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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호

낙화생 양말
  글·최원현 (수필가. 문학평론가.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사)한국학술문화정보협회 부이사장. 청운교회 )

왠일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웬 ‘낙화생 양말’이 떠오른 것일까. 초등학생 초기 그러니까 무려 50여 년 전에 신었던 양말인데 어째서 그게 지금에 갑자기 생각난 걸까. 그러고 보니 요즘 가끔 아주 잊혀 진 것들이 생뚱맞게 생각나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옛것에의 향수라기보단 이 시대에서 적응치 못하고 불만으로 남아있던 것들이 옛것을 생각나게 해서 반기를 드는 것일까.

낙화생(落花生)이란 땅콩의 다른 이름이다. 땅콩은 콩과식물로 지상부 줄기에서 꽃이 피고 꽃이 수정되면 자방병(子房柄)이라는 씨방의 밑에 붙어 있는 긴 자루의 줄기를 내어 땅속으로 파고들어 가 열매를 맺는다. 이 탯줄 같은 자방병을 통해 땅콩이 자라게 되는데 그래서 땅콩 또는 낙화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땅콩을 용해하여 재생시킨 섬유가 바로 낙화생 섬유이고 그걸로 만들어진 양말이 낙화생 양말이었다.

좋은 것이란 아름다운 것이기보다는 질겨서 오래 쓸 수 있는 것이어야 했던 시절, 낙화생 양말은 낭창낭창 늘어나는 탄력은 없어도 그 질기기는 고래 심줄 같아서 불에 태우거나 자르지 않으면 헤어질 것 같지 않던 양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험히 신어도 닳아 떨어지지 않는 양말이니 어찌 새 양말을 기대할 수나 있었으랴. 해서 우린 명절이 가까워 오면 나무를 하러 가서 양말 신은 발을 바위에 비벼대거나 불을 피우곤 불 위로 양말 신은 발을 지나게 하여 살짝 불에 타게 하여 떨어뜨리는 비책을 쓰기도 했다.

한데 이 낙화생 양말이 왜 느닷없이 튀쳐 나온 것일까. 지금 내 삶에 낙화생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콩과의 일년초인 땅콩의 줄기는 약 60㎝ 정도로 자라는데 두 쌍의 작은 잎으로 이루어진 겹잎은 서로 어긋나 잎겨드랑이에 노란색 나비 모양으로 꽃이 핀다. 그런데 문제는 수정 후 줄기에서 이 씨방 곧 자방병이 땅으로 내려가 땅 속으로 3∼5㎝ 정도 파고들어 자라서 꼬투리가 달리는데 이 열매가 땅속에 나는 콩 곧 땅콩인 것이다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선 땅콩을 볼 수가 없었다. 토양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주식이 될 만한 것을 심는 땅도 모자란 터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귀한 만치 정월 대보름이나 되면 맛을 볼 수 있던 호두며 땅콩의 맛은 그때를 생각만 해도 그냥 침이 고이게 한다.

어린 날 언젠가 할머니를 따라 장엘 갔는데 낙화생 양말을 사주셨다. 새것이라는 것에 그저 좋아라만 했는데 흰색도 아니고 옅은 회색빛 양말은 마치 촘촘하고 투박한 그물 같았다. 부드러움이라곤 없는, 그래선지 보기만 해도 질기기가 당해낼 만한 게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이 여름이라면 괜찮겠지만 여름엔 아예 양말 같은 건 신을 염도 못 내던 시절이니 양말이란 오로지 겨울용이었다. 하지만 따뜻함을 느낄 수 없는 양말, 그런데도 한참을 우린 그 양말에 매어 살았다. 그런데 지금 그 낙화생 양말이 생각난 건 얼마 전 식물원 가는 길에서 보았던 노오란 꽃 핀 땅콩 밭 때문일까.

땅콩 꽃은 수줍음 잘 타는 여자아이 같다. 그렇게 노랗게 핀 꽃의 줄기가 땅으로 들어가 열매가 되는 것이니 수줍음이 극에 달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땅콩은 모래 섞인 땅에서 잘 자란다. 언젠가 화분에 땅콩을 심어봤는데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아무래도 토양 때문인 듯 했다. 그러고 보니 마당가 화단에 땅콩을 화초 겸 식물로 가꿔놨던 친구가 불현듯 생각난다.

그는 나와 깨복쟁이 친구였다. 중학교 때까지 같이 다녔다. 그러나 장자가 못 된 둘째였던 그는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서울로 올라가 직장을 잡아 참으로 성실하게 일했다. 결혼하여 두 자녀도 낳고 넉넉하진 못해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았다. 불광천 변에 살 때 찾아간 적이 있는데 마당에 가꾸고 있는 꽃 중 별나게 노오란 꽃이 많아보였다. 땅콩 꽃이었다. 내가 예쁘다고 했더니 그걸 기억해 두었던지 그 해 말 그 꽃을 압화해서 성탄엽서로 만들어 보내왔었다. 땅콩 꽃 압화(壓花) 엽서를 보내주었던 친구, 그가 갑자기 떠난 것이 이맘때였다. 너무 정직하고 고지식하여 법이 필요 없는 친구였다. 아 참 그랬다. 할머니께서 내 낙화생 양말을 사 주셨을 때 그의 어머니도 같이 샀었다. 그날 우린 그 양말을 장갑처럼 끼고 왔었다.

그가 간지도 25년이 되어버렸다. 비보를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어린 두 아들은 서로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그 아이들도 지금쯤은 결혼을 해서 살고 있을 텐데…어디서 살고 있을까. 그가 떠나자 왕래가 없어 소식도 끊겼는데 수소문을 해서 알아봐야겠다.

사실 낙화생 양말은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에겐 참으로 소중한 물건이었다. 양말을 신고 고무신을 신으면 미끄러워 신발이 벗겨지기도 했지만 낙화생 양말은 우리의 맨발을 감싸는 사랑으로 슬픔, 아픔, 고통까지도 이겨내게 했다.

언젠가 내 방에서 녀석과 함께 자게 되었는데 얼음처럼 차갑던 그의 발이 생각난다. 그가 양말을 신었대도 얼마나 발이 시렸을까. 어쩌면 녀석은 땅콩 꽃 같은 삶을 살다 갔을 것 같다. 그래도 땅 속 줄기 열매 같은 두 아들을 두어 제 흔적을 확실히 남겼다. 아무래도 녀석이 내게 자기 가족을 찾아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만 같다. “너, 너무 무심하지 않어?” 녀석이 낙화생 양말을 양손에 끼고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아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본다. 사람의 삶도 땅위 열매보단 땅콩 같은 삶이 아닐까. 아파트 앞 동과 옆 동 사이로 구름에 가린 오후의 해가 반으로 접힌 낙화생 꽃 이파리 마냥 둥그레 노랗게 떠 있다. 갑자기 녀석의 가족들이 어찌 사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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