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건강과 생명
과월호 보기
특집
건생주치의
건생가이드
건생캠페인
건강한 사람들
신앙클리닉
시론
문학
2012년 3월호

초록빛 그라운드(2)
  글·조임생 (동화작가. 시인. 여의도순복음교회)

“딩동 딩동”
‘누굴까?’
작은 이모였어요. 들어서자마자 이모도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어요. 여자들은 잔소리가 취미인가 봐요.
“준호야, 너 제발 철 좀 들어라. 어쩌자고 거짓말까지 하니? 엄마가 너 때문에 얼마나 속상해 하는데. 네 아빠 좀 봐. 그놈의 축구 때문에……. 넌 축구 같은 건 하지 마. 응?”
아~ 난 잔소리라면 정말 골이 아파요. 화도 막 나고요.
“이모, 난 축구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요!”
난 내 방으로 들어와 버렸어요. 절뚝거리는 걸 본 이모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어요.
“준호야, 너 왜 다리를 절고 있니?”
“괜찮아요.”
“괜찮은 게 아니잖아? 언니! 어디 있어? 준호가 다리를 다쳤나 봐!”
이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방 문이 덜컥 열렸어요.
“무슨 소리니? 준호가 다리를 다쳐?”
“언니는 아들이 다친 것도 모르고 방에서 뭐하우?”
“준호야. 너… 너… 정말 다리를 다친 거야?
엄마도 이모도 다들 호들갑이었어요.
“괜찮다니까요.”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내 다리를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죠.
“너 축구하다가 넘어졌지?
“잘 됐다. 이젠 며칠은 꼼짝도 못하겠군. 엄마 말 안 듣는 아인 그렇게 벌 받는 거야.”
엄만 내가 고소한가 봐요. 그날부터 난 손가락만 한 침을 발목에 주렁주렁 꽂아야만 했어요. 오, 하나님.
일주일 동안이나 나는 축구공을 만져보지도 못했어요.
사랑하는 내 친구! 자나 깨나 나는 축구 생각만 했어요.

과외 선생님이 오셨어요.
어젯밤 엄마와 아빠가 밤늦도록 심각하게 무슨 얘기를 하시더니 과외선생님 모셔 오는 문제였나 봐요.
이모 옆집에 사는 대학생 형이래요.
이제 내가 고학년이 되고 중학교에 가려면 영어, 수학 기초를 든든히 해야 한대요.
하지만 난 알아요.
사실은 내가 축구를 못하게 엄마가 미리 선수를 친 게 틀림없어요.
“푸우” 한숨이 나왔어요.
학교 공부, 학교 숙제, 과외 공부, 과외 숙제… 난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우리 학교 선생님인 민수 아빠는 민수에게 새 축구화를 사 주셨대요. 민수보고 미래의 국가대표급 선수가 되라고 격려도 하셨대요.
와, 역시 선생님이라 다른가 봐요.
철호는 장래 프로야구선수가 되기로 결정을 하구요. 부모님도 좋다고 하셨대요.
나는 민수보다 축구를 더 잘 해요. 야구도 철호보다 더 잘 할 자신 있구요.
이건 다른 애들도 인정해 주는 거예요.
민수 아빠가 우리 학교 선생님이라도 이건 어쩔 수 없어요. 내가 얼마나 날쌔게 드리블을 해내는지 모두들 감탄하는 걸요.
요리조리 수비수를 제치고 슛을 날릴 때의 그 통쾌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오, 내 인생이 축구로 시작해서 축구로 끝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꿈속에서 본 그라운드가 생각나요.
끝도 없이 펼쳐진 초록빛 융단 위로 막 뒹굴었지요. 그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정말로 민수 아빠가 새 경기장의 황금열쇠를 가지고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
민수 아빠는 선생님이니까 그럴지도 몰라요. 선생님은 누구나 존경하니까 대통령 할아버지가 특별히 부탁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민수는 내 친구니까 가끔씩은 비밀경기장에 들어가 볼 수도 있는데.
아니야, 그런 경기장이 있다면 신문에도 날 거고 텔레비전 뉴스에도 날 텐데… 그건 그냥 꿈이라고.
하지만 축구선수가 되면 초록빛 그라운드를 마음껏 달릴 수 있어요.
나는 꼭 축구 선수가 될 거예요.
공을 재빨리 몰아 적진을 돌파할 때의 스릴은 정말 기가 막히지요.
영어도 수학도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골치만 아팠어요. 내 마음은 온통 축구로 가득 차 있거든요.
드디어 한 달 만에 과외 선생님은 두 손을 들고 항복했어요. 준호는 전혀 공부할 자세가 돼 있지 않다나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대요.
그 콩밭이 바로 축구 아니겠어요? 나는 속으로 낄낄거렸죠.
“선생님, 때리셔도 좋으니 우리 준호, 공부에 취미 좀 가지게 해 주세요, 네?”
엄마가 사정했지만 선생님은 미안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더니 총총히 가 버렸어요.
‘와아, 해방이다!’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지요.
이제는 분명히 엄마가 항복을 할 거야. 그래 나도 이제 지쳤으니 네 마음대로 하거라 하시면서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또 시작했어요. 글쎄.
나보고 반성문을 쓰래요. 그것도 열 장씩이나!
이건 말도 안 돼요. 나를 완전히 골탕 먹이려는 우리 엄마의 작전이예요.
차라리 슛을 열 개쯤 꽂으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반성문이라니요? 잘못한 일도 없는데. 나는 반성문 따윈 쓰고 싶지 않아요.
엄마들은 왜 반성문을 안 쓰나요?
자식의 꿈을 짓밟는 엄마들은 반성문을 백 장도 더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쫓겨나고 말았어요. 너 같은 아인 필요 없으니 나가 버리래요.
이제 엄마는 준호 엄마가 아니니 다시는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래요. 결국 나는 불쌍한 고아가 된 거예요.
눈물이 핑그르 돌았어요.
‘그래, 나도 마음대로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거야. 마음껏 뛰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곳으로.’
그런데 갈 데가 없었어요.
주머니를 뒤져 보니 아침에 장난감 로보캅 사고 남은 동전 몇 개가 딸랑거릴 뿐이에요. 저녁밥도 못 먹었는데 빵 하나 우유 한 개도 못 사게 생겼어요.
나는 그냥 찻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갔어요. 어디라도 멀리 가버리고 싶었지요. 축구를 못할 바엔 차라리 굶어죽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날이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어요.
‘여기가 어디쯤일까?’ 처음 와 본 곳이었어요.
문득 낯선 동네가 무서워졌어요. 강도를 만날까봐 겁도 나고요.
나는 오던 길을 되돌아 한참을 걸었어요. 아마 한 시간도 넘게 걸었을 거예요.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할 때야 저만큼 낯익은 교회의 뾰족탑이 보였어요. 빨간 십자가 불빛과 함께 독서실이며 목욕탕 네온이 너무나 반가웠어요.
후유, 이젠 안심이에요.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나와 내 친구들의 정든 축구장인 공터로 갔지요.
찌르르 찌르르르
공터 옆 풀밭에서 풀벌레들이 울고 있었어요. 나도 슬퍼졌어요.
“씨이, 사내자식이 울긴…….”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냈어요.
엄마 아빠는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내가 너무 속을 썩여 드린 건 아닐까?
나도 공부만 좀 열심히 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실 텐데 난 왜 그렇게 못하는 걸까?
미루나무 밑동에 기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검푸른 밤하늘 저편,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 달이 미루나무 가지에 와 덜컥 걸렸어요.
달을 보니 또 배가 고프기 시작했어요. 오늘 저녁 메뉴는 뭘까? 엄마는 항상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주셨는데….
배에서 꼬로록 소리가 들렸어요.
아니지, 지금은 배 좀 고픈 게 문제가 아니야.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도 모를 위기에 빠져 있는 걸요.
‘아, 난 정말 어떡해.’
무릎 사이에 고개를 푹 파묻었어요.
“준호야!”
“준호야아…….”
나는 벌떡 일어났어요. 엄마와 이모가 애타게 나를 찾고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나도 모르겠어요. 재빨리 측백나무 울타리 뒤로 넘어 숨어버렸거든요.
마음은 달려가서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빌고 싶었는데 말예요.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어요.
“어엉엉”
마침내 울음보가 터졌어요. 그때였어요.
“자아식, 바보같이 울긴”
민수였어요.
“너, 여기 어떻게 왔냐?”
나는 너무 반가워 민수의 손을 덥썩 잡았어요.
“임마, 너 때문에 난리가 났다구. 너네 아빠, 엄마, 이모 모두 널 찾느라 동네를 몇 바퀴는 돌았을 거야. 파출소에도 신고했대.”
“……”
“걱정 마. 너 이제 축구해도 되니까.”
“뭐? 너 지금 뭐랬어?”
“응. 네 황소고집에 네 부모님 두 손 다 드셨대. 그리고 우리 아빠가 일등공신인 줄이나 알어.”
“무슨 말이야?”
“위험은 운동뿐 아니라 어디서나 있는 거라고 말야. 그걸 겁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라고. 또 축구는 멋진 운동인데 그런 재주를 타고 난 걸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와아. 역시 선생님다운 말씀이다. 너희 아빠 정말 멋지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 아빠가 허락했다는 거지? 내가 정말 축구를 해도 좋다고?”
“응, 네가 그렇게까지 축구를 좋아하는 줄 모르셨다면서 이젠 말리지 않을 거래.”
“야, 고맙다 민수야.”
나는 민수를 덥석 끌어안았어요,
“자아식, 네가 축구를 하면 내겐 라이벌이 하나 더 생기는 거야. 난 별로 좋을 것도 없다고.”
“임마, 감히 네 녀석이 내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냐? 착각은 자유지만 해도 너무했다. 그냥 파트너 정도로 만족하라고.”
나는 커다란 알밤을 민수에게 먹였어요.
“이얏호!”
겅중겅중 뛰며 집으로 달려오는데 눈앞에 파아란 그라운드가 보였어요.
축구공을 몰고 신나게 누벼 가는 내 모습도요.
“송준호! 송준호!”
내 머릿속엔 관중들이 물결치며 환호하는 모습이 새겨졌습니다.
불빛이 환한 집 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들이마셨어요.
‘슛 골인.’
드디어 굳게 닫힌 골문이 활짝 열렸답니다.
멋지게 슛을 날린 이 기분! 정말이지 아무도 모를 거예요.  





[Copyright ⓒ 건강과 생명(www.healthlif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컨텐츠 사용 문의 및 저작권 문의

Untitle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