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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호

새해 인사를 받으며
  글·최원현_ (수필가. 문학평론가. 사)한국학술문화정보협회 부이사장. 사)한국문인협회 이사. 청운교회 )

어김없이 새해가 왔다. ‘어김없이’라는 이 말 속엔 내 힘이 아닌 다른 절대적인 힘, 자연의 질서라는 의미가 가득하다. 내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찾아와 주는 아름답고 정직한 질서 앞에서 나는 참 하릴없이 세월의 강가를 서성이고 있는 것 같은 초라한 모습이 된다.

새해가 되면 나누고 받는 것 중 가장 크고 많은 것이 인사이리라. 하지만 그 방법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문명의 이기(利器)들 때문인 것 같다. 나 또한 근래 들어 거의 대부분의 인사치레를 그런 문명의 이기에 힘입어 하고 있다. 영상을 곁들인 문안을 만들어 수십 수백 사람에게 동시에 보낼 수 있는 편리함은 때론 너무 성의 없는 것 아니냐는 자성을 낳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바쁜 시대에 살면서 이만큼 이름을 기억해 주며 소식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냐는 위안도 받는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음은 익숙해 있던 것들까지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씩 모른 체 하고 있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내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다. 원로작가 선생님으로부터 손수 쓰신 새해 연하장을 받았을 때다.

지난 해 보다 더 힘이 빠져 있는 것이 느껴지고 지난 해 보다 더 많이 손이 흔들린 글씨에서 늦가을 낙엽처럼 조마조마하고 위태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은 관제엽서에 적힌 두 장의 연하장을 받았다. 한 분은 아흔을 바로 앞에 두신 분이고, 한 분은 아흔을 세 해나 넘기신 분이다.

‘새해에도 좋은 작품 많이 쓰시고, 뜻하는 일들이 속속들이 이루어지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희망찬 새해맞이를 축하합니다. 쑥쑥 뻗어 오른 나무줄기에 소망의 가지마다 염원의 꽃이 피어 소담스레 열매 맺히길 손 모아 축원합니다. 아흔 둘의 고갯마루에서’

어르신으로부터 연하장을 받는다는 것이 송구스럽단 생각이 들지만 건재하심의 확인인지라 나는 여간 기쁜 게 아니다. 혹시라도 답을 못 주시면 어떡하나 했던 불안을 떨쳐버린 답신의 연하장을 받으면서 또 한 해는 거뜬하시겠구나 스스로 가늠을 해 보기도 한다. 비록 지난해보다 쥔 펜에서 힘이 빠진 게 보이고 글씨가 더 삐뚤대며 춤을 춘 모습이어도 이만큼 펜을 들고 소식을 주시며 새해 축하를 해 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증거 앞에서 아이처럼 기뻐하며 한 해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년엔 나도 손으로 쓴 연하장은 겨우 이십여 장 보냈다. 점점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내 게으름이기도 하지만 보낼 분이 줄어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든 여덟이신 미국에 계신 고모부께서 성탄 겸 연하카드를 보내셨는데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 카드일 것 같다고 하셔서 눈물이 나고 말았다. 고모부는 이젠 카드를 보낼 사람도 다 없어져버려 내년까지 살아 있다고 해도 더는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 또한 연하장을 보내면서 이게 마지막이 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갖곤 한다. 요 몇 년 사이에 세상을 뜨신 어른들이 너무 많다. 물론 세상 떠나시는 것이 나이순만은 아니라도 살아오신 날이 많으신 분들껜 우리가 생각하는 천명은 다하셨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기도 해서 마냥 조심스럽기만 하다.

지난해엔 똑같은 연하장을 세 번이나 받기도 했다. 정신이 맑지 못하시구나 생각이 들어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보내놓고도 보낸 것을 기억 못하시고 보내고 또 보내시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금년에는 그 엽서가 더욱 기다려진다. 그렇게 보낼 수 있는 힘은 곧 사는 힘이다.

얼마 전엔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나를 못 알아보셨다. 그래도 오랫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끊었는데 십 분쯤 지나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시며 어찌 그렇게 누군지가 생각이 안 났었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 속상해 하셨다. 그러다가 찾아뵙게 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걱정이 앞섰다. 전화로도 나를 몰라보셨는데 직접 만나서 못 알아보시면 어떡하나 해서였다. 하지만 저만치서도 나를 알아보시며 반가워 하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새해 인사는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가 한 장이라도 더 연하장을 챙기는 것도 그 분들이 보내주시는 답신에서 그분들의 건강상태를 확인 하려는 뜻도 크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새해가 되면 마음 한 편이 쓸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보내는 연하장 수보다 받는 연하장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도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후배들이 많아진 것은 기뻐할 일이지만 어느새 나도 그런 세월의 마루턱에 앉게 되었다 싶기 때문이다.

그나마 올해는 지난해보다도 육필 연하장 수가 줄었다. 상대적으로 문자메시지와 전자우편 연하장이 월등하게 늘었다. 이 또한 시대적 추세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무어든 속전속결과 간단하고 편리하게 해치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 아닐까.

쌓여있는 연하장들 속에서 두 장의 엽서 연하장을 꺼내 든다. 그리고 두 분의 음성을 흉내 내서 소리 내어 읽어본다. 목이 잠긴다.

선생님, 한 해도 건강 하십시오. 선생님의 연하장을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계속해서 받고 싶습니다.

환갑이 넘은 아들이 연로하신 아버지 등에 업혀 이리 가세요 저리 가세요 했다는 일화처럼 나도 어르신들 앞에서 더 오래도록 어리광을 피워드림으로 그분들의 강건하심을 확인시켜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도 내년에는 더 많은 육필 연하장을 보내야겠다. 내 강건함의 과시이고 어르신들의 강건하심을 확인하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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