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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호

윤리적 관점에서 본 줄기세포 연구
  글·박재현 (경희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의료윤리학 교수)

윤리적 관점이 중요한 이유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국민들은 줄기세포연구를 수많은 의생명과학 연구 분야 중의 하나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어떤 윤리적인 갈등이 있어도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 아주 특별하고 가치가 큰 연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2005년에 세계 의생명과학 연구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초대형 연구부정 사건을 경험한 이후에도 시민들의 이런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줄기세포연구는 다른 의생명과학 연구와 달리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고 성공할 경우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며 미래에 우리나라가 이 기술로 먹고 살 수 있는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기대 가운데 윤리는 중요하지 않은, 거론하고 싶지 않은, 귀찮은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도 이런 인식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다. 특히 심각한 연구부정 행위를 저질러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은 물론 수많은 의생명과학 연구자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나라 망신을 톡톡히 시킨 특정 연구자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무한 신뢰는 과연 우리 사회에서 솔직한 윤리 논쟁이 제대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적인 검토는 중요하고도 적절한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오해

해결책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복잡하고 난해한 상당수의 생명윤리 논쟁도 가치 판단에 앞서서 사실 판단을 제대로 하면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줄기세포에 대한 윤리 논쟁 또한 정확한 사실 판단이 선행되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2005년 전후의 황우석 사태 때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들을 되짚어 보자.

첫째, 배아줄기세포연구가 난치병 치료 연구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오해이다. 의생명과학의 연구 역사를 보면 수많은 연구들이 한 시절 각광을 받다가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도 하고,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연구 분야가 각광을 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포함한 줄기세포연구 또한 다양한 의생명과학 연구 분야의 하나일 뿐이다. 줄기세포 연구만이 난치병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윤리적인 논쟁과는 별개로 의생명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고려한 균형 잡힌 정책과 국민들의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마치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라는 식의 인식은 위험하며 이런 인식이 황우석 사태를 불러 온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배아줄기세포와 줄기세포를 구별하지 않고 배아줄기세포연구에 대한 반대를 줄기세포 연구 전반에 대한 반대로 받아들이는 오해이다.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로 크게 나눌 수 있고 최근에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라는 새로운 형태의 줄기세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아줄기세포연구를 하지 않는 것은 모든 줄기세포 연구를 포기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논란이 더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다.

셋째,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반대를 종교와 과학의 대립으로 보는 오해이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찬성과 반대는 다양한 과학이론 사이의 충돌 또는 특정한 연구를 선택할 것인가 선택하지 않을 것인가의 전략적 선택의 차이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반대를 마치 중세 시대에 로마 가톨릭이 지동설을 주장하는 과학자를 탄압한 일과 동일한 사건쯤으로 보는 일은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선동에 불과하다.

넷째,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가 이미 임상에 적용되었거나 아주 짧은 시일 내에 임상에 적용될 것이라는 오해이다. 2005년 5월에 황우석 전 교수는 사이언스지에 두 번째 논문을 싣고 난 후의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안락한 가족이 있는 안방이 있다. 여기를 들어가는 데는 몇 겹의 커다란 대문이 있는데 너무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내가 과연 들어갈 수 있는지, 돌아가야 될지 몰랐다. 그런데 지난해 처음 들어가 보니 커다란 철제대문이 4개가 보였다. 일단 하나를 열고 나서 1년여 만에 4개의 문을 한꺼번에 열었다, 앞으로 ‘사립문’ 몇 개가 남아 있는 게 보였다, 이 사립문을 열고나면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들어갈 것 같다.” 이 말을 들으며 수만 명의 난치병 환자들이 이른 바 ‘세계 줄기세포 허브’에 등록을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실상은 임상시험 대상자로 등록하는 것인데 마치 치료 대기자 명단에 등록하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올해 1월에 미국에서 2명의 맹인 환자를 대상으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를 임상시험한 결과가 처음으로 발표되었을 뿐이다. 설사 배아줄기세포가 치료제로 쓰일 날이 온다고 해도 그 시기는 그렇게 빨리 올 수가 없는데 7년 전에 서둘러 이런 발언을 하며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이 있었다.

다섯째, 윤리가 과학발전의 걸림돌이고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윤리가 양보해야 한다는 오해이다. 이런 오해가 인류 역사에서 참혹한 결과를 불러온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나치, 일본군의 비윤리적인 인체시험은 물론 다양한 생명윤리 사건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윤리는 과학발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다. 윤리를 배제한 발전은 발전이 아니라 퇴보이고 악행일 뿐이다.

배아 = 가장 작은 인체시험 피험자

줄기세포 연구에 다양한 윤리 쟁점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배아를 단순한 세포 덩어리로 보느냐 인간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법률은 생명윤리법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배아줄기세포연구자의 입김을 그대로 반영하여 배아를 세포덩어리로 취급하고 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는 ‘배아라 함은 수정란 및 수정된 때부터 발생학적으로 모든 기관이 형성되는 시기까지의 분열된 세포군을 말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 복제양 돌리를 만든 이안 윌멋은 2004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배아의 크기는 모래 한 알의 3분의 1에 불과, 아무런 의식도 없고 느낌도 없다. 인간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연속선상에 있는 인간의 생명을 특정한 시간을 정하여 ‘수정 후 며칠까지는 세포덩어리이고 며칠부터는 생명체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주장이다. 또 생명이 연속적인 과정이기는 하지만 수정 순간이 결정적인 경계표지가 된다. 그 이유는 이때에 남성과 여성의 염색체가 합쳐져 유전적으로 전 세계 누구와도 구별되는 독특한 개체가 형성되기 때문에 수정이 생명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따라서 배아를 ‘태어나지 않은 인간’으로 대접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미국의 기독교 생명윤리 학자 길버트 밀랜더(Gilbert Meilander)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생명윤리 입문’이라는 책에서 인간 배아에 대해 기술하면서 그 장의 소제목으로 ‘배아, 가장 작은 인체시험 피험자’로 썼다. 그리스도인이 인간 배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시편 139편 14~16절의 시인의 고백과 같이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던” 배아를 세포 덩어리로 취급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용납될 수 없다. 배아는 태어나지 않은 인간으로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 139: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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