄마가 “조엘아 저기 바다를 건너면 할머니가 계시는데 거기 갈까?” 하니까 조엘이가 제 엄마의 말에 맞춰서 애- 라고 뜻 모를 옹알이를 하는 동영상이다.
내 아내는 그 동영상을 보고 활짝 웃었다. 얼마 만에 보는 웃는 모습인가.
“카톡♬, 카톡♬, 카톡♬” 오늘도 어김없이 동영상이 떴다. 
제 엄마가 조엘이에게 “조엘아~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인사해봐.” 하면 제 엄마의 말에 용케도 맞춰서 애- 라고 옹알이를 한다.
내 아내는 손주 조엘이의 옹알이를 신기하게도 손주의 안부로 받고 대소(大笑)하면서 “조엘이가 할머니한테 인사를 하네…” 하고는 그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곤 한다.
이제 겨우 환갑을 지낸 아내가 매일매일 손주의 옹알이를 듣고 저렇게 깔깔대고 웃을 수만 있다면…
나는 아무래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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