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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호

거부(拒否)도 권리
  글·김종철 (수필가. 충남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마중물교회)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금이라고 해서 모두 반짝이는 것은 아니다(All that is gold does not glitter).’라는 격언도 있는데, 우리는 너무 반짝이고 화려한 것에 목숨을 걸고 사족(四足)을 못쓰는 것 같아, 대단히 걱정스럽기만 하다. 

반짝이는 아이돌(idol)을 비롯한 스타급 연예인·강사·거부(巨富)·CEO들을 경애(敬愛)의 대상이나 우상처럼 여겨 남녀노소 무관하게 매료(魅了)되고, 유행에 뒤처지면 왕따 당하고 죽는 것처럼 여겨 최신 유행이라는 큰 걸음의 황새를 따라가느라 뱁새의 가랑이가 찢어지는 줄도 모르니, 얼마나 위험하고 안타까운가.

이런 사회 풍조 속에서 나와 같이 최신 유행에 무디고 아예 관심조차 없는 사람은 바보·얼간이·촌뜨기·범생이(nerd or nurd)이거나 낙오자·실패자·패배자(looser)로 낙인(烙印) 찍히기 일쑤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라는 구약 성경 전도서(Ecclesiastes) 1장 9절은 이런 유행·트렌드(trend, 경향·동향·추세) 추종자들에게 아예 씨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이전과 (특이 외형이) 좀 다르거나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 나오면 새로운 유행 혹은 획기적이고 찬란한 신형(新型)·신제품(新製品)·신곡(新曲)이라고 여겨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쳐다보며 맹목적으로 좇아가는 ‘빛나는 객체·물건·대상 증후군(Shiny Object Syndrome)’에 중독(中毒)된 환자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나를 시대에 뒤떨어진(out of date) 구식(舊式) 별종(別種)으로 하향 평가해버리니, 누가 옳은지 나로서는 헛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찾아온 토네이도(tornado)처럼 휘몰아치는 거센 세파(世波) 속에서, 자신과 아내 및 가족을 잃지 않기 위한 특수 전략을 마련해야만 할 필요성이 절실해진다. 외형도 중요하지만 본질도 외면하지 않고 겉과 속이 점점 더 일치해지는 실속파가 되도록, 나 자신부터 더 노력해보련다.

이런 유행뿐만 아니라, 쇼핑·교육·인터넷·게임·도박·점(占)·보약·무고(誣告) 중독증이 우리 사회의 곳곳을 잠식하고 있어 새삼 걱정이 된다. 너무나 빠르게 앞서 가는 이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혹은 남들보다 신제품을 빨리 구입해서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소비자 즉 ‘앞선 사용자’(early adop-ter)의 대열에 서기 위해, 빚이라도 내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빠지기도 한다. 시장을 선도(先導)하는 기업이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내놓으면, 이를 벤치마크(benchmark·기준·척도)로 삼거나 복제(copy)하여 더 싼 가격에 개선된 상태로 내놓는 전략을 구사하는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기만 하다. 창조적인(creative) 혁신을 시도하여 시장을 적극적으로 인도하는 ‘최전방 선도자’(First mover)와 대조가 되는 ‘빠른 추종자’들은 그 ‘최전방 선도자’들을 따라갈 엄두조차 낼 수가 없다. 황새 같은 선도자들 흉내를 내다가는 뱁새처럼 가랑이가 찢어지기 때문이리라. 선도자들의 고압적인 명령을 거절하기는 추종자들에게 더더욱 어렵기만 하다.
체면과 정실(情實)이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아니오(No)!’라고 말하며 거절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때가 많다. 왕따·퇴출·퇴장·실직·이별·부도·파산·불합격·실격·축출 등 거절로 인한 불이익(不利益)의 후폭풍(後暴風·後爆風)이 두려워, 차마 거절·거부 의사를 표명하지 못한 채 여러 날·달·해 동안 억울함·분노에 가슴앓이 해본 경험 한두 번쯤은 다들 있을 것이다. 겁 많은 자신보다 힘을 더 많이 가진 ‘중요한 타인들(significant others)’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보다 그들을 만족시키려다 보니, 자신의 개성·활력·기쁨·행복·위신·자존심을 상실할 확률이 점점 높아지게 마련이다.

이제부터라도 혼자 있을 때 거울을 보고 ‘아니오!’라고 큰소리로 당당·적절·의젓·정중하게 말하는 훈련을 해보자. 각자에게 부여된 ‘거절할 권리’를 합당하게 행사하도록 자신을 잘 북돋우자. 마음이 여리고 약할수록 ‘합리적인 거절’을 통해 자신을 정당하게 방어(防禦)·보호할 수 있도록 ‘마음 근육(心筋) 강화 운동’을 열심히 하자. 마음을 튼튼하고 강하게 만드는 심력단련(心力鍛鍊·mind weight training)으로 건전한 자존감을 점점 더 높여보자.
거절할 용기가 없어 늘 ‘예’라고만 말하는 ‘예스맨(yes man)’이나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리는 아부(阿附)의 달인(達人)들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 치열한 생존 경쟁 사회에서 자신·가족을 먹여 살리면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발버둥을 치고 있는 상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생존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이들을 향한 일말(一抹)의 이해는 필요하지만, 이들의 나약·비겁한 태도를 무조건 옹호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매사에 ‘반대·거부를 위한 반대·거부’만 일삼는 전문 모리배(謀利輩)나 직업적인 몰이꾼들 즉 ‘노맨(No men)’ 편에 서서 그들을 대단하고 용맹스럽다고 일부러·억지로 칭찬할 필요도 없다. 인류 역사 어디에서나 온갖 수단 방법으로 남을 고의적으로 깔아뭉개면서 자기 이익만 꾀하는 음흉한 적대적 무리들을 찾아볼 수 있으니까. 정말 지혜롭고 결단력 있는 리더는 ‘예스맨(yes man)’과 ‘노맨(No men)’의 진의(眞意)를 잘 파악해서 그들로 하여금 남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소신 있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능력자(能力者)이리라.

무조건 사회가 하는 대로 수용하는 것만이 능수가 아니다. 하나님 말씀의 다림줄에 견주어 아닌·틀린 것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목숨 걸고 과감하게 거부하면서 살아가자. 남의 제안·부탁·청탁·의탁·명령·요청·강청을 도저히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의 심리(心理) 밑바닥에는, 자기가 거절하면 그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크게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수많은 사람들(좁게는 배우자, 부모, 자녀들)의 서로 다른 요구를 다 수용하다가는 자기 자신이 도저히 견뎌낼 수 없어 사망 직전 상태에까지 다다를 크나큰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의 부탁을 다 들어줄 수 있는 슈퍼맨(supermen)이나 슈퍼우먼(superwoman) 같은 초능력 인간이 존재할 수가 없다.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수용할 권리와 거부할 권리를 구별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현자(賢者)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혼한 부부의 생활이나 가족과 함께 하는 생활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부부의 성생활에 관해서도 서로의 상태에 따라 상대방의 성적 요구를 수용하거나 거부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 이 둘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예지(叡智·銳智)는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하나님께만 구해야 하리라.

그러기에 아래와 같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독일계 스위스인. 시인·소설가·화가)의 기도문을 알아두는 것도 참 유익하리라.

기도(Gebet)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

저로 하여금 제 자신에게 절망토록 하시되,
Laß mich verzweifeln, Gott, an mir,
그러나 당신을 향해서는 절망하지 않게 하소서.
Doch nicht an dir!
방황의 탄식을 모조리 맛보게 하소서.
Laß mich des Irrens ganzen Jammer schmecken,
온갖 고뇌의 불꽃으로 저를 사르게 하시고,
Laß alles Leides Flammen an mir lecken,
저로 하여금 온갖 욕됨을 받게 하소서.
Laß mich erleiden alle Schmach,

제가 자신을 유지하는 일을 돕지 않게 하시고,
Hilf nicht mich erhalten,
제가 자신을 확대하는 일을 돕지 않게 하소서.
Hilf nicht mich entfalten!

하지만 제 자아의 모든 것이 소멸했을 때면,
Doch wenn mir alles Ich zerbrach,
제게 가르쳐 주소서,
Dann zeige mir,
그것을 행하신 분은 당신이라는 사실과,
Daß du es warst,
당신께서 불길과 고뇌를 만드셨다는 사실을.
Daß du die Flammen und das Leid gebarst.

저는 기쁘게 멸망할 수 있고,
Denn gern will ich verderben,
기쁘게 죽겠으나,
Will gerne sterben,
당신의 품이 아니고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Doch sterben kann ich nur in d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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