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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호

동성애 이슈에 부쳐
  글·차 한 (가천대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인천국제침례교회)

J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먼저 며칠 전 점심시간에 초코 쉐이크를 사주신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씀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것 같은데 뒤늦게나마 메일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10분도 안 되는 짧은 교제의 시간이라 경황이 없어 마무리도 못하고 각자 오후 일과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 쉐이크의 훌륭한 맛은 지금도 제 미각회로 내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탁월한 디저트를 선물하여 주신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웠던 점은 맛있는 음료를 마시며 경청하였던 교수님의 동성애에 관한 견해에 대해 제가 구체적으로 답변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교수님께 메일을 드려 제 의견을 소상히 밝히고 그럼으로써 서로 간에 영적인 유익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이처럼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J 교수님께서는 평소 교수님이 존경하는 K 목사님의 ‘동성 결혼 시대의 믿음’이란 제하의 설교문을 읽으시고 그분의 의견에 공감한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판단의 기준은 어떤 목사나 신학자나 영적 지도자 등과 같은 사람의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롬3:4).

그러면 이제 K 목사님의 설교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 훼손

우선 K 목사님은 설교의 서두에서 “기독교인들 중에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동성애 때문에 심판받았다는 소문이 널리, 그리고 깊이 퍼져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동성애 때문에 심판받은 사실이 그저 ‘소문(所聞)’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소문’은 사전적 정의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전하여 들리는 말’입니다. 즉 K 목사님은 ‘소문’이란 단어를 선택하여 사용함으로써 동성애에 대한 심판은 성경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총체적인 타락과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인데, 동성애 때문이라고 오해합니다.”란 부연설명까지 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단골메뉴가 바로 이와 같은 주장인데 그들과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성경을 최고의, 그리고 최종의 권위로 믿습니다.” 하면서 “동성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 말씀은 모두 여섯 개”라 하고는 이를 소개합니다. 소개로만 끝내지 않고 이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말하고 나서 “이 해석에 어느 정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이라 한 후 동성애에 대한 바울의 정의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 전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즉 성경 말씀의 선포 자체로 끝나지 않고 인본주의적인 해석을 첨가하는 것은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동성애지지자들의 주장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아울러 성경에서 동성애에 대해 언급된 구절들(창19:5; 레18:22,23; 20:13; 신23:17,18; 삿19:22,23; 왕상14:24; 15:12; 22:46; 왕하23:7; 욥36:13,14; 롬1:26,27; 고전6:9,10; 딤전1:10, 유1:6,7) 중 반 이상을 생략하고 단지 여섯 구절이 전부인양 언급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특히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총체적인 타락과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란 본인의 주장이 틀렸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유다서를 배제한 것은 고의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또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는데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것들의 주변 도시들이 같은 방식으로 자기를 음행에 내주고 낯선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된 것과 같으니라.”(유1:6,7, 이하 흠정역)

분명히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가 자기를 음행(fornication)에 내주고 낯선 육체(strange flesh)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낯선 육체에 대한 음행이 없었더라면, 즉 동성애가 만연되지 않았더라면 소돔과 고모라는 결코 유황과 불로 심판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창19:4-11; 23-25).

성경 말씀을 잘 모르더라도 동성애를 뜻하는 영어 단어 소도미(sodomy)가 어떻게 유래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지 상식적으로 헤아려 본다면 K 목사님을 비롯한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누구든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성경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문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거나 아예 제거해 버리는 이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십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2. 자살

K 목사님은 동성애자들을 크게 두 종류로 ‘타락한 동성애자들’과 ‘타고난 동성애자들’로 나누고 있습니다. 운(韻, rhyme)을 맞추어 동성애자들을 이렇게 둘로 대별하기 위해 K 목사님은 세 가지 논거를 들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자살’입니다. K 목사님은 말씀합니다. “자살은 죄다. … 우울증이나 다른 사정으로 인해 자살로 몰린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  자살한 사람들의 사정이 모두 다르듯, 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람을 교리적으로만 단죄할 수 없듯이, ‘타고난 동성애자들’을 교리만으로 정죄하고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자살은 죄다’라는 생각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자살은 죄다. - 죄인은 지옥에 간다. -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이 논리를 따라갑니다.”

자살은 죄며, 우울증이나 다른 사정으로 인해 자살로 몰린 사람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되었든 잘못된 선택입니다. K 목사님의 논리와 달리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때론 자살충동을 느낄 수 있겠지만 자살을 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인내의 본이 되는 자로서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였던 욥이나 구약을 대표하는 자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 인정받은 모세, 그리고 메시야가 오기 전에 보냄을 받아야 하는 자로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하였던 엘리야 등에게도 자살 충동이 있었습니다(욥1:1; 7:15,16; 약5:11; 민11:15; 12:3; 요1:17; 왕상19:4; 왕하2:11; 말4:5). 그렇지만 그들은 자살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살하면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입니다(삿16:21-31; 히11:32; 삼상28:19; 31:1-6). 진실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죽음을 맞더라도 천국에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요1:12; 롬10:9,10).

아울러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살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확고한 것처럼 동성애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성경적 진리입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졸저 ‘성서건강학’ 중 ‘자살’ 칼럼이나 졸저 ‘성경으로 세상보기’ 중 ‘동성애가 복음에 미치는 영향’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K 목사님께서 일부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일반화시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에 대해서도 무지하리라 예측하고 자신의 판단을 받아들이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성애 이슈에 대해 일종의 침묵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잠16:18,19; 눅19:40).

3. 타고난 동성애자

두 번째 논거로서 K 목사님은 설교의 본론에서 ‘동성애가 선천적’일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든, 어느 사회든지 인구의 3~5% 정도가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거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을 ‘타고난 동성애자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인구의 3~5% 정도가 ‘타고난’ 동성애자들이라고요? K 목사님은 또한 설교의 결론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동성애자들은 더 흔해질 것입니다. 인구의 3~5%면 적은 수가 아닙니다. 통계적으로 말하자면 30명이 모여 있을 때 한 사람 정도는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타락한 동성애자들’과 ‘타고난 동성애자들’을 구별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결론적으론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서구 인구의 2~ 3%인 동성애자보다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 모두가 ‘타고난 동성애자들’이란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그렇다면 동성애는 과연 타고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동성애는 결코 선천적이지 않습니다.
우선 동성애가 유전이 아닌 과학적 근거는 자녀를 적게 낳는 행동양식은 유전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남성 동성애자의 15%만이 결혼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동성애를 유발하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하기에, 동성애 유전자를 가진 집단에 속한 사람 수가 점차 줄어들어서 동성애는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어야 합니다.

돌연변이에 의해 정상적인 유전자가 손상되어 나타난 이상 현상이라는 주장도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전적 결함에 의해 나타나는 유전질환은 0.25% 이하의 빈도를 가지고 있고, 모든 유전질환자를 합치더라도 전체 인구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며, 동성애자 수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1993년에 동성애자인 해머에 의해 Xq28과 남성 동성애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발표된 논문이 아마도 동성애가 유전이라는 주장을 확산시킨 주범일 텐데요, 이것을 포함하여 동성애 유발 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 모든 논문들은 후속 논문들에서 그 연구 결과들이 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 온라인에는 Xq28과 남성 동성애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해머의 결과는 소개되고, 라이스 등에 의해 동성애 유발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과와, 해머를 포함한 연구팀이 많은 가계를 조사하여 Xq28과 동성애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과는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체구조에 의한 연구 및 일란성 쌍둥이에 대한 연구 등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들에 의해 왜곡된 결과들이 나왔지만 최근의 대규모 연구결과들에 의해서 동성애가 선천적이지 않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요8:32,44). (동성애가 선천적이지 않다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라온누리’에서 출간된 ‘동성애 과연 타고나는 것일까?’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4. 언론

이처럼 동성애가 선천적이지 않음에도 K 목사님의 경우처럼 동성애가 선천적이라고 믿게 만든 주범은 언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술하였듯이 국내 포털 사이트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미디어는 동성애에 대한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오히려 이의 확산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며칠 전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게재된 ‘디지털 썰전’이라는 사회현안 투표 사이트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설명한 동성결혼 반대 문구를 보십시오. 그 내용은 ‘동성애에 대한 인식의 부재로 시기상조이다’입니다. 즉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면 동성결혼은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반대를 누르는 사람에게조차 ‘당신은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아직 안되어 있는데 동성애에 대해 앞으론 제대로 인식하라’고 세뇌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더욱 가관인 것은 투표종료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간발표라는 형식을 빌려 7월 13일 오후 1시 21분경에 허용 41% 반대 59%로 동성결혼 지지수가 가장 높았던 상황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자는 의견이 다수인 것처럼 기사를 발표하고자 했으며, 7월 14일 0시 투표 종료 시에 ‘반대 71%(131,439명), 찬성 29%(53,407명)’으로 최종집계가 나왔으나 14일 오전 6시에 찬성 35%, 반대 65%로 수치가 조작된 채 홈페이지에 게재가 된 사실입니다.
비단 이뿐입니까. 올해 초 중앙일보의 자회사인 케이블방송 JTBC에서는 청소년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동성애에 빠진 여학생들이 오랜 시간 깊은 키스를 하는 장면이 방송되어 청소년들 및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었지요. 청소년 시기는 성적 정체성이 확립되는 중대한 시기로 자칫 잘못된 성 정보가 주어질 경우 성 정체성 혼란과 성 정체성 장애를 가져 올 수 있음은 불문가지입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중앙일보가 (해킹 당했다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동성결혼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고자 여론조작 행위를 조직적으로 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중앙일보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매스미디어가 친동성애자들에 의해 장악이 되어 있으며 심지어 뉴스앤조이, 복음과 상황, CBS 등 기독교 언론에서조차 동성애 확산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향으로 K 목사님과 같이 속임을 당하고 또 그럼으로써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본의 아니게) 속이게 되어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에 대해 분별력을 잃게 되는 형국이 되어 버렸습니다(요8:44; 고후4:4; 엡2:2).

5. 인권

또한 언론에서 동성애가 후천적이라는 과학적 진실 하나만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선진국의 자료에 의하면 ‘신규’ 에이즈 감염자의 70% 이상이 남성 동성애자들입니다. 특히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보고에 의하면 ‘13~24세’ 신규 남성 에이즈 감염자인 약 94%가 동성 간 성행위로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성과학연구협회는 “동성애는 에이즈를 전파하는 위험행동”이라고 발표했지만 언론에서는 (국민일보를 제외하고는) 이를 결코 보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요? 2011년 9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정한 ‘인권보도준칙’때문입니다. 그 안에 ‘성적소수자(동성애자)를 에이즈 등 특정질환이나 사회적 병리현상과 연결 짓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2012년 3월 이전에는 언론사들의 동성애 지지보도 비율이 51.75%였으나 그 이후에는 77.25%로 급격이 상승했고, 조만간 90%이상이 되지 않을까 예측됩니다.

즉 ‘인권’(?)을 내세워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이 동성애를 거리낌 없이 쉽게 접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이지요.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국내에서 지난 10년 동안 성인 에이즈 감염자 수는 4배, 지난 14년 동안 청소년 에이즈 감염자 수는 26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2013년 에이즈 감염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서면서 한국은 공식적으로 ‘에이즈 확산 위험국가’가 되었지요.

에이즈 감염자 1인당 평균 평생 5억 원 정도의 치료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에이즈 환자 1명의 에이즈 억제제 약값 비용만 한 달에 약 3백만 원 곧 1년간 약 3천 6백만 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에이즈 환자가 1만 명이면 한 해 이 약값만 3천 6백억 원이고 10만 명이면 3조 6천억 원이 됩니다. 이 모든 비용은 100% 국민 세금으로 부담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에이즈 치료비용을 100%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나라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온 국민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부터 K 목사님께서는 ‘타고난’ 동성애자들이라는 허상을 강조하는 대신 동성애에 대한 이러한 심각한 실상들을 언급하면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예언자적 사명을 잘 감당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렘14:14).  

6. 교육

미디어와 함께 동성애 확산에 크게 기여하는 분야가 교육입니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서구 여러 나라의 교육 현장에서 동성애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다소 있기는 하지만, 캐나다 일부 주의 커리큘럼을 보면 초등학교 때 생식기 구조를 가르치는데 만 8세 때 동성애가 정상이라고 교육하며, 만 13세 때 구체적으로 항문·구강성교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할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해 6월 12일 전국의 고1·2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전국연합학력평가 사회과 탐구 영역에서 “동성(애) 결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시험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고1 사회과 탐구 ‘생활과 윤리’에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이해하기’라는 의도로 출제된 문제를 보면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 중 적절하지 않은 것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예시가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개인적인 선택까지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는 성적(性的) 취향만 다를 뿐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동성 결혼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고 아이를 낳지 못해 인구를 감소시킬 것입니다.” “㉤이성 결혼은 허용하면서 동성 결혼을 규제하는 것은 평등 정신에도 어긋납니다.”로 나와 있는데 이 중 ㉣ 곧 동성 결혼 반대 입장이 정답(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2 사회과 탐구 ‘생활과 윤리’에서도, “성적 소수자들은 우리 대다수의 사람들과 성 정체성이 다를 뿐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고 ‘틀린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성적 소수자들의 성 정체성을 전통적인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묻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시험에서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라도 ‘동성애’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인데, 그렇다면 K 목사님의 지론(持論) 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서’도 안 되고 ‘피켓을 들어서’도 안 되며 그저 침묵해야 하는 것인지요(눅19:40)?

7. 헨리 나우웬

K 목사님이 ‘타락한 동성애자들’과 ‘타고난 동성애자들’로 대별하기 위해 들고 있는 마지막 논거는 ‘헨리 나우웬’입니다. K 목사님은 말씀합니다.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였던 헨리 나우웬은 여섯 살 때부터 자신에게 동성애적 경향이 있음을 알았고 평생토록 그 경향과 싸웠습니다. 그는 다른 동성애자들에게 자신처럼 ‘거룩한 독신’(holy celibacy)을 선택하라고 권했습니다.”

K 목사님은 교회 주일예배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설교하면서 헨리 나우웬을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헨리 나우웬(1932~1996)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영적 지도자인 것이 사실인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1957년 예수회(제수이트, Jesuit) 사제로 서품을 받은 카톨릭 신부입니다. 예수회는 이냐시오 로욜라에 의해 1534년 8월 15일 설립되었는데 그 목적은 1517년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의 모든 흔적들을 파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회원들은 이것을 반종교개혁(the Counter-Reformation)이라 불렀지요. 예수회는 자신들의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도 된다고,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회원들은 철저하게 상부의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자신들의 최고위직인 총장(General)의 명령에 절대 복종을 맹세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회주의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으시면 에드몽 파리가 쓴 ‘예수회의 비밀역사’나 에릭 펠프스가 쓴 ‘바티칸 암살단’ 등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헨리 나우웬은 제수이트 신부(神父)이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결정을 신봉하는 종교다원주의자이고, 신세계질서(NWO)를 추구하는 뉴에이저입니다(마23:9; 벧전2:5,9; 요14:6; 행4:12; 계13:1-18).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지도자가 되기는커녕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하는 ‘빛의 천사로 가장한 자’입니다(고후11:14).

그가 집필한 30여권의 저서들 가운데 성경에 반하는 많은 내용들이 나오지만, 지면 관계상 본 메일의 주제인 동성애에 관한 트릭 하나만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삶’(IVP 간) 제 1장 ‘예수님이 사형 선고를 받으시다’(19P) 중에서 인용합니다.

“창살 안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이제 ‘저주받은’ 자로 분류되어 더 이상 살 가치도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는 원수, 반역자, 아웃사이더, 사회의 위험요소가 되었다. 그는 격리되어야 하며 사회생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왜?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흑인이고, 흑인들은 위험하다. 그는 동성애자이며 동성애자는 타락한 이들이다. 그는 유대인이며 유대인은 신뢰할 수 없다. 그는 난민이며 난민은 우리 경제를 위협한다. 그는 아웃사이더이며,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고 오히려 우리가 잊고 싶어 하는 것을 기억나게 한다.”

흑인이기 때문에, 유대인이기 때문에, 난민이기 때문에,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죄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헨리 나우웬은 거기에 동성애자를 슬쩍 끼워 넣고 있습니다. 즉 동성애는 죄가 될 수는 없다는 논리를 교묘하게 집어넣고 있는 것이지요.

비록 헨리 나우웬은 19년 전에 죽었지만 그가 취했던 이와 같은 방식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헨리 나우웬과 같은 제수이트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 관련 행보를 들 수 있는데요, 그는 지난 1월 스페인의 트랜스젠더와 그의 약혼자를 교황청으로 불러 접견하였고 7월 11일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열린 교황과 시민사회 단체 대표들과의 만남에 동성애자이며 동성애 인권단체 소모스게이 대표인 시몬 카살을 참석토록 하여 동성애를 통한 신세계질서(NWO)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K 목사님이 헨리 나우웬에 대해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라고 한 말은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사5:20).
8. 타락한 동성애자

K 목사님은 말씀합니다. “‘타락한 동성애’는 타락한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혐오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타고난 동성애’에 대해서는 그렇게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이미 ‘타고난 동성애’란 꾸며낸 이야기임을 말씀드렸는데요, 그러면 결국 동성애는 ‘타락한 동성애’만 남게 됩니다.

2000년 커밍아웃 한 유명한 한 연예인이 2007년 5월 17일 서울대 특강에서 “중고등학교 때 관계를 가진 남자 선배들이 300명은 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동성애자)가 4년 사귄 거면 스트레이트(이성애자)가 40년을 사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동성애 삶을 고백한 책에서 자기의 삶과 사랑이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의 사랑은 사회의 따가운 편견 앞에서 시련을 겪지만 그는 단지 사랑을 할 뿐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하는 이 동성애자를 K 목사님은 어떠한 수식어를 붙여 표현하실지 궁금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동성애는 죄다(창19:5; 레18:22,23; 20:13; 신23:17,18; 삿19:22,23; 왕상14:24; 15:12; 22:46; 왕하23:7; 욥36:13,14; 롬1:26,27; 고전6:9,10; 딤전1:9,10, 유1:6,7).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나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고전6:9,10)

“이것을 알라. 곧 율법은 의로운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지지 아니하고 오직 법을 무시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와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속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사람을 죽이는 자와 음행을 일삼는 자와 남자와 더불어 자기를 더럽히는 자와 사람을 납치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위증하는 자와 그밖에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으로 인해 만들어졌느니라.”(딤전1:10)

그렇습니다. 동성애는 음행, 우상 숭배, 간음, 도둑질, 탐욕, 술 취함, 욕, 착취, 살인, 납치, 거짓말 등을 비롯하여 그밖에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과 함께 우리가 끊어버려야 할 ‘죄’입니다(살전5:22).

9. 판단

그러나 K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한다면, ‘무엇 무엇은 죄다’라는 표현은 조심해야 할 표현 중 하나입니다. 자살은 죄다, 이혼은 죄다, 살인은 죄다, 혹은 동성애는 죄다. 모두 그렇습니다. 너무도 모호하고 혼란스럽습니다. 그 한 문장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진실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아주 속기 쉽고 또한 속이기 쉬운 말입니다.”

즉 K 목사님은 동성애뿐 아니라 모든 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라고 하시는 것인데요, 비단 K 목사님뿐이겠습니까. 동성애옹호론자들은 동성애가 죄라고 지적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목회자의 간통과 같은 죄악들이 기독교 안에 넘쳐나고 있는데 이러한 죄들을 덮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이라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조소는 들어도 마땅하지요. 한국 교회가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만약 동성애가 죄로 규정되지 못한다면 (일반 사회에서보다는 덜 하겠지만) 교계에도 자주 발생하는 온갖 성적 범죄도 정죄할 근거가 사라지게 됩니다. 아울러 성경적 결혼의 정의가 깨져 중혼이 가능해지고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유럽 국가들에서 보듯) 수간이나 근친상간이 허용되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성적인 죄악뿐 아니라 모든 죄를 (다 나름대로의 상황윤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죄라고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딤후4:3,4).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지요(마1:21, 눅5:32). 동성애옹호론자들의 최종 목표(NWO)가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없었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하였을 거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죄인들 중 우두머리라 칭하고 있습니다(딤전1:1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성도들에게 죄를 판단하여 회개의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고전6:2; 고후7:9,10; 12:21).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기 전까지 모두들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끊임없이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히12:4).

10. 사랑

다시 말씀드리자면 분신자살을 해서라도 동성애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처럼 동성애자를 대해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아울러 K 목사님의 주장 곧 ‘동성애가 인간이 짓는 다른 죄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 ‘그들의 고통과 번민에 공감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서 진정 동성애자들을 참된 사랑으로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랜 기간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예수님을 인격적인 구원자와 주님으로 영접한 후 동성애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기쁨과 평강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성애자들을 적지 않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탈동성애’만이 진정한 동성애 해결책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그들이 복음을 통해 동성애의 죄로부터 벗어나 ‘탈동성애자’가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요1:12; 3:16; 고전15:1-4; 고후5:17; 요일1:6-10).

J 교수님이나 저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빚진 자로서 동성애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며 그들이 동성애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롬1:14; 6:15-22; 요일3:23; 요8:32). 이것이 진정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제 메일에 대해 답변을 주신다면 이번에는 제가 초코 쉐이크를 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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