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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호

어지럼증과 빈혈
  글·정유석 (단국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요즘 왠지 노곤하고 어찔어찔 하거든요… 빈혈인가 봐요…”
“앉았다 일어나면 눈앞이 노래지고 별이 보일 때가 많아요…”
“천장이 빙빙 돌고 방바닥이 확 올라오더니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있더라구요…”
“조회 시간에 갑자기 쓰러졌어요. 양호실에 조금 누워 있으니 바로 회복되기는 했는데… 기력이 약한 건가요?”

어지럼증은 남녀노소 누구나 경험하는 증상이지만 특히 여자분들 중에 어지럽다는 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지럼증’과 반드시 구별해서 이해해야 하는 병명이 있는데, 바로 ‘빈혈’입니다. 빈혈과 어지럼증은 전혀 다른 용어입니다. 어지러움을 경험하는 많은 환자들이 자신에게 ‘빈혈끼(氣)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혈액검사 상에서 진짜 빈혈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분들 중에는 전혀 어지럽지 않다는 분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혈액검사(CBC)는 적혈구(RBC)와 백혈구(WBC) 그리고 혈소판(Paltelet) 검사를 포함하는데, 적혈구는 폐로부터 신선한 산소를 헤모글로빈에 가득 싣고 온몸 구석구석을 돌며 산소를 공급하는 ‘운반책’입니다. 백혈구는 나쁜 균과 싸우는 ‘경찰순찰차’이고, 혈소판은 상처를 입었을 때 지혈효과를 발휘하는 ‘119구급대’입니다. 
‘빈혈’이란 이 중에서 적혈구수가 부족한 상태를 나타내는 병명으로, 헤모글로빈치가 남자에서는 13, 여자는 12 미만인 경우를 말합니다. 산소공급책이 부족하니 뇌로 가는 산소의 양이 적어져서 상대적인 산소부족현상이 생기고 이때 어지럼증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갑작스런 위장출혈(위궤양 혹은 십이지장궤양)에 의하여 피를 많이 흘린 환자는 대부분 식은땀을 흘리며, 어지럼증 때문에 서 있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소량의 출혈이 지속적(만성)으로 있었던 경우는, 산소부족에 대하여 우리 몸이 적응을 하기 때문에 별로 어지러움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이때에는 어지럼증보다는 만성적인 ‘피로감’이 가장 흔한 증상인데, 여성에게는 생리양이 많은 월경과다의 경우에 이러한 빈혈이 생기기 쉽고, 치질에 의한 항문출혈도 흔한 원인입니다. 심지어는 부황(한방에서 환부에 음압을 걸어 피를 빼는 치료법이지요.)을 너무 많이 떠서 빈혈이 생긴 경우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빈혈을 ‘철분결핍성 빈혈’이라고 합니다. 
흘린 피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적혈구를 부지런히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꼭 필요한 영양소인 철분이 부족하여 적혈구 생산이 부족해집니다. 이때는 실혈의 원인을 교정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치료이지만, 우선 철분제제를 복용하여 빈혈을 교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심한 치질 때문에 생긴 빈혈은 치질수술이 근본적인 치료법이지만, 수술하기 전까지만이라도 철분을 복용하여 빈혈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밖에도 빈혈의 원인에는 약물이나 면역계의 이상으로 적혈구가 깨어지는 용혈성 빈혈과 위장수술 후의 흡수장애(비타민 B)로 인한 빈혈, 골수부전에 의한 빈혈, 암이나 만성질환에 의한 빈혈 등이 있습니다. 빈혈의 증상으로 어지러울 수가 있지만, 빈혈이라고 해서 모두 어지러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이비인후과로 가면, 고막 안쪽에 있는 내이검사를 하게 되고, 신경과에서는 뇌 검사(CT나 뇌파검사)를, 내과를 찾으면 혈액검사와 심장검사를 하게 됩니다. 왜 한 가지 증상에 이렇게 의사들마다 접근하는 방법이 다른가 하면, 어지럼증이라는 것이 단순한 병명이 아니고, 여러 가지 다양한 원인질환에 의하여 발생할 수 있는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병은 무척 많습니다. 앞에서 설명 드린 각종 빈혈을 비롯해서, 심혈관계의 이상, 뇌의 이상, 전정기관의 이상, 그리고 자율신경계의 질환이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지럼증은 크게 ‘눈앞이 캄캄해지는’ 타입과 ‘주변이 빙빙 도는’ 타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뇌로 가는 산소가 일시적으로 부족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고, 후자는 소뇌나 내이(전정기관)에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확한 용어는 ‘현훈’이라고 합니다. 뇌의 산소부족은 앞에서 말씀드린 빈혈이나, 심장의 이상(부정맥, 대동맥 협착증, 심부전증 등)으로 인하여 뇌로 피를 충분히 짜주지 못할 때, 그리고 자율신경실조 등이 원인이 됩니다. 
우리가 누웠다가 갑자기 앉거나 서게 되면, 심장에 대한 머리의 상대적인 높이가 높아지게 됩니다. 이때는 반사적으로 심장수축이 더 세어져서 피를 더욱 힘차게 머리 쪽으로 올려보내야 하는데, 자율신경의 약화로 이것이 한 박자 늦어지면 눈앞이 아득해지며 어지럽게 되는 것이지요. 중고등학교시절, 조회시간은 언제나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부동자세로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한 시간 가량 듣고 있다 보면, 한두 명씩 쓰러져서 양호실로 실려가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이 조회시간에 쓰러지는 이유도 장시간 뜨거운 햇빛에 노출되어 자율신경이 약해져서 다리 쪽으로 몰린 혈액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우리 몸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기관은 머리의 뒤통수 부분에 위치한 소뇌와 고막 안쪽의 내이입니다. 체조선수들이 평균대 위에서 멋지게 균형을 잡는 것은 바로 이 두 기관의 능력입니다. 주변의 물체가 갑자기 빙빙 돌거나, 구토가 나는 어지럼증이라면 이 두 가지 장기를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내이 쪽에는 감기 끝에 오는 ‘바이러스성 내이염’과 ‘양성 특발성 체위성 현훈’ 그리고 ‘메니에르 병’이라는 어려운 병명들이 있습니다. 소뇌의 병은 중풍의 후유증이나 뇌암 등이 있지만 매우 드물고, 다른 증상이 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주의 깊은 문진만으로도 대부분 구별이 가능합니다.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심한 현훈을 경험하는 경우라면 ‘양성 특발성 체위성 현훈’이나 내이염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몹시 심한 어지럼증을 경험하고는, 중풍이라도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라 응급실로 오게 되는 것이 ‘양성 특발성 체위성 현훈’의 특징입니다. 매우 어려운 병명이지만 잠시 살펴보면, 질병의 경과상 악성으로 진행하지 않고(양성), 원인을 잘 모르며(특발성), 체위변동(머리의 움직임)에 의하여 유발되는 현훈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극심한 어지럼증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져서, 특별한 치료 없이도 대부분 몇 주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내이염과 특발성 현훈의 특징입니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온통 어지러운 일 뿐인데 저까지 너무 복잡한 이야기를 한 것 같군요. 읽다보니 어지러우시다구요? 어지러움 때문에 찾아오는 환자를 진찰하게 되면,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원인 중에 어떤 놈이 원인인지를 판단해야하니 의사인 저도 몹시 ‘어지러울’ 때가 많습니다. 
창밖으로 비추이는 봄 햇살은 참으로 싱그럽고 생명력으로 충만합니다. 그런데, 봄만 되면 유난히도 노곤하고, 피곤하고, 어찔어찔 하신 분들이 많은 것은 웬일일까요?  해뜨는 시간이 점점 빨라져서 밤은 짧아지고, 겨우내 움츠려있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니 피로가 쌓여서일까요? 창조의 질서가 아담에 의하여 파괴된 이후, 인류의 역사는 혼돈과 무질서의 연속이지요. ‘어지럼증’이 그토록 흔한 병인 것은 어지러운 세상살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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