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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호

결단-다윗이 거인이 된 순간 外
  글·박재천 (목사. 시인. 가정·효 아카데미 대표)

소명에의 결단

드오리아(D’Auria)의 소설 중에 영화로 유명해진 “하이눈(High Noon. 게리 쿠퍼 주연. ‘백주의 결투’)”이 있다. 주인공인 보안관은 마을의 법질서를 사수하려 한다. 악당들과의 대결을 앞두고 보안관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간청하며 이렇게 말한다. “총 잘 쓰는 사람을 구하지 않습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은 ‘이 일이 나의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 명도 나서지 않아 결국 보안관 혼자서  결투를 벌이게 된다. ‘이 일이 나의 일이다’고 믿는 사람이 온 동네에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나를 불러 주셨다는 의미는 내가 이 일을 위하여 태어났다는 소명에의 결단을 뜻한다.

사랑의 헌신을 기다리는 하나님

인도가 낳은 대전도자 선다 싱의 회심의 경험은 우리에게 예수의 진리를 가늠케 한다. 선다 싱은 1889년 9월 3일 인도의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힌두교도로 선다 싱이 14세 때 세상을 떠나며 훌륭한 종교가가 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선다 싱은 천재적인 소년이었다. 그는 15세 때 이미 어려운 철학이나 종교 서적을 읽었고 자기의 인생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며 고민하는 소년이었다. 1904년 12월 18일의 일이었다. 당시 그는 기독교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기독교에 관계된 모든 책과 성경을 불태우고 자살을 기도했다. 힌두교에도, 기독교에도 해결책이 없는 것 같았다. 인생은 허무하고 절망만이 그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는 목욕을 하고 새벽 5시 급행열차가 집 옆을 지나가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힌두교의 신이든 기독교의 신이든 대답 좀 해주십시오.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때 꿈인지 생시인지 선다 싱은 예수의 모습이 자기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예수는 힌두어로 말씀하였다. “어째서 나를 괴롭히느냐? 나는 이미 너를 위하여 십자가를 졌다. 이제는 네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이다.”
급행열차의 기적소리가 지나갔다. 그 기적소리는 죽음의 소리가 아니라 힘찬 결단의 외침으로 들렸다. 선다 싱이 깨달은 것은 인간의 고민 앞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사랑의 헌신을 기다리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유명한 설교가인 마니(Marney) 목사의 경험담이다. 그는 경찰서에서 훈련을 받은 개를 구입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아이들이 야구를 하다 공으로 유리창을 깼다. 화가 난 마니 목사는 “학교 운동장에 가서 놀아라(Go to school)” 하고 소리쳤다. 그 순간 이 개는 서너 번 문에 뛰어오르더니 문이 열리지 않자 넓은 유리창으로 돌격하여 밖으로 나가 공을 물고 왔다는 것이다. 영어의 “Go”라는 말을 알아듣고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 나간 이 개와 같은 결단이 크리스천들에게도 있는지 마니 목사는 우리에게 반문하고 있다.

다윗이 거인이 된 순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고민과 황홀’이라는 소설을 쓴 어빙스턴은 “미켈란젤로가 다윗을 조각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거인 골리앗에게 도전한 씩씩하고 용감한 목자상을 성경의 기록에서 모형을 땄다.”라고 했다. 미켈란젤로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언제 다윗이 거인이 되었는가? 골리앗을 죽인 다음엔가 혹은 자기가 반드시 해보겠다고 결심한 순간인가?”
그가 결론을 내린 것은 다윗이 거인이 된 것은 살육이 아니라 결단이었다는 것이다. 의연한 결단은 가장 약한 인간을 거인으로 만든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안디옥이나 로마에서가 아니라 다메섹에 가까운 사막의 모래 위에서 결단 내렸던 순간이었다.

하루만 더

혹한을 피해 남쪽으로 떠나려고 준비하는 오리 떼들은 늦은 가을밤에 모든 준비를 갖추고 파티를 마련했다. 큰 농장에 모여 곡식을 잔뜩 주워 배불리 먹으며 내일부터 펼쳐질 고통의 장도를 위해 힘을 축적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출발의 순간이 왔다. 그러나 이때 큰 오리 한 마리가 주저하며 말했다.
“이 곡식알들은 참 먹기가 좋으니 나는 좀 더 남아 이것을 충분히 먹고 떠나기로 했어.” 다른 동료들이 떠나고 난 뒤 맛있는 곡식을 마음껏 먹은 그 오리는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며칠이 지났다. 오리는 매일 습관처럼 “내일 나는 남쪽을 향해 날아야지.”라고 하였다. 그러나 결행은 계속 미루어지고 있었다.
드디어 세찬 겨울바람이 천지를 뒤덮고 더 이상 거기에 머물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오리는 그제야 비로소 날개를 펴고 농장 마당을 가로질러 날으려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리는 날 수 없었다. 살이 너무 쪄서 하늘로 날아오를 수가 없었다. 결단의 순간을 상실한 오리는 남쪽으로 향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후회하는 오리에게 매서운 북풍만이 불어 닥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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