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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호

분노하라
  글·유한익 (서울우리아이정신과 원장. 오류동남부교회 )

얼마 전 카다피의 생포 및 사살 장면이 일간지 1면을 도배했다. 동영상 조회수도 엄청나다. 42년의 압제에서 해방된 민중들의 드높은 함성이 생생하게 들어 있다. 그들의 분노가 뜨겁다. 카다피의 죽음으로도 다 식힐 수 없을 것 같다. 뉴스라인에서도 원한이나 치정에 의한 폭력이나 살인에 대한 기사가 끊이질 않는다. 억울함은 분노를 일으키고, 그 뒤에는 복수가 뒤따른다. 분노는 우리의 일상이다.

우울증은 가장 흔한 정신질환이며, 자살의 첫째가는 원인이다.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자들은 ‘자기에게로 향한 분노’가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분노가 잘 해소되지 않은 채 억압되었을 때, 자신을 해치고 죽이는 병적 상태가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우울증은 분노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타해와 자해는 대상만 다를 뿐, 원인은 모두 분노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게 표현되지 못한 분노의 두 얼굴이다. 분노는 우리를 망치기도 한다.

정상적인 아이들도 화를 낸다.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공격적이 된다. 엄마의 젖꼭지를 깨물 수도 있고 똥을 싸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엄마는 아이의 욕구를 알게 되고 재빠르게 채워주게 된다. 표현하지 않으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러니 만족을 누릴 수도 없다. 아이의 짜증은 엄마로부터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 되는 시기에 가장 첨예하게 나타난다. 이 과정의 분노는 독립을 향한 절규이다. 화를 내면서 아이는 엄마로부터 분리되어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가 된다. 이처럼 인간은 분노하면서 자유를 얻는다. 자유를 얻기 위해 분노의 과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분노로 개인은 독립을 이룬다.

1세기의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해야 할 성전이 시장(市場)처럼 변해버린 것에 대해 분노했다. 가식적인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고 욕했다. 18세기의 프랑스, 우리의 지난 70, 80년대, 현재의 이집트, 리비아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 인간 집단은 분노해야만 했음을. 자신의 목소리, 정의, 자유, 평등, 권리, 독립과 같은 가치는 개인과 집단이 분노하고 얻어 낸 고귀한 보배였다. 분노로 집단은 발전한다.
사랑이나 용서라는 단어는 분노의 반대말로 흔히 오용된다. 사랑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화난 얼굴은 자비롭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사랑이란 무엇인가? 한없이 용서하고 오래 참는 것 사랑 맞다. 희생하는 것 역시 사랑 맞다. 하지만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만을 추구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진리와 함께하는 것, 그것 또한 똑같이 중요한 사랑의 모습이다(고전 13장). 불의를 용납하고 진리 편에 서지 못한다면, 의분(義憤)을 품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분노는 사랑이다.
우리는 무엇에 공분(公憤)하는가? 우리를 비분강개(悲憤慷慨)하도록 만드는 것은 어떤 일들인가? 네거티브 선거전? 한진사태? 빈부격차? 독재? 인권탄압? 황금만능주의? 부정부패? 아니면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분노하지 않는가? 태고부터 우리 몸과 정신에 뿌리내리고 있는 분노의 불꽃이 모두 꺼져버린 것은 아닌가? 건강한 분노의 가장 큰 적은 무관심이다. 인간사의 불행에는 대부분 가해자(offender)와 피해자(victim), 그리고 방관자(bystander)가 있다. 이 중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방관자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극소수인 반면 방관자는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관자가 가해자와 피해자보다 더 큰 힘이 있다. 그 힘이란 올바름을 만드는 힘이고 잘못을 고치는 힘이다.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 힘이다. 혼자서는 못해도 모이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방관자가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고, 무관심이 관심으로 변화할 때, 그 힘이 발휘된다. 분노는 방관자를 참여자로 만든다.

어떻게 분노할 것인가? 가장 쉬운 방법은 힘으로 밀어 부치는 것, 즉.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폭력으로는 분노를 야기하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수많은 선각자들이 생각해냈고 역사를 통해 증명했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바로 비폭력이다. 비폭력적으로 분노하는 방법에는 저항하기, 거부하기, 굴복하지 않기, 버티기, 투표하기, 관심 갖기, 참여하기 등이다. 비폭력은 가장 효과적인 분노의 표현형이다.

인간의 감정 중 분노는 생후 3~4개월 만에 조기 분화하는 가장 초보적인 감정이다. 분노가 이처럼 일찍 발달하는 이유는 개체의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감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분노하지 못하면 인간과 사회는 병들게 되고 결국 죽게 된다. 분노는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인간과 사회의 반응이다. 진리 편에 서서 분노하는 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명이며, 우리와 우리 자녀의 삶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작업이다. 스산해지는 계절, 거룩한 분노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뜨겁게 달궈보자.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 편에 서는 일 / 진리 위해 억압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비겁한 자 물러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 낙심한 자 돌아오는 그날까지 서리라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 진리 따라 살아 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 주시리
                                                                                                                        (새찬송가 58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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