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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호

아이의 거짓말
  글·유한익 (서울우리아이마음클리닉 원장. 남포교회 )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이의 흔들리는 눈을 보면 어느 부모나 쉽게 알 수 있다. 아이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 대부분 부모는 적잖이 당황한다.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기 어렵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부모 자신도 소소한 거짓말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으면서 말이다. 특히 모범적이고 완벽을 추구하는 부모, 더구나 독실한 기독 신앙을 갖고 있는 부모는 아이의 거짓말을 좀처럼 견디기 어렵다. 누구나 처음 한두 번은 못 본척하기도 하고, 좋게 말로 타일러보기도 한다. 그래도 반복되면 좀더 강도가 올라간다. 손해를 보게 하기도 하고 매를 대기도 한다. 그런데도 거짓말이 계속 반복되면,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다!”는 좌절감과 “아이가 거짓말을 못 고치면 어떻게 하지?”하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나중에는 자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조차 사라져 간다. 결국 아이가 어떤 얘기를 해도 믿을 수가 없다.

아이에게 물었다. “넌 왜 거짓말을 하니?” 대답은 참 간단하다. “거짓말이 입에 뱄어요!” “처음에는 원하는 것을 순간 얻기 위해, 또 혼나고 맞을 게 두려워서 거짓말을 한 번 했다. 그런데 먹히더라. 그래서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이 툭 튀어 나온다.”는 것이다. 아이도 거짓말을 하면 더 혼나게 되고, 결국 원하는 것을 더 얻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후회도 많이 한다. 하지만 이미 습관이 들어 잘 조절되지 않음을 고백한다.

인간은 누구나 순간의 당혹스러움이나 고통 혹은 손해를 피하기 위해 보다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필자도 순간 위기(?) 모면을 위해 얕은 수를 떠올리는 나 자신을 간혹 발견하곤 한다. 곤란한 순간에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선택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솔직히, 살면서 이런 신념과 용기를 가진 사람을 그리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거짓말을 안 하고 살기란 아주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늘 진실을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드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아이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자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놀라거나 당황스러워할 일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물론, 그래서 거짓말 하지 않는 삶은 더욱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자녀가 반복적인 거짓말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이의 경험을 통해 생각해보자.

첫째, 거짓말을 했더니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초기의 경험이 거짓말이 자라나는 토양이 된다. 많은 부모들이 “갖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거짓말까지 해가며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충분히 갖게 해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얼핏 보면 맞는 말처럼 들린다. “갖고 싶으니까 가지려고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논리가 아닌가?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두 가지 허점이 있다. 첫째, 인간의 탐욕은 블랙홀과 같아서 아무리 가져도 충족되지 않으며 오히려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온천장 주인인 마녀 ‘유바바’의 아들 ‘보우’가 나온다. 엄마 ‘유바바’의 과잉보호 탓에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보우’는 기형적인 몸집과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성향을 갖고 있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탐욕이라는 몬스터는 점점 더 커져감을 암시하는 캐릭터이다. 이런 사실은 자신과 세상을 조금만 둘러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를 얻은 만족감은 별로 오래 가지 않는다. 대신 부족하고 모자란 것에 대한 수십 가지의 허기가 아귀(餓鬼)처럼 입을 벌리고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둘째 허점은 필요한 것이 있어서 거짓말을 했더니, 결국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더 주어지는 경험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이런 경험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거짓말이라는 부정적인 방법을 계속 사용하도록 강화시킨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거짓말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는 가장 편하고 효과적인 루트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면 이익이 아니라 도리어 손해를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즉 거짓말로 얻게 된 조그만 이익들을 모두 되돌리게 해야 한다. 이 초기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놀랍게도 많은 부모들이 처음 한두 번의 사소한 거짓말에 대해서 꽤 관대하다. 그냥 봐준다. 거짓말을 한 아이를 인격적으로 모독한다든지 고통을 주라는 뜻이 아니다. 아이는 끝없이 용서하되, 그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게 하라는 의미다. 아이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가슴 깊이 후회하도록 해야 한다. 당시에는 부끄럽고 힘든 일이지만, 값을 지불하는 경험은 아이의 양심을 더욱 순결하게 해준다. 자녀의 잘못을 부모가 대신 사과하거나 모두를 해결해주는 것은 곤란하다. 자신의 행동은 자신의 몫이다. 아이의 거짓말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대부분 사소한 것이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위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심각한 상실이나 유기, 학대 사례에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습관적인 거짓말을 막는 두 번째 길은 용서다. 실제적인 말로 풀이하면, 솔직히 말하고 책임을 지는 행동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인정이며, 책임을 진 거짓말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지원하고 독려해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아이가 충실히 값을 치렀으면, 아이의 용기와 노력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 잘못을 드러내고 책임진다는 것은 어른에게도 힘든 과정이다. 거짓말은 흔하지만, 솔직한 인정과 정직한 책임은 흔하지 않다. 그러니 꼭 합당한 인정이 있어야 한다. 이 초기의 경험과 지원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거짓말이 습관이 되면 고치기가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아이의 마음속에 “잘못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고귀한 철학을 깊이 심어주어야 한다. 이 신념은 자녀의 인생에서 계속 반복될 실수와 실패, 그리고 그것을 회피하고 모면하려는 수많은 유혹으로부터 자녀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삶의 위기에 쓰러지지 않는 불굴의 동기를 부여하는 힘은 이런 ‘용서’에서 비롯된다. 성서와 《레미제라블》의 교훈을 기억해라.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어라. 남에게 받은 용서와 끊임없는 격려를 통해 나 자신을 용서하고 또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알게 된다.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남은 바로 부모다.

셋째, 혼내는 양육 방식에 대한 변화다. 체벌을 하거나 말로 혼을 내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까? 과학적 연구 결과는 대체로 부정적인 편이다. 꽤 명확한 것은 부작용이 크다는 사실이다. 벌 받을 것이 두려워 또 다른 거짓말을 하도록 조장할 수 있다. 부모의 강압적인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다른 아이들, 특히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 또는 미래의 자신의 자녀에게 그대로 사용하기 쉽다. 현실적으로 감정을 배제한 체벌은 책 속의 이야기처럼 그리 쉽지 않다. 부모도 인간이고, 자기 자녀니까 더 속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이런 부작용 많고 적용하기 거의 어려운 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안될까? 화를 내는 대신 그냥 미리 정해진 책임을 지고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넷째, 시간적으로는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반드시 거짓말 하는 이유와 상황을 들어봐야 한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이 이유를 해결해줄 수도 없고 해결해줘서도 안 되는 적도 많다. 그래도 아이의 이야기를 꼭 들어라. 세심하게 경청해라. 잘잘못을 비판하고 급히 교정하려는 마음보다는 아이의 사정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바로 혼내거나 교정하려 하지 말라. 자꾸 설명해서 이해시키거나 설득하지 말라. 이런 사람에게 하기 힘든 이야기를 꺼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아이의 이야기가 변명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저 들어라. 몇 분이면 족하다. 듣는 시간이지 부모의 생각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다. “듣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부모는 아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아니 해결해줄 능력도 부족하다. 부모도 연약하고, 또 솔직히 말해 아는 것도 한계가 많다. 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는 있다. 이야기 맨 마지막에 한 마디만 해라. “솔직히 얘기해줘서 엄마, 아빠는 기쁘다. 다음에도 우리 또 얘기하자.”

마지막, 진실의 힘에 대한 확신이다. 이것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부모의 믿음을 삶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거짓은 결국 인간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지만, 진실은 두 다리 쭉 펴고 잠들 수 있게 만든다. 이런 부모의 믿음은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그대로 녹아 들어간다. 어떤 부모는 “그렇다면 내가 거짓말을 많이 해서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냐고?” 의아해 할지 모른다. 물론 그런 말이 아니다. 부모가 진실해도 아이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앞에 언급된 이유 때문일 수도 있고, 아이의 기질적인 취약성 - 충동성, 지나친 겁, 지연 불내성(delay aversion) 등 -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우리 어른이 만든 사회에 편재되어 있는 위선과 거짓, 좀처럼 만나기 힘든 진실의 본보기, 올바른 삶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 기다림과 기회의 부족 등이 분명 아이들로 하여금 진실을 선택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순간의 안일을 위한 거짓의 유혹을 물리치고, 지금은 어렵지만 결국 정답을 가져다 줄 진실을 선택하는 아이들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 자신부터, 내 가정에서부터 그렇게 살아야 한다.
대부분의 어린 날의 거짓말은 나이 들면 사라진다. 아니 내용이 바뀐다. 겉옷을 갈아입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속옷까지 갈아입기란 만만치 않다. 아이들과 함께 나도 깨끗이 목욕하고 보송보송하고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고 싶다. 내가, 그래서 내 속옷이 더 더럽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들과 목욕이나 같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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