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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호

세계최초 청각장애인 프리마 돈나 강진희
  글·엄윤주 기자 ()
어떻게 그녀를 소개해야 할까.
‘세계 유일의 청각장애인 프리마 돈나’라는 말이면 그녀를 소개하기에 충분한 것일까.

이 몇 마디의 단어들로 그녀가 흘렸던 눈물과 땀방울, 그리고 수 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도 남았을 기도들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는 어떨까.
어떻게 들을 수도 없는 음악을 이해하고, 몸짓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가 듣는 것은 무엇이며, 그녀가 표현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렇듯 그녀를 생각하면 궁금과 의문부터 줄을 선다.

발레리나 강진희.
조승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그녀는 보청기를 끼면 기차가 옆에서 지나갈 정도의 소리를 겨우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청력을 지닌 선천성 고난청 청각장애인이다.

그녀가 처음 발레에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 음악과 분리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발레에 청각장애는 치명적인 장애일 수밖에 없기에 주위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꿈보다 앞선 장애란 없는 법. 무용에 대한 강한 매력과 강한 의지에 불탔던 중학교 어린소녀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어림없는 일’에 도전장을 내밀고 만다.

맘속으로 박자를 세어가면서 동작을 반복하고, 선생님의 스틱소리를 보는 것으로 들으며, 그 소리에 움직이는 것을 배웠던 중학교 무용반 시절, 말을 알아듣지 못해 선배들로부터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고 엉덩이가 까맣게 멍이 들 정도로 매를 맞아도 그녀는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남들이 다섯 번을 연습 하면 스무 번을 연습 하고, 남들의 몇 배에나 이르는 연습량 때문에 발톱이 다 빠진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동아대 콩쿠르에서 독
무를 할 때의 일이다. 콩쿠르 전날 무대연습을 하는데, 마침 학생들이 데모중이어서 최루탄이 강당 안으로 들어 온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대피했지만 담임선생님은 연습을 멈추지 않으셨다. 모두가 빠져나간 그 큰 강당에 홀로 남아 눈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연습하는 그녀, 그리고 마찬가지로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이를 지켜보던 선생님과 어머니…

무용만이 연습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녀가 보청기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음악의 진동이나 파장뿐.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책을 통해서 형성하는 것 또한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살아있는 춤사위를 위한 그녀의 눈물어린 분투의 일면이다.

고인이 된 그녀의 스승 조승미 씨는 그녀를 일컬어 연습벌레라고 말했다.
스스로 완전한 준비가 됐다고 생각할 때까지 반복되는 연습, 연습, 그리고 또 연습!

오직 연습만이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요 길인 것이었다.

청각장애로 인한 우여곡절은 또 어떠한가.

<흑조>를 공연할 때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춤을 다 추고 다시 돌아와서 훼테(Fouette, 32회전)를 하는데, 음악 담당자가 공연이 다 끝난 줄 알고 녹음기를 꺼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몰랐던 그녀는 아무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는 고요함 속에 홀로 32바퀴를 돌았다.

적막 속에 홀로 도는 고독한 흑조. 모든 청중들은 그녀의 무용에 맞추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부산 산업대 콩루르 때의 일이다.
예선에서 <백조>의 독무를 하는데 무용을 시작했을 때 춤과 음악이 맞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과 무용이 따로 논 것이다. 관중들의 분위기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이를 지켜본 어머니는 세상 사람들에게 딸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폭로당한 듯한 아픔에 가슴이 찢어져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음악과 무용은 맞지 않았지만 워낙 뛰어났던 그녀의 무용에 심사위원들이 매료당하고 있었던 사실을. 그리고 예선통과라는 낭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결선에서 상상하지도 못한 1등상을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발레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고 3때였다.
3학년에 올라가자마자 발목에 부상을 입어 거의 일 년 간 콩쿠르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 그녀는 깊은 슬럼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하는 데다 다리가 아파 무용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자신은 아무 데도 쓸모없는 존재란 사실이 그녀를 괴롭게 했다.

깊은 무력감과 자괴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성경말씀.
매일 아침 3시간씩 어머니와 함께 성경 말씀을 읽던 중 여호수아서 6장을 볼 때였다고 한다. 철옹성 같은 여리고 성을 공격하는데, 매일 한 바퀴씩 조용히 여리고 성을 돌고, 7일 째 되는 날 일곱 바퀴를 돌고 고함을 치면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던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정말로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을 보며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무용을 할 수 없는 그 시절이 곧 침묵 속에서 인내하며 여리고 성을 돌았던 시절이며, 머지않아 여리고 성이 무너질 날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후부터 그녀는 매일 여리고 성을 도는 마음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무용을 했고, 다쳤던 발목도 점차 나아갔다.

이제 그녀는 세계에서 단 한명밖에 없는 청각장애를 가진 프리마 돈나로 우뚝 섰다.
국내외 각종 콩쿠르 상을 수상함은 물론이요, 1995년 ‘삼손과 데릴라’ 미국공연을 통해 국제 발레 무대의 신데렐라로 떠오를 뿐 아니라, 1998-1999년 ‘삼손과 데릴라’ 중국 순회공연에서는 ‘영혼을 사로잡는 개성과 힘 있는 무대’,‘중국대륙을 사로잡는 한국 발레’라는 언론의 극찬을 받아 낸 명실상부한 ‘프리마 돈나’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98년 한국 장애인 복지 체육회로부터 장애 극복상을 받았고, 2002년 12월 31일,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타종행사의 시민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녀는 기억한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치과진료를 하며 ‘성경번역 선교회’를 후원하는 선교사로 계시는 든든한 후원자 부모님과, 사랑을 가르쳐 주고 함께 공감하며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인생의 동반자, 동일한 청각 장애를 지닌 동양화가인 남편 허남성 씨, 그리고 듣고 말할 수 있는 꿈을 이루어준 사랑스런 딸 예빈이. r그리고 무엇보다 힘들 때 마다 지켜봐 주고,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준 수많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녀는 얼마 전까지 여호수아 신학교에서 일반 학생들에게 무용을 가르쳤으며, 대학원에 진학해 재활복지를 공부하고, 제자훈련을 준비 중에 있으며, 또다시 공연연습에도 돌입할 예정에 있다.

그녀가 그토록 무용을 열심히 하고, 또 다른 일들에 열심인 것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은 데서 출발한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통하여 한 명의 장애인이라도 더 용기를 내고,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애인들이 평등하게 재능을 인정받고,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속히 오기를 소망하면서…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박자를 세지 않는다고 한다. 고통스런 연습이 반복되고 반복되던 어느 날부터 공기의 울림이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은 귀가 아니라 몸이 듣는 것이며, 몸이 아니라 영혼이 듣는 것이리라.

궁금증이 풀렸다.
그녀는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일그러진 세상 속에서 본질을 보고 본질을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가 듣는 것은 영혼의 소리이며, 그녀가 표현하는 것은 영혼의 몸짓인 것이다.
그녀는 오늘도 모래보다 많은 눈물과 땀방울을 엮어 그녀만의 언어로 세상을 향해 말한다.

“장애는 불편할 뿐,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신체의 장애가 곧 인생의 장애는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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