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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호

초록빛 그라운드(1)
  글·조임생 (동화작가. 시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사막 어디엔가 샘이 숨어있기 때문이래요. 내 꿈은 사막의 샘처럼 멋지답니다. 내 꿈은 장차 프로 야구선수나 국가 대표급 축구 선수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지금 암초에 단단히 걸렸어요. 내 빛나는 꿈을 우리 엄마가 깨트리려 하거든요. 왜냐고요? 그건…… 아빠 때문이에요. 축구 선수이던 아빠가 한쪽 다리를 절고 계시는데,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것이 원인이었대요.
“축구 때문에 멀쩡하던 네 아빤 장애자가 된 거란다. 그런데 너까지 운동선수가 될 거야? 제발 그만두렴.”
엄마는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교 선생님이나 학자가 되는 게 소원이래요. 그 소원 때문에 엄마와 나는 자주 삐걱거리고 부딪칩니다. 하지만 나는 시간만 나면 마을 앞 공터나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몰고 다녀요.
운동 경기를 하다 보면 더러는 다칠 수도 있고 사고가 나기도 해요. 하루는 마을 공터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하고 있었지요. 나는 정말이지 멋지게 홈런을 쳤어요. 그런데 그 공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지 않겠어요! 하필 찻길 옆 상점 쪽으로요.
“아이쿠, 큰일 났다.”
“쨍그랑!”
뒤이어 끔찍한 소리가 고막을 울렸어요.
달려가 보니 치킨 집 유리창 한 장이 위에서 아래로 쫘~악 금이 가고 만 거예요.
“누구 짓이야?”
치킨 집 아줌마는 화가 잔뜩 났어요.
순간 도망가 버릴까 하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친구들 앞에서 비겁해지고 싶지는 않았어요.
나는 용기를 냈습니다.
“아줌마, 저어… 제가… 그랬… 어요.”
아줌마는 내 용기에 화가 좀 누그러진 것 같았어요.
“학생이면 공부나 할 노릇이지 왜 남의 가게 유리는 깨뜨리고 이 난리를 치니?”
“죄… 송… 해… 요.”
“벌써 두 번째야.
지난번에도 유리를 깨놓고 도망친 녀석이 있었는데 설마 넌 아니겠지?”
“지난번에도 유리를 깼다니요? 맙소사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난 절대 아니에요.”
순간, 이럴 줄 알았으면 도망쳐 버릴 걸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내가 잘못했으니 야단맞을 수밖에요.
결국은 엄마가 와서 유리 값을 물어 주셨어요.
집에 돌아 온 즉시 엄마는 내 야구 배트며 장갑을 몰수해 버렸습니다.
나는 이제 야구를 못하게 됐어요.
엄마가 저렇게 화가 났으니까 다신 돌려주지 않을 거예요.
정말이지 홈런 한번 때린 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우리 준호도 좋은 취미를 가지는 게 좋겠지?”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엄마가 말했어요.
가보나마나 또 무슨무슨 학원일 거예요. 빨리 숙제하고 축구하러 가야 하는데….
친구들이 공터에서 날 기다리기로 했거든요.
“나 지금 바빠요. 숙제가 많은 걸.”
“갔다 와서 하면 되잖니? 너 또 어디 갈려고?”
“…….”
“피아노 학원 좀 다녀 봐. 우리 준호라면 잘 할 것 같애.”
“난 피아노 같은 건 치고 싶지 않아요.”
“처음엔 누구나 그런 거야. 하지만 배우면 얼마나 재미있는데. 가양동 엄마 친구 알지? 그 아줌마한테 너 만한 아들이 있거든. 걔가 이번에 피아노 경연대회서 우수상을 탔다는구나. 너무 부럽더라. 너한테도 음악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 혹시 모르잖아. 한번 해 봐, 응?”
어휴.
난 꼼짝없이 피아노학원을 다녀야 했어요. 내 마음은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았죠.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 버리고 싶었어요.
글쎄, 내 편인 줄 알았던 아빠마저 운동보다는 공부를 하래요.
아빠도 축구가 좋으니까 열심히 축구를 해서 선수까지 된 거 아니겠어요?
경기에서 다리를 다쳤다고 축구선수가 된 걸 후회한다면 진정한 축구선수라고 할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난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엄마 몰래 내게 축구를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우리 아빠거든요.
다리만 다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훌륭한 축구선수가 됐을 우리 아빠, 정말 불쌍해요.
나는 아빠 대신 그 꿈을 꼭 이루고 싶어요.
그런데 난데없는 피아노 학원에 끌려오다니 말도 안돼요.
정말 속상했어요.
나는 겨우 왼손, 오른손 해가며 손가락 연습도 힘들게 하는데 칸막이 교실 저쪽의 여자아이는 어려운 곡도 막 치는 거예요.
피아노라면 왕초보인 내가 들으라는 듯이 신나게 더 크게 뚱땅거리는 거 있죠?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도 엉망이예요.
지금쯤 내 친구들은 윗마을 아이들과 공터에서 축구를 할텐데.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다리가 근질근질했어요.
주 공격수인 내가 빠지면 윗마을 패들에게 도저히 상대가 안 되거든요.
“저어, 선생님.”
“왜 그러니?”
“배가 무지하게 아파요.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배를 부둥켜안고 얼굴을 찡그렸어요.
히힛, 연극에도 난 소질이 있나봐요. 선생님의 눈이 금방 왕방울만큼 커지는 거 있죠?
딱하다는 듯이 등까지 두드려 주고요.
“저런, 뭘 잘못 먹었나 보구나. 얼른 집에 가 봐.”
선생님 그리고 엄마, 미안해요.
나는 비실비실 학원을 빠져 나오자마자 공터까지 냅다 달려갔어요.
벌써 시합이 시작되고 있었죠.
예상대로 적의 볼이 우리 골문 앞에서 막 노는 거예요.
“야, 준호다!”
민수가 소리쳤어요. 날 보더니 금세 얼굴이 환해지는 거예요.
우리 편은 나 때문에 사기가 올랐어요.
나는 먹이를 가로채려는 표범처럼 날쌔게 환상적으로 공터를 누볐어요.
윗마을 수영을 태클하여 볼을 빼앗아내선 곧장 민수에게 어시스트했지요.
민수는 멋지게 중거리 슛을 날렸습니다.
골인! 골인!
와아, 이렇게 신날 데가. 이렇게 좋을 수가.
우리 편은 막 뛰고 끌어안았어요.
동점입니다. 그러자 녀석들 두 명이 나를 따라붙었어요.
민수와 내가 명콤비인 걸 그 애들도 잘 알거든요.
내가 재빠르게 발을 빼서 공을 차고 나가려는 데 이번엔 수영이 녀석이 느닷없이 뒤에서 다리를 걸었어요. 순 반칙이에요.
“아쿠쿠”
나는 나동그라졌어요. 그런데 발목을 단단히 삐었나 봐요. 아파서 움직이기도 힘들고요.
무릎의 긁힌 자리에서도 피가 배어났어요.
자, 이젠 큰일 났어요. 거짓말한 데다 다치기까지 했으니.
후,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착한 피아노 선생님을 속인 벌인가 봐요.
나는 절뚝거리며 간신히 집에 왔습니다.
“딩동 딩동”
한참을 기다려도 기척이 없었어요. 옳지! 엄마가 작은 이모네 가셨구나.
나는 재빨리 편지함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땄어요.
우선은 안심이에요.
내방 침대에 벌러덩 엎드렸어요. 발목이 꾹꾹 쑤시는 데다 내일 또 피아노학원 갈 일이 아득했어요.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선생님 얼굴은 또 어떻게 보죠?
이게 다 우리 엄마 때문이라니까요.
미술학원, 속셈학원, 웅변학원, 글짓기학원, 컴퓨터학원 그리고 태권도에다 이번엔 피아노학원까지… 나중엔 무용학원까지 다니라고 하실 거야.
두 개씩 겹쳐 다니다가 그만두고 그만둘 때마다 엄마에게 혼나고…
나는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왜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말리고 하기 싫어하는 건 자꾸 하라 하는지 정말 청개구리엄마 같아요.
‘난 이담에 어른이 되면 그러지 않을 거야. 축구도 좋고 야구도 좋고 피구도 농구도 다 좋아.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하고 싫증나도록 하라고 할 거야. 내 아이한테.’
내 아이?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나도 아이인 주제에 무슨 아이?
나도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지겨운 잔소리도 듣지 않구요.
‘하여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발전이 있다고 우리 선생님도 그러셨는걸. 이건 순전히 인권침해라고.’
숙제를 해야 하는데, 발목도 아프고 머리도 지끈거리기 시작하고 기분도 엉망이고…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야지.

나는 골목길 우리 집 앞에 서 있었어요.
“준호야, 이리와 봐. 이쪽이야, 이쪽.”
민수가 나를 불렀어요.
공터엔 우람이, 경연이, 훈이, 윗마을 수영이네까지 다 모여 있었어요.
민수는 우리를 엄청나게 크고 금빛 나는 돔형의 멋진 건물 앞으로 데리고 갔어요.
입구 쪽엔 셔터가 내려져 있고 주먹만 한 열쇠가 채워져 있겠죠.
“여기가 어디야? 올림픽 경기장보다 훨씬 더 크잖아!”
“여긴 말야. 우리나라에서 최첨단으로 건설한 2000년대 미래형 올림픽 경기장이야.”
“올림픽은 벌써 치렀잖아?”
“야, 한번 가지고 성에 차냐? 이제 곧 통일이 되면 통일 올림픽도 개최해서 세계를 깜짝 놀래줘야지.”
“축구장도 있겠네?”
“두말하면 잔소리지. 우리 아빠가 관리소장인데 시골 가신 틈에 내가 잠깐 열쇠를 슬쩍했다고. 다 너희들 때문이야. 나 같은 효자가 이건 말도 안 되지만.”
민수가 눈을 찡긋하더니 호주머니에서 금빛 열쇠뭉치를 끄집어내는 거예요.
호기심에 모두 가슴을 울렁거렸어요.
덜커덕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자 징- 하고 부저가 울리더니 우주복 비슷한 옷을 입은 사이버인간이 나타났어요.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우린 모두 촌닭처럼 멍해졌어요.
곧이어 이동계단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리더니 우리를 그대로 경기장 앞까지 실어주는 거예요, 글쎄.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야 백화점에도 있고 지하철에도 있지만 이건 순 평평한 길인데 걸을 필요도 없더라고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서로 부딪칠 염려도 없겠고요.
“우와!”
경기장 앞에서 우리는 하마처럼 입이 딱 벌어졌어요.
금잔디가 초록 카펫처럼 좌아악 깔린 드넓은 축구 경기장에 야구장, 테니스코트, 농구골대도 보였어요. 각 경기장을 한 바퀴 끌어안으며 릴레이 코스가 타원을 그렸는데 주위는 온통 꽃밭이지 뭐예요.
파란 하늘이 눈 시린 수영장은 또 어떻고요. 모든 시설이 정말이지 기가 막혔어요.
그야말로 우리에겐 천국이었어요.
우리는 신이 나서 풀밭 위를 막 뒹굴었죠.
구르고 또 구르고 마주보곤 우헤헤헤 웃고 또 뒹굴었어요.
편을 가르고 새 축구공으로 축구를 하는데 나는 도저히 발목이 쑤시고 아파 뛸 수가 없었어요.
그라운드를 바람처럼 누벼 가는 아이들을 보자니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볼까 봐 아예 수돗물을 틀어 놓고 엉엉 울어버렸어요. 눈물이 수돗물과 함께 줄줄 흘러서 수영장의 물이 불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자꾸 울었더니 온통 수영장이 넘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내게로 몰려들더니 꿀밤을 사정없이 먹였어요. 아파서  더 크게 엉엉 울어버렸죠.

“준호야! 이 녀석, 뭘 잘했다고 우는 거야?”
엄마였어요. 눈꼬리가 잔뜩 치켜져 올라갔어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인제 막 혼이 나겠죠.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릴지도 몰라요.
“너, 피아노도 안치고 거짓말까지 했다며?”
“미… 안해요, 엄마.”
엄마는 나를 노려보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딸그락.” 안에서 문 잠그는 소리가 들렸어요.
엄마가 무지하게 화가 났다는 신호예요.
나는 가슴이 뜨끔했지만 절대로 축구를 포기할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야구도 포기해 버렸고 남은 건 축구밖에 없잖아요.
내 인생이 걸린 중대 문제라고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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