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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호

미도리카와에 대한 상념과 투병중인 선배를 위하여(1)
  글·송영옥 (기독문학 작가. 영문학박사. 대구제일감리교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소설에 ‘미도리카와’라는 인물이 있다. 작가 하루키는 일본의 권위지 ‘아사히신문’이 했던 “지난 1천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문인”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생존 인물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미도리카와는 오이타현에 있는, 작은 온천이 흐르는 곳의 한 여관에 투숙 중이다. 여관 앞에는 아름다운 개울이 흘렀고, 색깔이 선명하고 살이 탄탄한 물고기가 많이 잡혔다. 아침이면 새들은 높은 소리로 울어대고 한밤중엔 멧돼지들이 찾아왔다.

미도리카와의 일상은 여러 가지 약초며 식용식물이 가득 찬 산 속을 배회하거나, 방에 들어앉아 책을 읽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산 속의 온천 여관에는 대부분 은둔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투숙하기 마련인데, 40대 중반의 미도리카와 역시 겉으로는 이러한 투숙객 중의 하나로 보인다.

그러나 미도리카와에게는 범상치 않은 재능이 있다. 인간이 저마다 지니는 독특한 색깔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그 색깔들은 그 인간의 몸의 윤곽을 따라 희미하게 빛나면서 떠올라, 후광처럼 미도리카와의 눈에 뚜렷이 보인다. 그가 지닌 이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주어진 자격 같은, 눈앞의 죽음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주어진 권한이었다.

때문에 미도리카와에게는 죽음을 앞두고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어떤 색깔을 가지고 어떤 특징적 방식으로 빛을 내는 사람과 사물을 찾아서, 순간적이면서도 영원한 생명의 존재를 지각하고 다른 사람을 자신의 지각에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지각이란 삶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과 사람들에게서, 그 각각이 발하는 색깔들을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아주 세밀하고 특별한 그 존재들이 모든 존재의 성스러운 근원으로 파악되는 체험을 말한다. 따라서 삶과 죽음도 하나로 융합되고 결국 자신도 그 일부가 되어 영원한  빛의 세계로 들어가는 체험이다.

작가는 이 긴 제목의 소설에서, 미도리카와처럼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시점에서 생겨나는 이 특별한 능력의 근원은 인간의 지각 자체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고 밝히면서, ‘육체의 틀에서 벗어나서 형이상학적 인간으로 거듭나는 체험’이라 하였다.

혈액암 말기로 투병 중인 선배가 계신다. 그는 의사로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상의 좋은 것들’을 모두 지니고 살아온 사람이다. 암 초기 서울의 전문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으나, 치료는 집 근처의 병원에서 받으라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치료를 받은 지 1년 가까이 된다.

병원에서는 면역치료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방법으로 고용량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반복적인 치료로 지치기 쉬웠지만, 다행히 선배는 영양섭취를 잘하면서 부인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잘 견디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오직 살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염원을 붙잡고 있다.

어저께는 선배가 함께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고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고 해서 저녁시간 불고깃집에서 만났는데, 선배는 정말 의무처럼 음식을 많이 섭취하였다. 나는 병과 음식과 세상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 같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짠하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 순간 하루키 소설의 미도리카와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어쩌면 선배가 육체라는 틀에서 벗어나 소설의 인물처럼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될 수만 있다면, 병과 싸우는 일이 훨씬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배의 혈액암이 완치된다 아니다의 차원이 아니다. 육체의 텐트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투병 기간 동안에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 그리고 사람과 모두 화목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천상의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나는 사투를 벌이느라 너무나 굳게 닫혀 있는 선배의 ‘인식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어드리고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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