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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호

이기심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
  글·제임스 W 낙스 (딜랜드 성경신학원 원장, 목사/ 번역·이우진(목사, 진리침례교회))
우리는 이번 시간을 통해서 기도가 왜 응답 받지 못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공부한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저 우리가 원하는 쇼핑 리스트를 열거한 뒤에 예수님의 이름만 갖다 붙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이름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기적인 기도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기도는 결코 응답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아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기도를 결코 아버지께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 중에는 가장 큰 명령 두 개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니라. 이것이 첫째 명령이니라. 둘째 명령은 곧 이것과 같으니,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0-31)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이 두 명령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다른 사람의 유익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한 것이나 자기의 이익을 위한 기도는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모든 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보다 우선순위에 두거나 다른 사람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이기적입니다. 모든 이기심은 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대부분 우리 육체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들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게 아니라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을 주실 거라고 착각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도 그 사람을 바로 잡아 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신이 편안하게 교회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어떤 형제 때문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 형제를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 형제나 하나님이나 교회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을 사랑할 뿐입니다. 누구 때문에 기분이 언짢으니 그 사람을 바로 잡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온 세상은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하고 있는 것은 고작 자신에게 돈이나 자동차를 주시거나 자신을 편하게 해 달라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하는 것을 들어보면 대부분이 자신의 육신을 편하게 해 달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위해 구하는 기도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히 자신의 육신을 위한 것만을 구해놓고 왜 자신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지 의아해합니다. 결국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자 기도해 봐야 아무 쓸모 없다고 단정지어 버립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기도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읽어보면 제자들이나 사도들 중 누구도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소망을 구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도들과 제자들의 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하는 모든 기도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적이며 영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삶과 이기적인 행위와 이기적인 동기와 이기적인 기도는 모두 같은 부류의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육신의 정욕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99%의 기도가 물질적인 것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단지 1%의 기도만이 영적인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믿음의 기도가 아니라 불신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믿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나 들짐승도 돌보신다면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은 얼마나 더 잘 돌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대부분의 기도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저는 자신의 구원을 빼앗지 마시고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진지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습니다. 왜 이런 기도를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을 구속의 날까지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저를 위해 하늘에 저택을 지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구원자께서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의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저의 구원을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령님에 의해 성경에 기록된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을 통해 사도 바울의 기도 생활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주 예수님을 믿는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한 사랑에 대해 들은 뒤에 나도”(엡 1:15)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나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낸 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7:9).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이 이렇다면 여러분이 세상을 위해 하는 기도를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가지고 나아가서 간구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아마겟돈 전쟁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는 결코 평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는 결코 응답 받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는 결코 평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전쟁을 멈추게 해달라거나 가난을 구제해 달라고 하거나 범죄를 없애 달라고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그러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헛된 일이며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어겨가면서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이 더욱 악해지고 사람들이 서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말씀 그대로 악한 자들이 더욱 악해지고 사람들이 서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모든 국가들에 영향을 끼치고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일주일에 칠일 동안, 하루 이십사 시간 동안 아무리 묵주를 돌리며 기도해도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결코 이 세상에 평화가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는 그러한 기도를 결코 예수 그리스도께 전달하지 않으실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한 기도를 결코 아버지께 드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한 이 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은 사도 바울이 믿는 사람들에게 쓴 내용입니다. 계속해서 16절을 보겠습니다. “기도할 때에 너희에 관하여 말하며 너희로 인해 감사드리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고”

사도 바울이 기도하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께 드린 말씀은 다른 사람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지난 이십 년간 이 일을 해왔습니다. 오늘 아침 어떤 형제가 찾아와서 요즘 자신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목회자가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A형제가 찾아와서 B형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C형제가 찾아와서 D형제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D형제는 찾아와서 E형제가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목사님이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E형제가 찾아와서 F형제의 문제점을 이야기합니다. 목회는 유치원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유아적인 기독교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른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며 다른 형제로 인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형제가 구원받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와 함께 주님께 속한 그리스도의 군사임에 감사드립니다. 저 형제가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함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으로 인해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로 인해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다른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 형제를 향해 쓴뿌리를 갖거나 불만을 품거나 미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형제를 위해 기도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됩니다. 다른 형제로 인해 감사를 드리면 그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로 인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누군가 에베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증언한다는 사실로 인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로 인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구원받은 사람들로 인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로 인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님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른 형제들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감사했습니다. 함께 주님을 섬기고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사람들로 인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형제들로 인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써버리는지 아십니까? 다른 형제들에 대해 불평하는 데 시간을 낭비합니다. 주님께 형제들을 고소하는 데 아까운 기도 시간을 낭비해 버립니다.

만일 주일에 예배 드리러 갈 교회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에 교회가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사는 지역에 단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도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드릴 단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과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육신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의 결점과 부족한 점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음으로 인해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들로 인해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게 미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전 예배로 끝내지 않고 오후 예배까지 드리는 것은 더욱 미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주말에 놀러 가지 않고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친구가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교제를 나누고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형제들로 인해 불평하는 게 아니라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바르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루에 몇 시간이나 기도하는지는 모르지만 여러분이 형제 자매들로 인해 감사를 드린다면 여러분은 제대로 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망치는 것은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이단 종파가 교회를 망치는 것도 아닙니다. 불신자들이 교회를 망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의로 가득 차서 다른 형제를 지적하고 있는 형제가 교회를 망치는 것입니다. 자기 의로 가득 차서 다른 자매를 지적하고 있는 자매가 교회를 망치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교회를 망칠 수 없습니다. 자아 중심적인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망치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로마서 1장에서는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의 첫째 특징이 바로 감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1:21). 교회가 망가지는 원인은 우리가 다른 형제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음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혼자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형제를 필요로 합니다. 저도 다른 형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서로 지원해 주고 격려해주고 교제를 나누고 서로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계속해서 에베소서 1:17을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그분을 알게 하시고”

여기에는 사도 바울이 간구한 둘째 것이 나옵니다. 바울은 다른 형제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후에 그들이 모두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다른 형제들이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다른 형제들이 좋은 집으로 이사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다른 형제들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잘 보십시오. 바울은 단순하게 다른 형제들이 성경을 많이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게 아닙니다. 더 많은 관련 구절을 알게 해 달라고 구한 것도 아닙니다.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과 논쟁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바울은 믿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바울은 믿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바울이 구한 것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아닙니다. 바울이 구한 것은 단순한 성경지식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그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지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도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곳이 어디였는지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동행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간구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하게 다른 형제를 바로잡아 달라고 기도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영적으로 온전히 성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예수님께서 아시는 것처럼 알고 예수님께서 지혜로우신 것처럼 지혜롭게 되어 직장 동료들과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형제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의 편안함이나 안락함이나 건강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할지 몰라도 다른 형제 자매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다른 형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그리스도의 몸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그를 바로 잡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의 형제 자매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우리 교회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수 있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형제들이 잘못을 행했을 때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쉽습니다. 잘못을 행하는 형제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즉시 바로 잡아 달라고, 그 사람을 쳐서라도 바로잡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잘못 행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이 잘못을 행했을 때에는 하나님께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다른 형제가 잘못을 행했을 때에는 즉시 그 형제를 바로잡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계속해서 에베소서 1:18을 보겠습니다.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바울은 다른 형제들이 더 많은 조명을 받게 해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형제 자매들이 주님을 더욱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왜 우리 주위에 있는 형제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잘못된 행동만을 하는 것일까요? 아마 그 이유는 우리가 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기도하지 않고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기만 하고 비난하기만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형제들이 육신적이고 자신이 영적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알려주신 것을 형제들에게도 알려주시고 여러분이 주님을 아는 만큼 다른 형제들도 주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왜 다른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육신은 다른 형제를 위해 기도하기보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은 다른 형제를 위해 중보하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육신은 다른 형제의 잘못을 지적하기를 원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경우에 우리는 영을 따르기보다 육신을 따라갑니다. 여러분과 제가 다른 형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함께 무릎을 꿇고 다른 형제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믿는 자들이 두 가지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 소망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며, 둘째는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란 무엇일까요? 로마서 8장과 빌립보서 3장과 히브리서 5장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많은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역교회에 함께 모여 다른 형제 자매들과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다른 그리스도인이 없이는 결코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인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는 상관없습니다.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함께 지역교회로 모여 부딪히고 배우고 섬겨야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친한 한 두 사람과만 교제를 나눈다면 결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교회로 모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해야만 사랑이 무엇인지, 용서가 무엇인지, 인내가 무엇인지, 오래 참음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게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의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먼저 로마서 8장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8-29)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부름 받았다는 말을 자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목사가 되라고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찬양을 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구두닦이가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저는 구원받아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 드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드러내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부르심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어 에베소에 있는 믿는 사람들도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때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부자가 되게 하거나 성공하여 잘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지혜와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간구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내가 이미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에 도달하려고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빌 3:13-14)

바울이 하는 말은 자신이 경주를 하고 있는데 결승점을 통과하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바로 이것이며 우리가 간구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할 가장 큰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것에 비하면 다른 모든 일들은 작은 일이며 하찮은 일일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눈을 여시어 알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의 규모가 커지는 것도 아니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간절히 바라던 것은 우리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과 같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병들었을 때 그가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병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병에서 나아 남은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게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인지 혹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자신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만 기도합니다. 자신들의 육신을 기쁘게 해줄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복권에 당첨되게 해 주시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워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한 것은 성도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이 자신들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인생의 목적은 물질적인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입니다.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게 된다면 한눈 팔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5장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친히 육체로 거하던 때에 자기를 사망으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강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고 또 친히 두려워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들으셨느니라. 그분께서 아들이실지라도 친히 고난 받으신 일들로 말미암아 순종하기를 배우사 완전하게 되셨으므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시고”(히 5:7-9)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셨으며 인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인간의 굶주림의 고통이 무엇인지 체험적으로 알지는 못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인간의 목마름이 무엇인지 체험적으로 알지는 못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매를 맞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적으로 알지는 못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다는 게 무엇인지 체험적으로 알지는 못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심으로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좋은 환경을 통해 순종을 배우신 게 아니라 고난을 통해 배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심으로 완전하게 되셨습니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완전한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난과 순종으로 구속 사역을 완수하여 완전한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고난으로부터 건져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고난을 주지 말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영적 성장도 없습니다. 우리는 허들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는 사람들의 시선이 허들이 아니라 결승점에 가 있기를 원했습니다. 허들을 바라보고 달렸다가는 거기에 걸려 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승점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달려야만 장애물을 제대로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은 우리가 결승점(예수 그리스도, 영적인 것)을 바라보는지 혹은 장애물(세상, 고난)을 바라보는지에 대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믿음의 경기를 완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에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고난을 받을 것이고 어려운 때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어려운 때와 고난으로 인해 경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18에서 다른 성도들이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께 돈을 달라고 기도하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아들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과 함께 모든 것을 상속받을 공동상속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왜 걱정하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왜 실망하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왜 하나님께 조그마한 물질을 구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전체를 먹이시고 지구로 발받침을 삼으신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구하는 황금을 하늘나라에서는 보도블록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완전히 잊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 집의 타일이 황금으로 되어 있다면 조그마한 금반지가 떨어져 있다고 해서 고속도로에서 차를 멈추고 금반지를 줍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진주로 문을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집은 벽이 보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길은 황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문은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그마한 돈으로 인해 온종일 걱정하고 망하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누군가를 비평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잘못된 것을 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른 것을 구했습니다. 아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것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 우리가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돈도 아니고 물질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모든 것들입니다.
우리는 걱정하고 염려하며 불안해서 잠도 못 자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할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도 먹이시는 하나님인데 자신의 자녀들에게 왜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믿고 안심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아이들이 굶어 죽기 전에 미리 먹을 것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악할지라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터인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왜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주님의 지식과 주님의 지혜와 주님의 부르심과 주님의 상속재산을 알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러한 것들을 간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에베소서 1:19-20을 보겠습니다.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에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분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시고 하늘의 처소들에서 자신의 오른편에 그분을 앉히실 때에 그 권능을 그분 안에서 발휘하사”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에게 닥친 일이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권능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 그들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고 지탱해 주는 것은 자신들의 힘이 아님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들을 지켜주는 것이 자신들의 능력이나 자신들의 믿음이나 자신들의 신실함이나 자신들의 인내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하나님의 강력한 권능임을 알게 해 주시고 그 권능이 자신들 안에 있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은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무엇으로 인해 염려하십니까? 왜 우리가 두려워하고 염려하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주님의 능력이 이미 우리 안에 있음을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든 죄를 가지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모든 죄를 가지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셔서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다면 우리가 죄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우리 안에는 죄로부터 떠나 온전히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지를 나눠주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자신의 아들을 일으키셨던 그 동일한 능력이 여러분 안에 있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른 형제를 비판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고 지각을 열어주셔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가 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21절을 보겠습니다. “그분을 모든 정사와 권능과 강력과 통치와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불리는 모든 이름보다 훨씬 위에 두셨고”

하나님께서는 저를 선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저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께 더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 그 무엇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제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저에게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어떠한 사람이나 군대나 왕이나 통치자도 저를 두렵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이나 환경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간증을 유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왕국과 정부와 사람들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 위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살아있는 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지옥의 권세에 패배 당하기라도 할 것처럼 살아갑니다.

만일 여러분이 교회의 일부라면 여러분은 구원받았고 거듭났으며 온 세상과 함께 멸망할지라도 여러분은 그것을 뚫고 유유히 나올 수 있는 능력을 여러분 안에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이미 그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여러분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형제를 비판하고 미워할 수도 있고 그를 위해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형제의 눈을 열어주셔서 자신이 하나님께 이미 받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마귀도 그 형제를 파멸시킬 수 없고 어떠한 상황도 절망적일 수 없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 형제를 사랑해 주시고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로 삼아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형제가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22절을 보겠습니다.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사 교회를 위해 주셨느니라.”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 위에 계시며 교회도 그분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특히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주일학교의 머리이시고 주일학교 학생들의 머리이시고 주일학교 교사들의 머리이십니다. 주님은 집사들의 머리이시고 목사의 머리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시면 교회는 그것을 가지고 투표를 하거나 논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시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지라도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입니다.

목사나 집사가 교회의 머리가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교회에 관한 것은 무엇이나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교회의 모든 회원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 교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자신이 떠나고 나면 거짓 형제들이 와서 교회를 망칠 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망치는 것은 로마도 아니었고 세상도 아니었으며 어떤 이단 종파도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형제들이 교회를 망치는 것입니다. 서로 다투고 분열을 일으키기 때문에 교회가 망가지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교회가 망가지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뜻대로 교회를 끌고 가려고 하기 때문에 교회가 망가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기준이 되시고 통치하시며 법을 정하시고 주인이 되시며 머리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

사도 바울은 형제들로 인해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했고 주님의 충만하심에 대한 언급으로 기도를 마쳤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단 하나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도 물질적인 것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서로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왜 이러한 것을 구했는지 아시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서로 한 몸에 속한 지체라는 사실을 온전히 알게 되면 다른 지체를 위해 기도하고 그와 다투거나 분열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몸에 속한 지체는 서로를 위해 줍니다. 팔이 다리를 대적하거나 발이 허벅지를 대적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몸에 속해 있습니다. 한 몸에 속한 지체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손이 발에 상처를 입히면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제에게 거침이 되면 그것은 결국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삶을 망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자매에게 주는 상처는 결국 우리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도 저처럼 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저는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미 주신 게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 것들로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모든 것을 맡겨 보았으면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서로 험담하지 말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보았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징계해 달라고 하지 말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도록 기도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를 대신해서 간구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소망이 우리의 소망이 되고 우리의 소망이 주님의 소망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켰던 능력이 여러분 안에도 있음을 알게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 세상과 죄에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요 1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능력 있는 분이신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심을 기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도와주시기 원합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험담하기는 그만두고 서로를 위해 기도를 시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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