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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호

임상의가 경험한 임종
  글·차 한 (가천의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병원이란 아픈 사람들이 찾아와 병을 고침 받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는 곳만은 아니다. 멀쩡하게 두 발로 걸어들어 왔다가도 유명을 달리하게 되는 사람들이 적잖이 목격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의사로서 매일 병원생활을 하는 가운데 수많은 임종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 글에서는 연령순에 따라 어린이, 청년, 장년, 노년의 특별한 임종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오래 전 필자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하던 때였다. 한 초등학교 여자 아이가 갑작스러운 두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응급실에서 여러 가지 검사가 시행되고 있던 가운데 이 아이는 아빠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였으나 당시 불신자였던 그 아이 아빠는 딸아이의 청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응급 검사 결과 뇌부종이 심한 것으로 나타나 곧바로 병실로 입원한 그 아이는 병실에서도 계속 아빠에게 기도해달라고 하였는데 사실 알고 보니 이 아이는 엄마와는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아빠가 예수님을 믿지 않아 아빠를 전도하기 위해 아빠에게 기도해 달라고 조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침 이 아이와 같은 병실에 있던 보호자 중에 주일학교 선생님이 있었는데 이분이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었고 그 때마다 아이는 고통 가운데에서도 평안해지곤 하였다.

그러나 아이의 증세는 의료진들의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이 되지 않았다. 입원한 지 며칠이 지나 아이는 의식을 완전히 소실하였다. 인공호흡에 의해서만 심폐기능이 겨우 유지될 뿐이었다. 뇌가 완전히 망가져 더 이상의 의학적 처치는 의미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보호자들은 아이가 집에서 임종하길 원하였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에 인공삽관이 된 아이의 호흡 유지를 위해 앰뷸런스에 의사가 한 명 동승하여야 했다. 당시 소아과 병동의 수석전공의는 필자에게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여 필자가 아이와 함께 가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여 안방에 아이를 눕혀 놓고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곡하고 있는 가운데 필자는 계속하던 인공호흡(AMBU bagging)을 멈추고 기도에 삽입이 되어 있던 관을 제거하겠다고 보호자들에게 말을 하였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선생님, 잠깐만요. 찬송을 부르고 나서요.”라고 말하며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찬송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욱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찬송의 음정박자는 고사하고 가사가 뭔지도 알 수 없는 패닉 상태가 초래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듣고만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필자는 큰 목소리로 410장을 부르며 (다행히 410장은 필자가 외우고 있던 몇 안되는 찬송가 중의 하나였다) 가족들이 정확하게 따라 부르도록 유도를 하였다.

4절까지 마치고 필자가 다시 보호자들에게 인공호흡을 멈추고 삽입된 관을 제거하겠다고 하자 또 아이의 엄마가 “선생님, 잠깐만요.”하면서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신 다음에 그렇게 해주세요.”라며 필자에게 명령(?)을 하였다.

갑작스런 기도요청에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이 아이의 죽음이 의미가 있도록 하려면 아이의 아빠가 기도에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 아빠에게 함께 아이의 가슴에 손을 대고 같이 기도하자고 요청하였다. 몇 초의 정막이 흐른 뒤 아이 아빠는 무릎을 꿇고 아이의 가슴에 손을 얹었고 또 엄마도 손을 얹은 후 필자가 두 분의 손을 감싸고 나서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 아버지, OO의 기도가 응답되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 OO의 아빠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사랑하는 딸을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필자가 온누리교회에 다닐 때 같은 순모임에서 알게 된 이OO 장로님이란 분이 계셨다. 이 장로님은 필자보다 연배가 십년 정도 위셨는데 깊은 신앙심과 성숙한 인품을 지니셨으며 또 특별히 필자를 친동생처럼 아껴주셨기 때문에 필자는 이 장로님을 멘토로 여기며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어느 날 이 장로님이 필자에게 요즘 종아리 근육이 뭉쳐서 조금 불편하다고 하셨다. 침도 맞아보고 마사지도 받아 보았는데 별 차도가 없다고 하셨다. 필자에게 보여주시는 종아리를 보니 단순히 근육이 뭉친 것으로 생각이 되지 않아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오셔서 정밀검사를 받으시라고 하였다.

MRI를 찍어본 결과 악성근육종의 하나로 판명이 되었다. 매우 희귀한 병인지라 당시 우리나라에서 이 병에 대해 제일 경험이 많은 정형외과 전문의를 수소문하여 원자력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시도록 하였다. 이 장로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몇 차례 문병을 갈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이 장로님이 병실에 여러 환우들을 모으시고는 필자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환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였으므로 내게는 병원이 선교지가 아니겠냐는 이 장로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어 필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환우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자 이 장로님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청년을 필자에게 소개시켜 주셨다. 자신이 요즘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환우인데 사정이 매우 딱하다고 하셨다. 고아로 자라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전기기술자로 한 십년간 열심히 일해서 돈 좀 모아 장가도 가려고 하였는데 근육암이 생겨 하지 절단을 하게 되었고 또 몇 차례 재발을 하여 현재는 폐에까지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로 앞으로 한두 달밖에는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아울러 투병생활을 하느라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을 다 써버렸는데 혈육이라고는 결혼한 여동생이 하나 있지만 그 여동생도 장애인인 데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면회도 자주 오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기독교모임에는 가끔 나오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하셨다.

소개받은 그 서른두 살의 환우와 마주하였다. 빡빡 깍은 머리, 약간은 창백하고 야윈 얼굴,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을 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무슨 말부터 꺼낼까 생각하다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그 청년에게 주었다. “이 돈으로 맛있는 것 사먹으세요.” 서슴없이 돈을 받고서 얼굴에 잠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며 번개기도를 하였다. ‘하나님, 이 영혼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리고는 직설적으로 복음(福音)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저는 OO씨에게 매우 귀한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생(永生)이란 선물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드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OO씨는 얼마 후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하지요. 그런데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죄를 용서 받으면 천국에 가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아 죄가 그대로 있게 되면 지옥으로 갑니다. …… 예수님을 OO씨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마음에 모셔들이시겠습니까?”

그러자 그 청년은 주저하지 않고 영접기도를 하였다.

“주 예수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는 죽어서 지옥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또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이 시간 저는 예수님을 저의 인격적인 구원자와 주님으로 모셔들입니다. 저를 구원해주시는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멘.”

영접기도를 하고난 후 이 청년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속에 무언가 얹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요.”라고 혼잣말처럼 조용히 속삭였다.

그리고 이 장로님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이 형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모든 예배와 기도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을 뿐 아니라 늘 기쁘게 병실 생활을 하였으며 약 한 달 뒤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도 얼굴에 평안이 넘쳤다고 하였다.


이 장로님은 병원선교사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계셨지만 이 장로님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었다.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과 수차례의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척추에 암세포가 전이되어 급기야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 항암치료를 계속 받으시게 되었다.

그러나 척추에 퍼진 암세포로 인해 하루의 대부분을 극심한 고통 가운데 지내시게 되었는데 고통이 심해 침대에서 떼굴떼굴 구르실 때마다 쉬지 않고 성경구절을 암송하시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셨다.

의학적으로 볼 때 이 장로님이 주님께로 가실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생각되던 어느 날 필자는 이 장로님께 특별한 부탁을 드렸다.

“장로님, 송구스럽지만 이제 이 세상에서는 다시 못 뵐 것 같은데 지금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겠습니까?”

침상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시지 못하시던 이 장로님은 잠시 몸을 추스르시고 앉으신 후 필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는 폭포수와 같은 뜨거운 기도로써 필자를 축복해주셨다. 그리고 며칠 후 주님의 품에 안기셨다.

이년 전 평소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내오고 있는 선배 교수의 부친께서 필자가 근무하는 가천의대길병원에 입원하셨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선배이시기도 하고 또 같은 믿음을 소유하였기에 가족들끼리도 매우 가깝게 교류하고 있는 가정이라 그 부친의 상황도 잘 알고 있었는데 입원하셨다니 일순간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특히 그 부친께서 당시 99세이셨음에도 아직까지 구원을 받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오래 전부터 그 부친의 영혼구원을 위해 매일 기도해오고 있던 터라 약간은 부담을 느끼며 병실로 찾아뵈었다.

처음에는 여러 동료 크리스천 교수들과 함께 방문하여 잠시 쾌유를 위해 기도하고 나왔는데 막상 만나 뵙고 나니 마음에는 더 큰 부담이 되었다. 아마도 이번에는 회복되어 퇴원을 하지 못하실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서자 복음을 바로 전해야겠다는 중압감이 밀려왔다.

일과 후 병실로 다시 찾아뵈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말씀드렸는데 듣기는 들으시나 반응을 별로 하지 않으셨다. 특히 귀가 어두워 큰 소리로 말해도 잘 못 알아들으시기 때문에 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선배 교수의 말로는, 그 부친께서 신문을 읽으실 정도로 시력은 좋으시나 청력은 상당히 안 좋으신데 텔레비전을 보실 때 볼륨을 최대로 올리시기 때문에 이웃의 신고를 받고 파출소에서 나온 적도 있을 정도라 하였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칠판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말하고 쓰고 말하고 쓰고를 반복하는데 차츰 관심을 갖고 이해를 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 필자가 회진을 마치고 다시 방문을 하자 어느 날보다도 필자를 반갑게 맞이하셨다. 이번에는 한 시간 이상에 걸쳐 보다 구체적으로 구원의 길(Roman Road, 롬3:10,12,23; 5:12; 6:23상; 5:8; 6:23하; 10:9.10,13)을 칠판에 써서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시겠냐고 여쭤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끄떡이셨다. 다시 핵심 사항을 칠판에 적으면서 동의하고 믿으시는지 여쭤보았는데, 본인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인 사실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 문제를 다 해결해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이제는 믿으신다고 하시며 소리 내어 영접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며칠 후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우리는 태어난 이상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노년은 물론 장년이나 청년 심지어 어린이라도 언제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위에 열거된 임종의 주인공들처럼 구원받아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다 천국에 들어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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