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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호

성경적 관점에서 본 줄기세포
  글·차 한 (가천의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1. 들머리

최근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가수 윤종신씨가 2월 13일 방영된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하여 희귀병인 크론병(Crohn disease)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 난치성 질병으로 투병해왔던 윤씨 같은 환우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이라며 크론병 환자에게 생기는 누공(瘻孔)을 치료하는 줄기세포 치료제가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돼 지난 달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제품 허가를 받았다는 뉴스가 언론에 대서특필이 되면서 다시 줄기세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생명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기사를 접하는 많은 국민들이 줄기세포가 우리에게 ‘잘 먹고 잘 사는’ 무병장수의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 굳건히 가지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고 하겠다.

물론 크론병 환우들을 직접 치료하는 필자도 환자의 지방조직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세계 최초의 지방조직 유래 줄기세포 치료제이기도 한 이 약이 빨리 보험급여대상품목이 되어 많은 크론병 환우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이처럼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인간의 건강을 도모하는 것과 달리 (이미 몇 해 전 우리가 황우석 사태를 통해 경험한 바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질병을 퇴치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따라서 줄기세포의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어오고 있는 이 시대에 성경적 관점에서 인간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고찰을 하여 시대의 영적 좌표를 재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2. 생명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통해서만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다는 오랜 철칙은 생명복제를 통한 동물들의 탄생으로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인간배아줄기세포가 생명공학의 최첨단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고전적이고 상식적인 인간론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인격적인 생명체로서의 인간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피조물(創造物)로 지음을 받았다(창1:27)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창1:27, 이하 흠정역)

둘째, 인간 생명의 시작은 수태(conception, 의학적으로는 수정) 시점이며, 따라서 배아 역시 보호받아야 할 존엄한 생명이다(렘1:5; 시51:5; 사43:1; 갈1:15).

“내가 너를 배 속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거룩히 구별하였으며 너를 민족들을 향한 대언자로 세웠노라, 하시기에”(렘1:5)
“보소서, 내가 불법 가운데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가운데서 나를 수태하였나이다.”(시51:5)

“그러나, 오 야곱아, 너를 창조한 주가 이제 이같이 말하노라. 오 이스라엘아, 너를 지은 이가 말하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고 내가 너를 네 이름으로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니라.”(사43:1)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나를 구별하시고 자신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갈1:15)

그렇다. 우리는 14일 이내의 세포 덩어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인간에게 속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셋째, 어머니 배속에 있는 (태어나기 전의) 태아도 한 인격체이다(눅1:41; 출21:22).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들을 때에 아기가 그녀의 태 속에서 뛰노니라. 엘리사벳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여”(눅1:41)

“사람들이 싸우다가 아이를 밴 여인을 다치게 하여 그녀의 열매가 그녀에게서 나왔는데 다른 손해가 없으면 그는 그 여인의 남편이 요구하는 대로 반드시 형벌을 받되 재판관들이 결정하는 대로 지불할지니라.”(출21:22)


3. 범죄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역사상 신실하고 이성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생물학적 삶이 시작되는 수정의 시점부터 우주의 그 어느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고귀한 한 인격체가 존재함을 굳건히 믿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실험을 위해 인간배아에서 세포를 제거하는 것이나 치료라는 미명하에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배아세포를 복제하는 행위들은 성경적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살인 행위인 것이다(출20:13; 마19:18; 롬13:9).

“너는 살인하지 말라.”(출20:13)

아울러 수정후 14일 이내의 배아를 단순히 하나의 세포 덩어리로 간주하며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감행하고 있는 일부 과학자들과 이를 옹호하고 있는 사회는 (살인을 통해) 다른 사람의 소유인 줄기세포를 획득하려 하는데 이것 또한 성경에서는 금하고 있는 사항이다(출20:17).

“너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소유 중 아무것도 탐내지 말라.”(출20:17)

배아줄기세포는 우리의 ‘이웃’에 속한다. 그러므로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배아를 죽이는 것도 그렇지만 배아줄기세포를 탐내는 것 자체도 명백히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진화론적 과학관과 인본주의란 인간의 교만이 혼재되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진화론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인간배아줄기세포란 그저 박테리아나 아메바로부터 오래 전에 진화된 세포덩어리로만 여겨진다. 그래서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아무렇게나 조작하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진화론적 세계관(evolutionary worldview)이 과학적 연구들을 지배하고 있는 한,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시는 더욱더 당연시 될 것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눅18:8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거듭 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우리를 심판하시며 또한 구원해주실 수 있는 예수님을 올바로 선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골1:15-17).

“그분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이시니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 또한 그분께서는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골1:15-17) 

그리고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데도 인간배아줄기세포를 굳이 이용하려는 것은 ‘생명의 탄생’ 프로그램도 ‘인간에 의해’ 조작이 가능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즉 창조주의 영역에 도전하여 생명을 좌지우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교만(人本主義)도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5. 인본주의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들은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법으로 영생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곧 복음(gospel, 天乃人)이 아니라 종교(religion, 人乃天)를 통해 ‘결코 죽지 않으려는’ 시도를 행해 왔다(창3:4; 갈1:11-14).

오늘날 기독교와 유대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의 기원이 되고 있는 바빌론(Babylon)에서 바벨탑을 세우게 된 과정을 보면 확실히 이 인내천(人乃天)의 인본주의(humanism)는 하나님의 방법과는 정반대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노아의 홍수 후 사람들이 동쪽에서부터 이동하다가 시날 땅에 있는 평야를 만나 거기에 거하게 되자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려고 바벨이라는 도시와 탑을 세우게 되었다(창1:28; 9:1; 11:2,4,9). 아울러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돌 대신 그들의 진보된 기술로 만든 벽돌로써 도시와 탑을 세워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하였다(창11:3,4; 고전10:31).

그런데 이러한 바빌론의 방법론은 언어가 혼잡하게 되어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지면서 함께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창11:8,9; 행17:26). 그리하여 ‘하나님의 신격’(Godhead)이 ‘사람의 기술이나 고안’(art and man’s device)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식이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류에게 팽배해지게 되었다(행17:29).

그리고 21세기 생명공학의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이러한 인본주의의 종교적 방법론은 질병 치료용(therapeutic cloning)이라는 미명하에 배아줄기세포를 채취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고 급기야는 이를 통해 ‘인간(배아) 복제’를 이루어 ‘결코 죽지 않으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창3:4).

6. 인간복제

그런데 인간 복제란 영(靈), 혼(魂), 육(肉)으로 구성된 인간에서 단순히 육(肉)만을 복제한다고 하는 개념이 아니다(살전5:23; 히4:12). 이것은 너무나도 ‘종교적’이며 ‘영적’인 문제이다.

특히 같은 생명 복제이면서도 동물의 복제와 인간의 복제가 같을 수 없음은, 즉 인간 복제가 영(靈)적인 문제임은 주님께서 욥(Job)의 나중을 처음보다 더 복되게 하신 구체적 내용들에서 잘 알 수가 있다. 욥기 42장을 보면 주님께서 욥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시고 욥이 이전에 소유했던 것의 ‘두 배를 주셨다’(duplicate)고 기록되어 있는데 양은 칠천에서 만 사천 마리로, 낙타는 삼천에서 육천 마리로, 소는 오백에서 천 겨리로, 암나귀는 오백에서 천 마리로 정확히 두 배가 되었지만 아들은 일곱, 딸은 셋으로 이전과 똑같은 수였다(욥1:2,3; 42:10,12,13).

즉 동물은 영혼(soul)이 없기 때문에 육(肉)이 죽으면 끝이지만 인간은 영혼(soul)을 소유한 존재이므로 욥의 고난 중 육(肉)이 죽었던 자녀들은 그 혼(魂, soul)이 살아서 낙원(paradise)에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고난 후에 이전과 같은 수의 자녀를 주심으로써 자녀수에 있어서도 완벽하게 ‘두 배’(duplicate)의 복을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그렇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완전한 인간일 수 있는) 인간 복제는 복제양 돌리의 경우처럼 결코 단순히 육(肉)만의 복제로 그칠 수 없다. 왜냐하면 영혼(soul)과 육체를 나눌 수 없는 ‘전인적 존재’(holistic person) 곧 ‘영혼과 몸이 같이 있는 단일체’(psychosomatic unity)로서 인간이 복제되는 것이므로 복제의 대상이 된 세포를 공여(供與)한 사람의 혼(魂, soul)과는 또 다른 혼(魂, soul)이 복제된 육(肉)에 함께 내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 복제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저 ‘인간의 기술과 고안’(art and man’s device)에 이끌려 복제된 인간의 육(肉)에다 영혼(soul)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일까?

7. 심판

앞으로 곧 다가올 단일세계정부(One World Government) 하에서 ‘인간 복제’와 같은 바이오산업은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적그리스도는 게놈프로젝트 등을 통해 밝혀진 인간의 ‘유전 정보’(image)를 조작한 후 여기에 ‘생명’(life)을 부여하는 인간 복제 기술을 적용시켜 마치 전능자로서 사람들로부터 경배를 받고자 할 것이다(계13:15).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image)에게 생명(life)을 줄 권능이 있어 그 짐승의 형상으로 하여금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고자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도 하더라.”(계13:15)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심판이 곧바로 이 세상에 임할 것을 말씀하신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great tribulation)이 있을 것임이니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때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주께서 그 날들을 짧게 하지 아니하시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로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짧게 하시리라.”(마24:21,22)

주 예수님께서 ‘인간 복제’와 같은 악(惡)을 행하는 자들을 자신의 임재 가운데서 영존하는 파멸로 징벌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터인데 우리는 바로 그 때가 임박했음을 성경에 제시된 여러 표적들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세태들을 보면서도 깨닫게 된다(살후1:7-9; 마13:39-43; 단12:4; 나2:3,4; 마24:7,12; 딤전4:1-4; 딤후3:1-5; 약5:3; 벧후3:3,4).
그런데 대환난 기간 중 심지어는 5개월 동안 메뚜기에 의해 고통을 받더라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계9:3-6). 아마도 역설적으로 인간 복제 기술과 같은 바이오테크놀로지의 결과로 인해서겠지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 속에서 차라리 죽음을 갈망한다 해도 죽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죽음이 멈춰진 때보다 최악의 고통의 시대가 또 있을까? 이것은 마치 죄인들이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일 것이다.


8. 마무리

구원받지 못한 모든 인간들에게 있어서 지고(至高)의 선(善)은 어떤 분야에서건 그들이 부인하는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일 것이다. 특히 창조의 클라이맥스로 하나님께서 만드셨던 인간에게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며 인간을 복제까지도 하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매력적인 아이템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설혹 인간을 복제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물질(세포)로부터 만들어진 간접적인 창조(mediate creation; 요2:1-11; 요6:5-14; 요9:1-41; 막7:31-37; 요5:1-9; 시51:10,17)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 복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인간을 ‘무(無)에서’(ex nihilo; out of nothing) 만들어내신 직접적인 창조(immediate creation; 창1:1; 요1:1,3; 골1:16; 창1:2)에는 결코 비견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행해지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모든 행위들이 궁극적으로 심판으로 이어짐을 인류 역사의 태동에서부터 계속 확인할 수 있다(창3:6,19; 11:4-9).
따라서 이제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창조자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는 생명공학의 결국이 어떠할 것인지 우리는 확실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그 까닭은 이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이기 때문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은밀한 일과 더불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12:13,14)

“보라,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시느니라.”(약5:9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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