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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호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교회의 역할
  글·이건오 (참 좋은 친구 박애병원 원장. 서울시민교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가’ 라는 의문은 역사 이래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건강은 영혼과 육체로 분리될 수 없는 구조를 지닌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이 하나님과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이 건강한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평안의 조화를 이루고 둘러싸인 환경과도 평안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있다.

현대의 우리 사회는 인간 개인 속에 있는 이기심이 집단 이기심으로 변하고 이 집단 이기심이 이기주의로 변하여 사회의 모든 영역이 나뉘고 갈등하고 싸우는 현상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네 탓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의 여진이 아직도 남아서 집단 우울증과 열등감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본질의 상실 혹은 본질의 왜곡이다.

기울어진 배를 약 두 시간여 쳐다만 보고 있을 때 우리의 소중한 새싹들이 수장되었다. 선장과 대다수의 선원들은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탈출하였고, 해경들과 관계자들은 허둥대다가 시간만 보냈다. 우리는 개인을 넘어서 국가적 체계의 위기를 경험해야 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본질이 상실 되었구나 라는 한탄이 솟구쳐 올랐다.

몇 사람의 어머니들이 우리 아이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라고 필자에게 전화를 하였다. 아이들이 선원의 방송만 믿고 그리고 안내하는 선생님들의 말만 믿고 밖에서 핸드폰으로 빨리 탈출하라는 아빠의 문자도 무시하고 있다가 모두가 수장되었다. 그러니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듣지 말라고 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우리가 본질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가운데 발견할 수 있었던 한 가지 희망은 저렇게 정직하게 배 선원의 방송을 믿었던 그 아이들에게서 그 세대들의 정직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치권에서는 인사청문회를 한답시고 극한 집단이기주의가 발동하여 그 대상이 상대편이면 무차별 질타하여 청문회에 가보지도 못하고 낙마를 시키는 일이 발생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본 것은 진실과 사실을 왜곡하여 당사자를 친일파와 반민족적인 인물로 매도하고 또 그 특종을 한 기자가 무슨 기자상을 받는 해프닝이다. 이는 분명히 그 사람의 전부를 알아보지도 않고 부화뇌동하여 그 사람의 한 말 줄기만 가지고 매장해 버리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천박한가를 절실히 보여준다.

성경에서 베레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라고 했다. 베레아 사람들은 바울이 전해준 말씀을 선뜻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그 말이 진실로 그러한가 하여 구약성경에 비추어 보아 신중히 확신하고 바울을 따랐다. 그래서 ‘베레아적’이라는 용어가 생겼다고 한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이 천박함을 벗어버릴 것인가를 생각할 때이다. 여기에 우리 교회의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교회가 이미 다 썩었는데 무슨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고 거부한다. 우리 교회가 영향력을 잃어버렸음을 인정하자. 이 한국 사회의 본질적 문제가 교회의 타락에서 기인함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교회가 바로 서면 민족이 바로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첫째, 교회가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영향력을 잃은 지도 오래 되어간다. 교회가 교회다워야 한다는 명제는 이미 주어졌다. 교회의 주인을 되찾아야 한다.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 오히려 예수님을 종으로 부리려고 한다. 성자 하나님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세속주의, 물질제일주의, 이기주의, 쾌락주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회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둘째, 교회가 변화하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교회의 구성원은 목회자와 성도들이다. 이미 죽어버린 시체 같은 교회에 무엇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인가? 목회자로부터 시작하여 성도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지배를 받은 인격체로 변화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서 삶의 영향력을 나타내야 한다. 사람이 바뀌어야 그 조직이 바뀐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올바른 가치관과 본질에 충실한 사람을 키워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와 영광을 돌리는 곳이다. 또한 사람을 육성하고 훈련시켜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사람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미 성경이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해주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성경을 알고 믿는다고 하면서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야고보가 그렇게도 강조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다. 믿음은 관념이 아니다. 동전의 양면 같아서 믿음과 행함이 병존하여 통칭해서 믿음이라고 한다. 너는 네 행함으로 네 믿음을 보이라고 한다. 사람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보여주는 성경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말씀교육과 생활적응 훈련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말씀에 생명을 걸고 순종하는 순교자적 삶의 훈련이 필요하다. 조직을 키우고 헌금액수를 늘리고 사람의 명성을 나타낸 과거의 결과가 지금의 교회의 난맥상의 원인이다. 조직을 키우지 말고  사람을 키워야 한다.

넷째, 그리스도인의 삶의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본질에 충실한 사람은 올바른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삶을 통한 영향력을 나타낸다. 불신자들은 신자들에게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고 소금을 먼저 기록하신 이유이다. 사람들은 소금은 얼마만큼 넣으면 얼마만큼 짜게 될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다.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길가에 버려 사람이 밟고 다닌다. 한 사람의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조직에 있으면 얼마만큼 정직하고 본질에 충실하고 모든 일에 충성스러울 것이라는 기대치이다. 불신자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이 기대치가 사라진 것을 볼 때 매우 실망한다.

성도의 삶의 표지는 사랑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사랑을 기대하고 성도나 교회에 다가온 불신자가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그의 실망은 매우 클 것이다. 이는 교회나 성도가 죽은 믿음을 가진 증거이다.
나의 삶의 영향력을 체크하는 것은 금년 7개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예수 믿고 교회에 나왔는가를 체크해 보면 된다. 삶의 영향력은 남보다 더하는 삶에서 나타난다.

산상수훈에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세리와 창기들도 그렇게 한다.” “너희의 골육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렇게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나의 골육이 아니라도 독거노인을 문안해야 한다. 이것이 사랑의 발로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사회의 현상을 교회의 책임으로 깊이 고백하고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교회가 먼저 변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은 조직이나 프로그램이나 운동을 통해 흐르지 않는다. 성령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하여 흐른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영향력을 나타내어 온 민족이 십자가 밑으로 모이는 날이 올 것이다.

한국교회의 남은 그루터기를 주께서 일으키시고 전 교회의 회복을 속히 주셔서 우리 민족을 의의 길로 인도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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