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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호

부부의 자격
  글·김종철 (수필가. 충남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마중물교회)
대한민국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이후에 영상의학과(影像醫學科) 수련 과정을 거쳐 영상의학과 전문의(專門醫)가 되기 위해, 나는 의과대학(의예과 포함 6년), 군의관(軍醫官, 3년), 인턴(1년), 레지던트(4년)를 거쳐 전문의 자격 고시(考試)를 치러 합격하느라, 무려 14년을 보냈다. 그리고 매년 영상의학 관련 학회와 지도 전문의 연수 교육에 참여하여 영상의학과 전문의 및 레지던트 지도 교수로 활동할 수 있는 정당한 자격을 부여받고 있다. 합당한 과정을 밟지 않아 자격이 미달되면, 우리나라에서 영상의학과 의사로 일하기가 어려워진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최신 의학이기 때문에, 이런 제도가 제자를 가르치는 교수에게도 힘겹기는 하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자발적으로 응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부의 결혼 이전과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혼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결혼하려는 커플에게는 결혼 예비 학교를 이수하게 해서 졸업 시험을 치른 후에 합격자에 한해서만 결혼을 허락하고, 이미 결혼한 부부에게는 가정생활 연수 교육을 통해 부부 생활을 풍성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강제는 아니다.

사랑에 빠지거나 연애를 하는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말 한 마디, 표정이나 제스처 등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그리고 변하는 몸치장 하나하나가 참신하고 신비롭기만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과 결혼을 하기만 하면 행복이 자기 가정을 가득 채울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자기들의 사전에는 불행·의심·불신·파국·빈곤·질병·식상(食傷)·권태기(倦怠期) 등이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말하고 또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결혼의 햇수가 늘어날수록 배우자라는 존재에 관해 무덤덤해지고 마는 게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속성이기도 하다. 대부분 세상에서 자기만큼 배우자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착각에 푹 빠지고 만다. 실지로 부부 사이에서 상대방 배우자 알아맞히기 퀴즈를 해보면, 각자가 배우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점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아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런 서로에게 실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반면에 늙어가면서도 알콩달콩 연애하면서 살아가는 노부부(老夫婦)에게는 하루하루가 더 새롭고 신비롭고 재미있기만 할 것이다. 연애시절이나 중장년 시절의 배우자에게서 발견하지 못했던 점·면을 또 다시 발견하면서, 스스로 또 서로 놀라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하늘이라는 화폭(畵幅)에 그려지는 구름의 모습과 색깔이 똑같은 날이 하루나 한 시간도 없듯이, 매일 매순간 서로가 마냥 신비로운 존재로 참신하게 다가옴을 체감하는 부부는, 이 땅에서도 이미 천국을 맛보고 있는 셈이리라. 그래서 ‘배우자에 관해 더 많이 더 정확하게 배우자!’라는 구호를 더 크게 외치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참에, 배우자에 대해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자기 배우자를 배우기를 그친 부부들을 위해 부부 자격 고시와 연수 교육의 필요성을 내가 감히 제창해보려고 한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게 된 배경에는, 얼마 전에 아내랑 같이 다시 본 1990년대의 미국·프랑스 합작 영화 《그린카드(Green card)》에서 받은 감동이 자리 잡고 있다. 서로 전혀 모르던 두 남녀가 각각 다른 목적으로 미국 영주권(permanent visa, 그린카드)을 얻기 위해 편의상 위장 결혼한 뒤 바로 헤어지려고 하다가 결국은 본의(本意)와는 다르게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The story of two people who got married, met, and then fell in love)의 코미디 로맨스·멜로 영화이다. 이 영화는 48회 골든 글로브(Golden Glove) 시상식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의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명화(名畵)이기도 하다.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트루먼 쇼(The Truman Show)》와 같은 영화로 널리 알려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영화감독 피터 위어(Peter Weir)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으며, 프랑스 남자 국민배우 제라드 드빠르디유(Gerard Depardieu)가 할리우드에 진출했고 미국 여배우 앤디 멕도웰(Andie MacDowell)도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의 한스 짐머(Hans Zimmer)가 음악을 맡았던 영화이다.

미국을 배경으로 영화 《그린카드》가 펼쳐진다. 프랑스 남자 조지(제라르 드빠르디유 역)는 그린카드를 얻어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그리고 미국인 여자 브론테(앤디 멕도웰 역)는 이사해야만 하는 친구 어머니로부터 온실이 딸린 넓은 정원이 있는 멋진 집을 얻기 위해, 혼인증명(혼인신고서)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로 일면식(一面識)도 없던 두 사람이 서로의 목적 달성을 위해 변호사를 통해 위장(僞裝)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시 위장 결혼으로 미국 영주권을 가지려는 불법 체류자들이 많던 시절이라, 이민국에서는 외국인과 결혼한 미국인 부부에 관해 진짜 부부가 맞는지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있다. 위장 결혼한 것으로 발각이 되면, 브론테는 범죄자로 낙인 찍혀 아파트에서 쫓겨나야 하고, 조지는 본국인 프랑스로 당장 추방되어야 한다. 브론테가 처음에 자신의 아파트에 들어섰을 때, 그 집에 딸려있는 온실은 모든 것이 메마르고 죽어버린 느낌의 공간이었다. 조지에 관해 마음을 꼭꼭 닫고 사는 브론테의 삭막함처럼. 하지만 브론테의 살뜰한 원예(園藝)의 손길이 닿은 후, 온실은 식물들이 점점 활기를 띄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어간다. 그렇게 변해가는 브론테의 집에서 조지와 브론테는 일주일 동안 정식 부부인 것처럼 행세하기 위해 함께 억지 생활을 하게 된다. 브론테의 집으로 옮겨 오던 날, 무직(無職)인 조지는 어항(魚缸)에 키울 완상용(玩賞用) 물고기를 브론테에게 선물하면서, 조심스럽게 브론테의 영역으로의 잠입을 시도한다. 사귀는 남자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 작곡가로 일했다고 둘러대는 뚱뚱하고 못생긴 외국 남자와 동거하기가 불편하기만 한 브론테.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온실 공간이 망가질까봐 걱정을 태산같이 하면서, 조지에게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게 하면서 조지를 무시하는 말을 마구 해댄다. 새(鳥) 모이 같은 음식만 먹고 사는 채식주의자(菜食主義者) 브론테를 걱정한 조지는, 브론테의 연구용 식물이 있는 옥상의 정원에 그녀 몰래 식용(食用) 과실수를 모종하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그렇게 소중한 온실에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던 이방인이 들어섰다는 것만 해도 용납이 안 되는데, 자신의 엄명(嚴命)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엉뚱한 일을 저지르는 조지를 보면서 화가 얼마나 치솟겠는가. 엄청난 사고방식 차이가 있는 둘이 동거하면서 다투는 일이 잦아지게 마련이다. 그러는 사이에, 두 사람의 관계를 수상하게 여긴 미국 이민국에서 둘이 사는 곳을 방문하여 상세하고 까다로운 조사를 하게 된다. 둘은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진짜 부부처럼 위장하면서 서로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서로가 만난 곳, 서로의 가족 관계, 좋아하는 음식과 향수, 잠버릇 등을 암기하려고 무척 애를 쓴다. 아파트 옥상에서 둘만의 가짜 신혼여행 사진까지 찍고, 서로의 사생활에 관해 서로 알려주고 배우면서, 이민국의 예상 질문에 관한 답안을 외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서로는 서로에게 서서히 남모르는 애틋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인위적인 기준을 점차 허물게 되고,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가게 된다. 둘은 야생적이고 전투적이던 위장 결혼 커플의 삭막한 모습에서 어느새 벗어나, 점점 하나가 되어가는 사랑의 과정을 밟게 된다. 브론테는 자기 속에 갇혀있던 원예전문가가 아닌, 자연의 일부로서의 온실 및 조지와 함께 나누는 행복한 일상을 즐기게 된다. 그런데 일은 결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이민국의 엄격한 실사(實査)가 나온 후 더 큰 의심을 받게 된 브론테와 조지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서로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암기하게 된다. (이들이 서로에 대해 목숨 걸고 공부하는 모습은, 기혼자이면서도 배우자에 관해 알고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무심한 영화 관람객인 우리들에게, 큰 감명과 감동을 주게 마련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이민국 면담에서, 조지의 실수로 두 사람의 위장결혼이 그만 들통이 나고 만다. 이때 조지는,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게 된 브론테와 그녀의 생명과도 같은 온실을 지키기 위해, 둘이 아닌 자신만 처벌 받아 프랑스로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이민국에 선처를 빈다. 브론테는 조지의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위해 멋진 정원을 가꾼다고 믿었던 지난날의 생각이 자신만을 위한 고집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사랑하면서도 조지를 프랑스로 떠나보내야만 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지는 브론테를 위해(for Bronte)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전해주며 이렇게 쪽지를 남긴다. “아프리카. 화요일. 브론테. 코끼리가 또 날뛰고 있소. 너무 날뛰어서 잠을 못 자겠어. 사냥 여행 가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소.”

그런데 이 영화의 여우(女優) 앤디 맥도웰의 실제적인 파란만장한 삶이 이 영화에 중첩되면서 나에게 더 진한 감명을 더한다. 1958년 4월 21일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South Carolina) 개프니(Gaffney)에서 태어난 앤디 맥도웰은, 6살 때 부모가 이혼함으로써, 충격으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어머니 밑에서 험한 유년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녀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도 맥도날드(Mcdonald’s)나 피자헛(Pizza Hut) 같은 곳에서 일해야 했으며, 모델이 되어 돈을 벌기 위해 다니던 대학도 중도에 포기하였다.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광고에 출연한 슈퍼모델 출신이지만, 억센 미국 남부 억양의 사투리 때문에 장기간 고전하였다. 제라드 드빠르디유와 공연한 《그린카드》와 영국의 영화배우인 휴 그랜트(Hugh Grant)와 사랑에 빠지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으로 겨우 자신의 입지를 회복하는, 7전 8기의 입지전적인 여배우이다. 영화 《그린카드》에서처럼 그녀의 삶도 좌절과 실패 및 굴곡이 많았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의 조지와 브론테처럼, 부부가 연애시절 이상으로 서로에 관해 열심히 공부하면서 부부로 계속 살아갈 자격을 갖추기만 한다면, 결혼생활이 얼마나 더 풍성해질까?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세계 최초로 부부 자격 고시를 도입해봄이 어떨까? ‘남자의 자격’ ‘아내의 자격’뿐만 아니라 ‘부부의 자격’이라는 TV 프로그램도 이제는 생겨야 하지 않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올 9월이, ‘배우자를 배우자’라고 외치면서 부부 자격 갖추도록 하는 열심히 공부하는 성실한 부부들을 통해, 권태기에 빠지거나 관계가 악화된 부부들이 구원받는 구월(求月)로 전환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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