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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호

양육의 핵심(3)-일관성
  글·유한익 (서울우리아이마음클리닉 원장. 남포교회 )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특히 갖고 태어난 기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버릇은 좀처럼 변하기 어렵다. 어찌 보면 그런 습관이 바뀐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습관이 바뀌면 그것이 쌓여 삶이 달라질 수 있으니 습관의 변화는 아무리 작더라도 위대한 삶의 혁명이다.

부모는 자신의 태도와 일상(日常)을 변화시킴으로써 틀을 만들고 그 틀 속에서 자녀를 양육한다. 견고하고 일관된 틀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결국 일정한 습관과 태도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부모가 제대로 틀을 만들었다면 형태가 변형되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한다. 액상의 주물이 완전히 굳을 때까지 주형을 그대로 유지해야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문가들은 주저하지 않고 ‘일관성(consistency)’을 올바른 양육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뽑는다. ‘일관성’은 자녀에 대한 규칙과 기대가 늘 같은 것을 의미하는데, 아이들로 하여금 세상과 미래가 예측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하는지를 터득하도록 돕는다.

초연이는 항상 눈치를 보는 아이다. “엄마. 나 이거 해도 돼요?”는 초연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이다. “초연아, 그런 것까지 엄마에게 물어볼 필요 없어. 네가 알아서 그냥 하면 돼.” 아무리 대답해줘도 소용이 없다. 초연이 엄마는 아주 꼼꼼한 분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본인이 견디질 못한다. 초연이를 보면 금방 가슴이 답답해온다. “이러면 안되지”하며 결심에 또 결심을 해도 좀처럼 두고 볼 수가 없다. 언제나 급한 엄마는 늘 느릿느릿한 아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다 해줘 버릇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씻겨주고 놀아주고… 하지만 바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집에 와 아이까지 이렇게 돌보다 보면, 몸과 마음은 금방 녹초가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아이만 보면 분이 치밀어 오르는 경우가 잦아졌고, 잘해주다가도 불현듯 다른 성격처럼 소리를 지르는 일이 많아졌다. 불안해진 아이는 엄마 주변을 맴돌며 더 갈팡질팡했고, 이런 아이를 보면 또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한바탕 해댄 후에는 순식간에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고, 가슴은 덜컹 내려 앉아 우울한 마음이 떠나질 않는다. 아이가 한없이 불쌍해 보여 또 다 들어준다.

저명한 발달심리학자 에릭슨(E. Erikson)은 아동이 출생 직후 1~2년 동안에 반드시 기본적인 신뢰감(basic trust)을 성취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과 남에 대한 믿음은 자신이 부모를 만족시킬 수 있고 부모도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다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만들어지며, 깊은 안정감과 유대감의 초석이 된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일관된 수용과 반응이 꼭 필요하다. 충분히 충족되지 않으면 불안에 견디는 힘이 취약해진다. 자신의 행동이 적절한 것인지를 늘 추측하고 걱정해야 하므로 늘 불안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반복되면 자기를 탓하는 비관적인 시야를 갖게 된다. 건강한 자존감과 자기가치감이 형성되기 힘들다.

두 번의 자연유산을 겪고 어렵게 딸을 얻은 선정씨는 걱정이 많다. 애지중지 키워서인지 엄마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고 늘 엄마 옆에만 붙어 있는데 문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딸의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선정씨는 평소 남의 이목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어서 늘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주의도 주고 혼도 내지만, 아이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처음에는 설명하고 설득하다가 결국 고함을 치게 되고 이렇게 한참 힘겨루기를 한 후에는 결국 아이의 고집대로 들어주고 만다. 특히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면 아이는 더 고집쟁이가 되고 늘 징징거리며 엄마의 속을 태운다. 난처한 상황을 아주 불편해하는 엄마는 결국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게 된다. 이럴 때면 한없이 예쁜 딸이 너무 미워지고, 그런 자신을 보며 또 죄책감에 빠진다. 이 죄책감이 아이의 일방적인 요구를 또 들어주게 만들고, 아이는 점점 폭군처럼 되어 간다.

부모의 일관된 반응은 아이에게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조성한다.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먹고 놀도록 훈련시키는 토대가 된다. 부모의 기대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에 대한 그림이 쉽게 그려진다. 즉 책임감이 발달된다. 부모와의 약속, 즉 규칙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 거절과 거부를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결국 좌절에 견디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강해진다. 좀 힘든 일도 곧잘 순응한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불안한 성격, 불안정한 자아, 분노 통제의 어려움, 우울한 성격, 방종한 생활습관, 낮은 자존감, 반사회적인 인격, 심한 변덕, 남을 신뢰하지 못하는 성격 등이 모두 비일관적인 양육패턴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다 일관적인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자녀의 요구나 감정상태에 따라 부화뇌동하는 부모 중에는 먼저 부모 자신의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가치관이란 판단의 일정한 기준이다. 자녀의 행동과 요구가 지금 올바르고 적절한 것인지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게 되는 잣대다. 이것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 자녀의 변덕스런 요구에 대해 일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거시적으로 보면 지금 한국사회는 가치관의 춘추전국시대라고 볼 수 있다. 유교적인 가치관과 토속 종교, 인본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기독교 가치관, 개인주의 등이 온통 뒤섞여 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고 깊게 고민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살기 바쁜 부모들은 자신의 가치관을 그리지도 못한 채 자녀를 낳고 덜컥 양육자가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양육의 주체는 부모다. 자녀를 잘 키우려면 부모의 생각, 즉 가치관이 건전해야 하고 또한 견고해야 한다. 만만치 않지만 결코 우회할 수 없는 숙제다.

부모의 건전한 가치관에 따라 규칙을 정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다. 규칙은 적을수록 좋다. 자녀가 어리면 두세 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 규칙이 적어야 하는 이유는 부모가 정한 규칙대로 약속을 잘 지키기 위해서다. 약속을 잘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속을 적게 하는 것이다. 자녀 역시 약속이 적어야 더 잘 지킬 수 있다. 잘 지켜진 약속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녀에게는 성취감이 선물로 주어진다. 이 성취감은 자기유능감(self-competence)의 재료가 되고, 더 나아가 자존감(self-esteem)이 높아진다. 물론 규칙에는 꼭 책임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규칙을 지킬 때와 지키지 못할 때 반드시 확연히 구분되는 피드백이 주어져야 한다. 약속을 지키고 책임을 지는 일상을 통해 아이는 책임감을 획득하게 된다. 일단 책임감이 생기면 다른 생활영역까지 일반화가 일어나 자녀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자율적인 사람으로 성장한다. 참으로 팽두이숙(烹頭耳熟)이 아닐 수 없다.

규칙을 지키도록 훈련하는 과정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예외를 두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바빠서, 때로는 귀찮아서, 아이가 안쓰럽게 보여서, 혹은 “내가 너무 빡빡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간혹 봐주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만들어진 합리적인 약속이라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예외를 두면 아이들은 경계를 시험하는 시도를 더 하게 된다. 꼼수를 쓰도록 유도하는 꼴이 되어 결국 훈련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는 자신의 아이의 수준과 상황에 맞춰야 한다. 절대 다른 집 아이를 기준으로 삼지 말라. 어떤 부모는 모든 형제에게 똑같은 규칙을 적용하기도 한다. 형제라도 각각 다른 존재다. 각 아이마다 각각 다른 규칙을 정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다. 개별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다. 누구와의 비교를 통해서는 절대 만족을 얻을 수 없다. 아이들이 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훈련시켜라.

‘한결같다’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꼭 같다’는 의미다. 우리는 한결같은 사람을 참 좋아한다. 믿음직하고 든든한 사람이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속성이며, 우리가 꼭 배우고 따라야 할 고귀한 성품이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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