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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글·김 윤 (매그너스병원. 본지 편집자문위원. 영락교회)

첫째이야기

“모친 생전에 한적한 요양병원에 모셔놓았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한국제일(?)의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장례를 치루는 어느 의사 이야기”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머릿속에 있는 가족의 개념은 대가족을 의미해왔다. 가족이라면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고 그 위로 할머니 할아버지, 그 밑으로는 아들 딸, 그 다음에는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 등의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것이 당연한 우리세대의 정서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가족의 개념은 점점 축소되어서 이제는 부모와 자식 하나 아니면 둘이더니 최근에는 한층 더 나아가 1인 가족이 늘어나는 현상이 많은 논란이 되는 가운데 증가하는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가족이라는 혈연관계의 끊을 수 없는 인연들이 가족의 모양을 갖추고 있으면서 외견상으로는 사회를 유지하는 골격을 지탱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서 눈에 떠오르는 장면은 와우아파트나, 삼풍아파트, 성수대교의 모습들이다. 세계를 호령하던 징기스칸의 군대의 힘이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씨족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오늘의 이기적인 사회상을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서론이 너무 거창했나보다. 얼마 전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조용하고 깨끗한 모습을 간직한 할머님은 아직 치매 기운도 별로 없는 편이었다. 그 할머님을 모시고 온 아들 부부인 듯한 그들이 타고 온 차는 한국산이 아닌 외제 고급 승용차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들(?) 혼자만 차에서 내리고 여자(며느리?)는 그냥 차에 앉아 있었다. 아들 혼자 입원 수속을 마친 후 그들 부부는 그대로 떠나갔다.
 
아들은 국내 유수한 의과대학을 나오고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개업을 해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전문의였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그리고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한 가지 부인이 차에서 내리지 않은 것 이외에는. 얼마 후 아들 내외는 할머니 면회(?)를 왔다. 이번에도 그 여자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아들 혼자 내렸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할머니에게 드릴 요구르트 한 병이 들려 있었다.(몇 개가 들어있는 한 박스가 아니고, 조그마한 요구르트 한 개였다.) 그 아들은 요구르트 한 개를 들고 자기 모친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친의 얼굴을 한번 보고는 요구르트 한 개를 전하고 그냥 돌아서 나와서 자신의 고급 승용차와 부인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그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혼자 외롭게 병원직원들이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조용히 돌아가셨다. 그 아들은 임종 시에 오지도 않았다. 자신의 어머님의 소식을 듣고도 오지 않더니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달 받고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 직원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어느 장례식장으로 보내달라는 전갈만 했다. 그곳은 소위 한국에서 가장 이름 있고 좋다는 장례식장을 자랑하는 병원의 장례식장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허탈함보다는 분노가 치밀었다. 모르기는 하지만 그 할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어떻게 키워서 훌륭한 의사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둘째 이야기

“ 외로움을 못 이기고 세상을 등진 할아버지 이야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광경들이 참 많다. 유명하다는 동리에, 좋다는 아파트에 살면서 자기 아파트 옆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사는 경우가 당연시되는 것이 오늘의 현대인의 모습인 것 같다. 김 할아버지는 연세에 비해 아주 건강했다. 아침에 만나면 반갑게 늘 인사를 하였으며 식사는 물론 활동하는 데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을 달리했다.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포기했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놀랐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평소에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주의를 요할 행동은 전혀 없었기에 더구나 이러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연락을 받고 도착한 가족들 역시 당황하거나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김 할아버지가 이 요양병원에 오신 지는 몇 년이 되었다고 한다. 자손들은 모두 잘 자라고 모범적인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직장에 충실하고 가정에 충실한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자손들이었다. 이 뜻밖의 사태에 가족들은 병원을 원망하며 그 할아버지는 절대로 스스로 목숨을 포기할 이유도 없고 그러한 행동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병원의 실수이거나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가족들의 항변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평소에 할아버지와 자주 상담을 했다는 사회복지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평소에 할아버지가 자손들을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외로워하며 힘들어 하셨는지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자손들은 깜짝 놀랐다. 자신들은 바쁜 중에도 때마다 찾아뵙고 맛있는 음식도 준비해드리곤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몇 달에 한번 씩 찾아오는 자손들을 기다리기는 김 할아버지의 마음은 너무 약했던 것일까? 너무나 외로웠던 것이다. 조용하면서도 인사를 잘하는 가운데 약간 우울하고 쓸쓸해 보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 외로움 때문이었구나, 그렇게도 외로웠구나, 이 이야기를 들은 자손들은 뒤늦은 후회를 하며 눈물을 감추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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