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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호

목회자가 경험한 임종
  글·노대권 (가천의대 길병원 원목실 목사)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순서가 분명합니다. 할아버지 태어나시고 아버지 태어나시고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런데 세상을 떠날 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손주가 먼저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보다 아버지께서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늘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는 동안에 죽음을 잊고 살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영안실은 사람의 시선에서 뚝 떨어진 외진 곳에 있습니다. 뒷문, 지하실, 별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층이라는 표기는 거의 대부분의 병원에서 실종되었습니다. 죽음에 대해 언급하거나 생각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0여년의 병원 선교를 통하여 수많은 죽음을 볼 때 결코 죽음이라는 것은 애써 잊으려고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날마다 실감합니다. 그리고 많은 죽음들 가운데서도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늘 안타까움과 충격입니다. 그 분들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 라는 생각에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 분들이 추구하는 것도 결국은 지금보다 나은 삶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지금보다는 나은 삶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자살의 이유를 살펴보면 정상적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습니다만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환경, 처지, 심정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사람의 환경이나 처지를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강압적으로 주입시키려 합니다.

“정말 비겁한 짓이다.”

“어려움을 피하지 말고 정면 승부해야지.”

“목숨 끊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라.”

“다른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듯이 자살도 살인행위야. 지옥 갈 거야.”

“기도로 이겨내자.”

상대방의 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 혹은 사회 전반의 통념들을 주입시키려는 강요를 통하여 더 큰 좌절을 느끼게 합니다.

“Understand”라는 단어는 낮은 자리에서 상대를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때 그 사람의 상황이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듯한 위로를 받게 하여 마음 문이 열리고 살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올해 중반 경에 박 모 형제가 제초제 한 병을 다 마시고 병원에 실려왔습니다. 그의 형제들이 원목실에 찾아와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동생, 나이 40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노총각, 그 동생이 이러한 처지가 되었으니 형제로서의 자책과 동생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좌절이 꽉 차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에 심방을 갔더니 위 세척은 다했지만 며칠 못되어 사망한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다시 복음을 자세히 전하고 영접기도를 하고 가족들이 다 모인 가운데서 세례를 받고 박 모 형제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살을 시도한 지 5일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자살한 사람이 회개를 철저히 하고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세례까지 받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창 5:1) 사람이 자기를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범죄행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로서 귀하게 관리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행동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자살의 충동이 실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 옆에 나와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있습니다. 당사자는 좌절과 절망감에 점령당해 있으나 그 사람의 입장에서 관심과 사랑으로 어려운 문제를 경청하며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자살 충동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란 우리가 왔던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육신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음을 지키며 충성하다가 생명의 날이 마쳐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기를 거부하고 내 욕심대로 살다가 생명의 날이 마쳐지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며 살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 새로운 시작을 날마다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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