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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호

나무 이야기
  글·최원현 (수필가. 문학평론가.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강남문인협회 회장. 청운교회 )

딸아이가 아주 작고 귀여운 화분을 사왔다. 사람 모습의 손잡이가 붙어있는 두 개의 토기화분인데 거기엔 또 앙증스런 식물이 심어져 있었다. 딸애는 아빠와 엄마를 닮은 모습의 화분이라 했다. 오늘은 아내와 나의 결혼기념일이다. 어느덧 40여 년의 세월을 살아버렸지만 그 날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애가 축하한다고 하니 조금은 멋쩍기도 하고 한 편은 세월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결혼식을 마치고 우린 외할아버지 장례를 지내러 떠났었다. 신혼여행이 5일장 장례식이었다. 외손자인 나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며 사랑을 주고 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저 죄스럽고 가슴은 쓰릴 만큼 아팠다.

교회에서 결혼식이 막 끝났는데 전보가 날아들었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불안한 상태였었는데 결혼식이 끝나고 소식을 받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들 했다. 아내와 나는 손님 접대도 못하고 부랴부랴 새벽차로 올라오셨던 이모님들을 모시고 다시 먼 길을 달려 장례식장으로 갔었다. 결혼기념일은 외할아버지 기일이기도 하다. 딸아이는 편지를 잘 쓴다. 말보다도 편지로 생각을 잘 전한다. 그런 딸은 이번에도 편지와 함께 작은 화분을 선물했다.
“사랑하는 아빠 엄마! 두 분이 심은 나무들이 많이 자랐네요.
사랑의 나무, 기쁨의 나무, 보람의 나무, 감사의 나무들이 자라 가족이라는 가장 소중하고 훌륭한 숲이 이루어졌네요. 그 숲에 사는 저희는 행복하고 감사해요. 사랑해요! 그리고 화분의 설명으로 “두 분을 닮은 작은 화분을 샀어요. 엄마 화분의 식물은 ‘홀리오’, 아빠 화분의 식물은 ‘호야’래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물 듬뿍 주면 잘 자란대요.”

나도 이 식물을 본적이 있지만 그 이름이 ‘홀리오’이고 ‘호야’인지는 몰랐었다. 보니 아닌 게 아니라 특별히 손이 많이 가지 않아도 잘 자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식물처럼 아이들도 큰 보살핌 없이도 잘 자라주었던 것 같다. 미국의 아들은 2월이 생일이고 며늘아기는 4월이 생일이고 손녀는 5월이 생일이다. 이번에 임신을 하여 손녀는 동생이 생긴다고 아주 좋아한단다. 딸네는 딸만 둘인데 딸은 3월이 생일이고 사위는 9월인데 손녀는 1월과 7월에 생일이 있다. 녀석들은 저희는 둘이 노는데 미국의 예봄이는 왜 혼자서만 노느냐고 묻곤 했는데, 이제 저들도 둘이 되면 둘이 놀 수 있게 되었다. 딸아이 말로 엄마와 아빠라는 나무에서 저와 동생이 그리고 다시 네 명의 손주가 태어났으니 제법 숲이 된 것 같다.

사람이란 나무는 특히 계절을 잘 타는 것 같다. 그 계절에 결실을 잘해야 숲을 이룰 수 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준 사랑하는 내 나무들이 너무나도 고맙다. 그들을 보면서 늘 자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없는 살림에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해 가슴 아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만큼 잘 자라주고 저희들 몫을 제대로 해주는 것을 보면 씨앗을 뿌리기는 사람이 해도 자라게 하는 이는 신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지난 가을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고구마를 심었는데 하필 37도라는 무더운 날씨, 꼬챙이로 땅에 구멍을 몇 개 뚫었을 뿐인데 손에 온통 물집이 잡히던 단단한 땅에 작은 틈을 내고 그 여린 고구마 순을 꽂아두었었다. 게 중엔 몇은 말라죽어 더 사다 꽂아주긴 했으나 대부분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땅속 열매를 맺었다. 아무 돌봄도 없다가 가을에 땅을 팠을 때 튼실한 고구마들이 올라오는 걸 보며 얼마나 미안했던지 차마 그걸 손에 쥘 수가 없었다. 식물을 심고 사람이 태어나도 결국 내 손보단 햇빛과 비와 바람과 적당한 기온이 그들을 살렸고 자라게 했고 열매를 맺게 했던 것이다. 새삼 결혼기념일이라며 딸아이가 선물해 준 화분과 식물과 편지는 가정이라는 숲에서 자라 오른 나무들이 무한한 은혜와 사랑의 산물임을 확인하는 일이게도 했다. 조실부모하여 너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어쩌다 바람에 날려 와 땅에 뿌리를 나게 한 작은 씨앗 같은 내가 이만한 작은 숲을 이루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식물사전을 찾아보니 꽃이 이쁘게 피어있다. 특히 아빠의 식물이라는 호야는 별 모양의 꽃 속에 또 작은 별모양의 꽃잎을 달고 있다. 별꽃이다. 아이의 바람처럼 우리 가정이 더욱 큰 숲을 이루었으면 싶다. 어쩌면 금년에 딸아이도 세 번째 아이를 가질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도 금방 손주 부자 할아버지가 된다.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 숲속에 묻혀 살게 될 것 아닌가.

미국에 있는 손녀는 화상통화로 할아버지를 부른다. 집 가까이 사는 딸네 두 아이들은 집에 오면 완전히 나를 저희들 놀이터로 생각한다. 올라타고 미끄럼을 타고 깔고 앉고 그러다 싫증이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저희끼리만 논다. 그러나 아이들이 있어 누리는 이 호사가 나는 그냥 좋기만 하다. 같이 있을 땐 힘들고 귀찮기도 하지만 가겠다고 문으로 나가면 엄마를 떨어지는 아이의 마음 마냥 왠지 서글퍼진다. 아이들은 매정하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빠이빠이를 하고 제 아빠와 엄마에게 하나씩 달라붙어 떠나간다.

오늘은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제 아빠는 시간이 안 되어 저희 셋과 우리 부부 다섯이 맛있는 음식을 사먹었다. 그렇게 헤어졌는데도 왠지 허전하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딸아이가 선물한 이쁜 화분이라도 있다. 하나는 남자이고 하나는 여자 모습의 토기 화분과 거기 심겨진 식물을 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그렇고 보니 딸아이 말처럼 건강한 나무로 살다가 아이들에게도 늘 든든한 모습으로 남아있어야겠다.

‘두 분이 심은 나무들이 많이 자랐네요.’ 하는 딸아이의 말이 새롭다. 그러나 아이의 말처럼 과연 얼마나 우리 부부가 그들에게 ‘사랑의 나무’ ‘기쁨의 나무’ ‘보람의 나무’ ‘감사의 나무’가 되었을까 생각하니 두렵고 부끄럽다. 나무는 나무로의 존재감과 역할이 있는 법인데 얼마나 그걸 감당했을까. 얼마나 나다운 나무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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