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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호

‘다름’을 잘 ‘다룸’
  글·김종철 (수필가. 충남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마중물교회.)

남자와 여자는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예나 지금이나 이성간의 그 ‘다름’ 때문에 서로 호감을 가지고 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애할 때에는 그렇게 좋던 ‘다름’이 눈에 낀 콩깍지가 벗겨지는 신혼기나 권태기에 접어들면 그 ‘다름’ 때문에 서로 화를 내면서 엄청나게 다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다름’을 다루는 ‘다룸’ 방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태도, 습관, 기호, 인식, 삶의 방식이 항상 옳고 의롭다고 맹신(盲信)하다 보니, 그게 엄청난 착각인 줄도 모른 채 배우자를 줄곧 비판하고 정죄하면서 상대방을 뜯어 고치려는 헛수고를 계속하게 마련이다.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서로의 가슴을 멍들게 하느라 허송세월 하는 부부를 자주 보게 되는 것은 너무나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철이 들어갈수록, 남녀에 대해 일방 혹은 쌍방 모두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능하면 일찍 알아차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부쩍 든다. 

예를 들어 ‘남자들은 성적인 면에서 늑대(이리)와 같다’라는 말이 정말 사실일까? 모든 남성들은 짐승처럼 성욕이 강하여 하루 종일 섹시하게 보이는 여자와 한없이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에 푹 빠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까? 세상에 쫙 퍼진 대로 남자들은 일하다가도 매 7초마다 한 번씩 섹스 생각을 할까?

이에 대한 멋진 반론이 있어 남성의 한 사람으로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면서 그 논문을 자신 있게 소개하고자 한다.

테리 피셔(Terri D. Fisher) 박사 등의 흥미진진한 연구 논문 “머리로 하는 섹스? : 성별, 성애호성(性愛好性)과 사회적 바람직함의 기능으로서의 성적 인지 빈도에 관한 조사”가 얼마 전 저명한 세계적인 의학 잡지 ‘성 연구 저널(Journal of Sex Research)’에 게재되었다(“Sex on the Brain?: An Examination of Frequency of Sexual Cognitions as a Function of Gender, Erotophilia, and Social Desirability,” by Terri D. Fisher, Zachary T. Moore and Mary-Jo Pittenger). 오하이오 주립 대학(Ohio State University) 맨스필드(Mansfield) 캠퍼스의 심리학과 교수인 테리 피셔 박사가 주(主) 저자인 이 논문에는, 우리가 여태 알고 있는 것처럼 남자들이 하루 종일 섹스만 생각하는 늑대가 아니라는 이색적인 연구 결과가 실려 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조사 결과, 남자들의 성욕은 식욕이나 수면 욕구와 큰 차이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성욕을 느끼는 데 있어 남녀의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개개인의 차이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 강박증에 시달리거나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통설에 따르면 남성은 매 7초마다 섹스에 대해 생각한단다. 이를 따져보면 남성들은 하루에 깨어있는 16시간 동안 8,000번을 섹스에 대해 생각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 오하이오 대학 연구팀은 이 통념을 실험으로 확인하기 위해 18~25세의 남녀 대학생 283명(여성 163명, 남성 120명)을 모집했다. 모든 실험 참가자에게 골프 스코어를 계산(golf score counters)할 때 클릭하는 기기(clicker) 즉 휴대용 정밀 숫자 계수기(tally counter)를 지급한 후에, 인간의 기본적인 세 가지 욕구(식욕, 수면욕, 성욕) 중 하나가 발생할 때마다 솔직하게 클릭하도록 설명하였다. 59명의 학생은 식욕, 61명은 수면욕, 163명은 섹스와 관련된 생각이 날 때마다 그 계수기를 누르도록 했다. 물론, 연구팀은 실험 전 설문 조사를 통해 이러한 기본적 욕구에 대해 매일 얼마나 자주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미리 조사했다. 조사 결과 섹스 생각 횟수는 남성에서 하루 1~400 차례, 여성에서 1~388 차례로 나타났다. 피검자(被檢者) 중에는 자신이 너무 자주 혹은 너무 적게 계수기를 클릭하지 않느냐 은근히 걱정하면서 클릭 횟수를 자기 도덕 기준에 맞게 조절하거나 거짓으로 클릭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연구자들은 이런 점을 모두 감안하였다. 조사 결과 남녀별로 수치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평균치(average)는 신뢰할 만하지 못하였기에, 수치의 중앙치(median number)가 더 많은 정보를 줄 것으로 평가하여 그 결과를 도출하였다. 그랬더니 섹스에 대해 남성은 하루 19번, 여성은 10번 정도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식욕에 대해서는 남성은 하루 18번, 여성은 15번 생각했다. 여성 중에는 식욕에 대해 클릭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너무 적게 클릭하자니 거식증(拒食症) 혹은 식욕 부진(anorexia) 환자인가 싶고, 너무 자주 클릭하자니 대식가(大食家, gourmand)라는 오명이 붙을 것 같아, 개인적 혹은 사회적 기대치와 클릭 횟수를 저울질하느라 심사숙고하였을 지도 모른다. 수면욕의 경우 남성은 매일 11회, 여성은 8.5회 생각하였다. 참가자들은 사전 설문 조사에서 섹스나 음식, 수면에 대해 실제보다 훨씬 더 생각을 많이 할 것이라고 응답했었다. 이는 기존의 연구 결과들에 영향을 받은 탓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전의 연구는 섹스 생각 횟수를 실제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추정케 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 탓에 횟수가 과대 포장 되어 몇 년 후부터 남녀 모두를 호도하게 됐다는 것이다.

격정 호르몬과 고삐 풀린 강한 성적 충동의 저장고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성적 에너지가 활발하고 풍부한 연령대의 대학생들이 이 연구의 대상이었음을 고려할 때, 하루 평균 19회 이하(가장 많이 생각해봐야 400 혹은 388회)의 섹스 생각이라는 조사 결과는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치에 훨씬 못 미쳤을 것이다. 이렇게 성적 절정기에 있는 청년들이 매일 고작 19회 이하밖에 섹스 갈망을 하지 않는다면, 이 연령대 이외 사람들의 섹스 생각 횟수는 이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테리 피셔 박사는 대학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많은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섹스에 대해 생각한다는 거짓 이론을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은 경악할 정도다”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성욕은 성별의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음식과 수면 등 다른 생물학적인 욕구에 대한 생각과 비슷하고, 또 음식과 잠에 대한 욕구 또한 남녀 차이가 별로 없음을 밝혔다. 남성과 여성이 섹스를 생각하는 횟수에서 크게 쳐서 2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단순히 남자들이 이러한 생각들을 좀 더 자주 하고 잘 떠올린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남녀 사이의 성욕 차이가 뚜렷하게 있는 것은 아니고 개개인에 따라 다를 뿐이며, 에로토필리아(erotophilia)에 얼마나 자유롭게 높은 점수를 주는가(person’s self-measured degree of erotophilia)와 섹스를 얼마나 기분 좋고 편하게 생각하느냐(comfort with sexuality)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이 설문 조사에서 에로토필리아 지수가 높은 남성과 여성은 더 많이 섹스에 대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서 에로토필리아는 개인의 성적 관심이나 성애호성(性愛好性)을 설명하는 심리학 용어로, 에로토필리아가 높으면 성에 더 개방적인 것을 의미한다. 에로토필리아의 반대말인 성혐오성(性嫌惡性, erotophobia)을 생각하면 이해가 더 잘 되리라.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남녀의 성별에 무관하게 섹스를 좋아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섹스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테리 피셔 박사는 “남성이 여성보다 섹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은 신뢰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는 말이다”고 일축했다. (참조: When Thoughts Turn to Sex, or Not. By PAMELA PAUL. Published: December 9, 2011 http://www.nytimes.com /2011/12/11/fashion/sex-on-the-brain-studied.html)

하지만 상기의 연구는 앞으로 더 많은 추적 조사를 필요로 한다. 테리 피셔 박사가 미국의 나이 든 연령층에게도 이 조사를 연장해서 적용하려고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검사에 응한 사람(특히 여성) 숫자가 충분하지 않았단다. 보수적인 연령층의 집단적 거부가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모든 연령층의 IQ가 지속적으로 올라간다는 이른바 ‘플린 효과(The Flynn Effect)’를 발견한 IQ 문제의 세계적인 권위자 제임스 플린(James Flynn) 교수가 최근에 보도한 대로 미국의 여성의 IQ가 남성보다 조금 더 높아진 탓에, 이런 조사를 자존심 상한다고 여겨 여성들이 더 거부한 것일까? 특별한 근거 없이 나 혼자 중얼거려본다.

여하튼 간에, 남자들이 하루 종일 섹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테리 피셔의 말이 나에게는 참으로 많은 위로가 된다. 실지로 내가 나를 살펴볼 때 아무리 계산해도 매 7초마다 섹스에 대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을 해도 날마다 버거울 정도인데, 매일 깨어있는 16시간 동안 8,000번씩 섹스를 생각할 재주가 나에게는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 초능력의 남성이 있으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이상과 같이 ‘섹스 생각’을 예로 들었는데, 사회적 통념과 진실도 이렇게 크게 다를 수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를 수도 있다. 남성과 여성 혹은 나와 남 사이에도 ‘다름’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 ‘다름’을 ‘다툼’의 대상으로 삼는 데에 있을 것이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여 이 ‘다름’을 잘 다루는 ‘다룸’의 훈련과 기술이 우리 모두에게 정말 필요하다. ‘다름’을 잘 ‘다룸’으로 서로의 영향력을 넓혀주고 자신의 ‘모남’을 깎아 다듬으면서 사랑으로 겸손하게 섬길 줄 아는 성숙한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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