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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호

아기 다람쥐 바비 (2)
  글·조임생 (동화작가. 시인. 강남순복음교회 | 그림_이광범)

어스름이 지고 일찍 돋은 반달이 중천에 걸렸습니다.
숲 속 동물들의 회의 시간입니다.
숲에 사는 동물들이 모두 공터에 모였습니다. 고개 너머 사는 사람들이 숲에 들어 온 일에 대해  모두들 근심이 가득합니다. 숲 속 동물들의 어른이신 노루 할아버지가 엊그제 일어난 일을 얘기했어요.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에 남은 불씨가 큰 불로 번질 뻔했다는 말에 동물들은 웅성거렸습니다.
“여러분, 다행히 바비가 불을 보고 고함을 친 바람에 내가 달려갔지요. 만약 바비가 나몰라라 했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바비는 용기 있는 아이입니다. 우리 숲은 바비 같은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다들 바비를 향해 박수를 쳤습니다.
‘저  바비녀석!’
몽구리는 배가 아픈 것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자, 그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노루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바비네 아빠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도토리를 모두 따 가지고 갔어요. 사람들은 먹을 게 많습니다. 가을이 오면 들판의 곡식도 많고 과일도 풍성합니다. 그런데 숲속의 도토리까지 탐을 내다니 정말 욕심 많은 동물들입니다. 우리들은 겨울 양식이 모자라요. 이러다간 겨울을 어떻게 지낼지 걱정입니다.”
회의장이 갑자기 조용해졌어요. 먹을 양식이 부족하다는 말에 모두 심각한 표정입니다.
그러자 성미가 급한 멧돼지 들보가 일어났습니다.
“식량뿐 아니라 사람들은 우리의 목숨도 노리고 있습니다. 에이, 당장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을 모조리 쫓아냅시다!”
들보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씩씩거렸어요. 송곳니가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번쩍 빛이 났습니다.
그러자 노루 할아버지가 들보를 진정시켰어요.
“자, 그만 진정하십시오. 여러분도 기억할 것입니다. 들보의 친구 깜보가 지난 가을 사람들에게 잡혀간 사건을 말입니다. 들보의 아픈 마음은 알지만 흥분해서는 안 됩니다. 엄바위골 너구리 할멈도 그렇고 수달네 가족도 그렇고  3년 전엔 아시다시피 제 아내도 잡혀갔습니다. 사실 우린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살고 있지요.”
노루 할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러자 다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어요.
모두들 기억하고 있습니다. 숲에서 일어난 슬프고 아픈 사건들을.
멧돼지 들보의 친구 깜보는 덩치가 유난히 컸습니다. 온 몸이 까매서 깜보라는 별명이 붙었지요. 마음이 착해 숲 속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배가 고파 사람들의 고구마 밭에 들어간 것이 실수였습니다. 탕 하는 총소리가 온 숲을 뒤흔든 이후 깜보는 숲에서 영원히 사라졌어요.
“고구마 좀 훔쳐 먹었다고  총을 쏘다니 사람들은 정말 잔인해!”
깜보의 일로 숲 속 동물들은 몹시 분개하고 슬퍼했습니다.
엄바위골 너구리 할멈네도 커다란 슬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거든요.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너구리 할멈은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맙니다.
3년 전 가을이었어요. 아들 너구리군은 개구리, 들쥐, 지렁이에서 나무 열매까지 부지런히 먹을 것을 챙겨 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아들 너구리군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났지요.
너구리들은 겨울잠을 자기 전 부지런히 영양을 섭취해야 합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아무것도 먹을 수 없거든요. 너구리군은 늙은 어머니를 위해 그 날도 먹을 것을 구하러 집을 나섰어요. 그때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스스륵 미끄러져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와. 오늘은 대단히 운이 좋은 날이군. 저 뱀 한 마리면 이틀 양식은 되겠네.’
뱀이 스며든 풀숲으로 너구리가 훌쩍 뛰어든 순간 그만…
그곳에 사람이 쳐놓은 덫이 있었던 것입니다.
너구리군이 잡혀간 이후 너구리 할멈은 잘 먹지도 않고 밤마다 울었습니다. 그 바람에 몸이 앙상하게 여위었어요.
느릅나무골 고라니는 다리를 절뚝이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배가 고파 마을로 내려갔다가 총에 맞았거든요. 목숨을 걸고 도망을 쳤는데 다행히 살아서 숲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반달곰 바오 아줌마가 일어났어요. 새까만 털옷을 입었는데 가슴을 초승달 모양의 흰털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몸속의 쓸개를 웅담이라 하여 아주 귀한 약으로 알지요. 쓸개를 탐내는 사람들이 호시탐탐 우리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사슴님도 뿔 때문에 해마다 고역을 치르지요?”
사슴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흡혈귀처럼 우리의 피도 마신답니다. 몸에 좋다고요.”
동물들은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어요.
“사람들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마을로 쳐들어갑시다!”
멧돼지 들보가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럽시다. 날카로운 내 이빨로 엉덩이를 물어버리겠소.”
오소리도 날카로운 이빨을 내 보이며 크르릉 신음소리를 냈어요.
“갑시다!”
“가서 원수를 갚읍시다.”
“그래요, 이대로 당할 수는 없어요!”
동물들은 모두 흥분해서 술렁거렸습니다. 바비는 무서워졌습니다. 문득 작은 아이가 생각났어요. 도토리나무를 향해 돌을 던지지 못하도록 말리던 예쁜 아이 말입니다.
노루 할아버지를 보니 눈을 감고 계십니다. 바비는 살짝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어요.
“할아버지, 우리 싸우지 말아요, 네?”
노루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셨어요.
“얘야, 싸움이란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거란다. 더구나 사람과의 싸움은…”
노루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어요.
“자, 여러분. 모두 제 자리에 앉으시오. 흥분하면 안 됩니다.”
숲의 어른으로 크고 작은 일을 도와주고 재판도 하는 노루 할아버지의 말엔 위엄이 있었어요. 동물들은 조용히 제 자리에 앉아 노루 할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나는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3년 전 내 아내가 총에 맞아 죽었을 때 나도 말 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느꼈지요. 나도 여러분처럼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힘으로 사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 친구 깜보는 천하장사였지만 사람이 가진 총 한 방에 쓰러지지 않았습니까?”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탕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덩치가 집채만 한 깜보가 썩은 나뭇등걸처럼 퍽 쓰러졌거든요. 사람이 가진 총의 힘은 너무나 대단했어요.
“자, 생각해 봅시다. 밀렵꾼들에게 억울하게 당한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에 해를 당한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힘들게 농작물을 가꾸는 것은 자기들의 양식을 위해서입니다. 그걸 함부로 파헤쳐 먹어치우니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사람의 밭을 들락거리던 동물들은 얼굴을 푹 수그렸어요. 토끼는 밭의 채소들을 먹어치운 것이 미안해졌습니다. 고라니도 당근밭과 무밭을 망쳐 놓은 것은 큰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요즘 사람들 사회에서 야생동물 보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예전처럼 함부로 총을 쏘거나 덫을 놓으면 사람의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지요.”
노루 할아버지는 점잖은 모습으로 차근차근 말을 이어나갔어요.
그러나 멧돼지 들보는 불만스럽기만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을을 공격해서 쑥대밭을 만들어 깜보의 원수를 꼭 갚아주고 싶었거든요.
반달곰 바오가 일어났습니다.
“어르신, 그럼 이젠 우리의 쓸개나 꽃사슴의 뿔을 노리는 사람들은 없겠군요?”
노루 할아버지는 반달곰 바오를 보며 말했습니다.
“밀렵꾼은 자기네의 법을 어기는 나쁜 사람들이지요. 밀렵꾼은 언제나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 동물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도 짐승들도 새들도 평화롭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겨울양식을 준비하는 가족은 숲 속에서 다른 양식을 찾아보세요. 그래야만 합니다.“
동물들은 노루 할아버지 말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어느새 먹물 같은 어둠이 숲 속으로 밀려들었습니다. 동물들은 서로 인사를 한 후 자기들의 보금자리로 흩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도토리랑 잣이랑 밤들을 모조리 따 갔는데 어디 가서 양식을 구한담?’
몽구리는 툴툴거렸어요. 그런데 바비는 여전히 명랑하게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고라니 아저씨.”
“바오 아줌마, 안녕히 가세요.”
‘저 바비녀석, 얄미운 녀석!’
때려주고 싶지만 참아야 합니다. 누가 보면 또 혼이 날 테니까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바비는 왜 저렇게 밝고 명랑할까?
어쩐지 바비가 부러워집니다.
몽구리는 기분이 이상해져서 재빨리 잣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비죽비죽 울음이 새 나옵니다.
‘나는 나쁜 아이야. 그동안 바비를 너무 미워했어.’
몽구리는 그만 엉엉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멧돼지 들보는 조용히 숲을 빠져 나왔어요. 사랑하는 친구 깜보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몹시 괴로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깜보와 함께 자랐고 청년이 되어서도 항상 붙어 다녀서 쌍둥이란 별명까지 생겼지요.
검은 숲 위로 뜬 노란 반달이 깜보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부채질 했어요.
사실 고구마 밭에 가자고 먼저 말한 쪽은 들보였습니다. 그날따라 하루 종일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배가 고팠거든요.
“깜보야, 우리 사람의 밭에 들어가 고구마라도 캐 먹자.”
들보의 말에 깜보는 망설였어요.
“점박이 노루 어르신이 고구마밭 출입을 못하게 하셨잖아?”
“어르신 몰래 살짝 다녀오면 돼.”
“괜찮을까? 사람들이 화를 낼 텐데.”
“바보, 사람들이 뭐가 무서워? 우리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있나? 발톱이 있나? 게다가 덩치도 조그맣잖아?”
“그래도 사람들은 지혜가 많고 총도 있어.“
“깜보 넌 덩치만 크지 형편없는 겁쟁이 아냐? 그렇게 무서운 게 많아서 어떻게 사니?”
“아,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냐.”
깜보는 머리를 긁적이며 들보의 뒤를 따라왔어요. 그런데 물푸레나무 곁에서 조그만 물체가 쑥 나서는 거예요.
“아저씨들 안녕하세요? 밤이 깊었는데 어딜 가시나요?”
언제나 밝고 명랑한 다람쥐 바비였어요.
“응, 저… 그냥 산책하는 거야.”
“사람들 밭에 가는 거 아니죠?”
“예끼, 이 녀석. 그냥 산책하는 거라니까.”
“헤헤,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들보와 깜보는 휴우 숨을 내쉬었어요. 그런데 사람들 밭에 가는 걸 바비가 어르신께 일러바치는 건 아닐까?
들보가 깜보의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너 먼저 고구마 캐 먹고 있어. 바비가 집으로 가는 지 보고 올게.”
“바비는 고자질 같은 거 하는 아이가 아냐.”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알았어.”
깜보를 앞서 보내고 들보가 바비의 뒤를 밟아 숲 속 사잇길로 막 들어설 때였어요.
“탕 타탕!!”
산을 뒤흔드는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순간 들보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온 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들보는 제 자리에 석상처럼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어요.
바비가 놀란 얼굴로 달려오다가 들보를 보았습니다.
“아저씨, 빨리 가 봐요.”
들보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밭머리쪽 숲으로 달려갔어요. 달이 떠 있어서 숲이 끝나는 지점의 수풀 사이로 비탈진 고구마 밭이 훤하게 보였습니다.
‘이게 꿈이었으면…’
들보는 속으로 부르짖었어요.
두어 명의 사람들이 검은 물체를 끙끙거리며 트럭에 싣고 있었고 한 명은 숲을 향해 총을 들고 서 있었어요.
“우우우욱…”
들보는 신음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노려보았어요. 한달음에 달려 나가 사람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탕! 탕! 총성이 고막을 찢었어요. 살기를 느낀 사람들이 숲을 향해 총을 쏜 것입니다.
“아저씨!”
바비가 들보의 다리에 매달렸어요.
“들보야!”
“들보야, 흥분하면 안 돼!”
어느새 숲 속의 친구들이 들보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깜보의 시체를 실은 트럭은 저만큼 비탈길을 달려가고 있었어요.
“깜보야!”
“깜보야아아!”
들보는 몸부림치며 울었습니다.
지금도 그 밤의 장면들이 너무나 선연하게 떠오릅니다. 어느새 들보는 산비탈 사람들의 밭머리에 와 섰습니다.
“아저씨!”
바비입니다. 바비는 쪼르르 올라가 들보의 목덜미에 매달렸어요.
“아저씨, 하늘 좀 봐요. 아저씨 등은 높아서 하늘이 아주 잘 보여요.”
“……”
“아저씨, 깜보 아저씨 생각하지요?”
“.……”
“하늘엔 별이 참 많아요. 큰 별 작은 별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어요. 깜보 아저씨 별은 어떤 것일까? 아, 저거예요. 저어기 크고 빛나는 별.”
들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달이 기운 하늘에 별들이 맑은 눈을 깜박이고 있습니다.
“아저씨, 지난번 도토리를 따러온 사람들 중에 작은 아이가 있었죠. 그 아이가 도토리나무를 발로 차는 사람에게 말했죠. 도토리나무를 아프게 하지 말라고요. 난 자꾸만 그 아이가 생각이 나요. ”
들보는 무뚝뚝하게 말했어요.
“사람은 나빠.”
“사람이 몽구리형에게 돌을 던졌어요. 그 아이는 돌을 던지지 못하게 했죠. 큰일 날 뻔 했어요. 몽구리 형이 다칠 뻔 했거든요.”
“몽구리가 밉지 않니?”
“그래도 형이 다치는 건 싫어요.”
들보의 입가에 미소가 스쳐갔습니다.
“바비야, 몽구리가 널 괴롭혀서 힘들지?”
“아니, 괜찮아요. 몽구리 형은 엄마 아빠가 없으니까 제가 더 미안해요. 형은 너무 심심해서 저랑 놀고 싶은데 어떻게 노는 것이 좋은지 아직 모르나 봐요.”
갑자기 들보의 가슴이 따뜻해 졌어요. 그동안 분노와 슬픔으로 차가워진 가슴에 포근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사람의 아이가 그렇게 좋으냐?”
“네, 그 아이도 나도 언젠가 하늘의 별이 되겠죠? 그땐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바비야, 나도 하늘의 별이 될 수 있을까?”
“그럼요. 아저씨도 별이 되어 깜보 아저씨랑 재미있게 살 거예요.”
들보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어요.
“바비야, 내가 별이 되면 너무 크고 무거워서 떨어질 것 같구나.”
“에이, 아저씬. 저기 깜보 아저씨도 끄떡없잖아요? ”
“그래, 정말 그렇구나. 허허허.”
들보의 마음속으로 강물 같은 평화가 흘러들었습니다. 들보는 바비를 무등 태우고 천천히 숲으로 돌아갔어요. 별들의 꽃밭이 눈부시게 빛나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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