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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호

사랑에 정답이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글·이장선 (안산장애인교회 담임 목사)
‘울어라,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

여자 청년이 목양실로 들어와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목사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자매는 무슨 어려운 말인지 망설이다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자매의 얘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남자 청년이 있습니다. 이 형제는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몸을 꼬며 힘겹게 한 마디 한 마디를 하는 청년입니다. 걷는 것도 힘겹게 걸어야 하고, 말하는 것도 힘겹게 말해야 하고… 그런데 이 청년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형제가 자매를 사랑한다며 좀 지나친 행동들을 한다는 것입니다. 휴대폰 문자를 계속 보내고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계속 올리고 교회에서 만나면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그러나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는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 형제가 자매가 근무하는 학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학교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자매는 이야기를 하며 무척 속상해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나는 잘 압니다. 이 자매는 장애인 학교에서 근무할 뿐만 아니라 평소 장애인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라 이 자매의 속상함은 단지 자신에게 해를 입혔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요.

‘내가 한 번 만나 볼게요.’
나도 속상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속상함은 곧 형제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형제의 자매에 대한 지나친 행동과 언행은 비단 이 자매 한 사람에게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교회 여자 청년들은 아마도 한두 번쯤 다 겪은 것 같습니다. 알게 모르게 제 귀에 들려진 이야기가 많거든요. 나는 이미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동안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있었지요.
형제가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랑하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하고 싶으니까…!’
나는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교회에서 15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지난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들이 겪는 원초적인 아픔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것은 사랑, 결혼이었습니다.

‘사랑하고 싶어요. 저도 결혼하고 싶어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말입니다. 하지만 이 바람은 말 그대로 소망입니다. 홀로 사랑일 때가 많았습니다. 혼자 사랑하고 혼자 가슴앓이 하고 혼자 괴로워하고 혼자 상처 받고… 이는 제가 시무한 교회에서만 겪은 일이 아닙니다. 청년 장애인들이 있는 교회는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경우의 일들이 제법 일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는 그 형제를 불렀습니다. 제 방에 들어온 형제는 이미 왜 자신이 목양 실에 왔는지를 알고 있는 듯합니다.

‘왜 내가 불렀는지 알아?’
어렵게 온 몸을 비틀며 대답을 합니다.

‘…예…!’
형제는 서러웠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어라,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

‘어엉-’
형제는 이 말을 기다렸는지, 속마음이 실린 거친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울어, 소리 내서 울어, 네 가슴이 시원해질 때까지 울어…’
형제는 울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더군요. 시간이 좀 지나자 그의 울음소리는 황소만 해졌습니다.

‘…어엉, 어엉…’
나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실컷 울어서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덩어리들이 눈물에 쓸려 쏟아져 내릴 때까지 가만히 있었습니다. 형제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턱 밑으로 방울이 되어 떨어졌습니다. 스스로 눈물을 닦기에도 불편한 손놀림으로 어렵게 어렵게 눈물을 닦으며 형제는 그렇게도 서러운 눈물을 흘려댔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나는 네모진 휴지를 들고 그의 옆에 앉았습니다. 눈물을 닦아 주고 콧물을 닦아 주며 이번엔 말을 했습니다.

‘그만해. 약속할 수 있지? 무엇을 약속해야 하는지 알지?’

‘-예…’
나는 얼굴의 눈물을 닦아 주고 그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형제의 손은 따뜻했습니다.

비단 손만 따뜻하겠습니까? 사랑하고 싶은 그의 마음도 따뜻하지 않겠습니까? 살아 있는데… 겉은 똑바로 걷지도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지만 그 마음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어느 마음인들 사랑하고픈 사랑받고픈 설레는 감정이 다를 수 있겠습니까?
나는 기도해 주었습니다.

‘이제 나가 봐…’
형제는 목양실 문을 열고 제 길을 갔습니다.

줄리엣: 왜 당신을 불렀는지 잊어먹고 말았어요.
로미오: 그럼 생각날 때까지 여기에 있겠소.
줄리엣: 그럼 잊은 채로 있겠어요.언제까지나 계시도록 함께 있는 기쁨만을 상기하면서
로미오: 언제까지나 이대로 있겠소. 언제까지나 잊고 있도록.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잊고…


로미오와 줄리엣 2막 2장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사랑은 이런 것일 것입니다.
반 다이크 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느리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빠르고, 슬픈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길고, 즐거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짧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멈추어 버린다.’

사랑은 서로 함께 있을 때 시간의 흐름조차 허락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2막 2장엔 이런 대사도 있습니다.

'He jests at scars that never felt a wound.'

'사람의 상처를 비웃는 것은 사랑의 아픔을 느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랑은 맹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유를 달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기에 그 이유마저도 잊어 버려서지요.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듣기 좋은 단어들을 늘어놓은 조작된 문장 속에서 화려하게 장식되어 정의 내려지는 것, 이것이 사랑인가요?

삶의 자리에서는 꼭 이렇지 않은 사랑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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