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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호

어른 아이
  글·최원현 (수필가. 문학평론가. 사)한국학술문화정보협회 부이사장. 사)한국문인협회 이사. 청운교회 )
거울을 본다. 한 남자의 얼굴이 낯설다. 그런데 낯설다고 생각한 순간 묘한 기분이 든다. 낯설어서는 안 되는 얼굴이라고 내 안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그건 내 얼굴이다. 한데 왜 낯설어 보였을까.
사진을 찍어보면 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모습의 나를 본다. 녹음되어 있는 내 목소리를 들어보면 전혀 내 목소리 같지 않다. 인사를 받기보다는 하는 쪽의 나, 늘 나는 아직 어린 나를 생각하곤 하는데 요즘 사진 속의 모습은 전혀 그런 어린 내가 아니다. 어느새 세월의 때가 많이 끼어있다.

반면 목소리는 어른스러울 거로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가늘고 여리다. 위엄 넘치는 굵고 두툼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럽다. 그래서 나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다시 본다. 아직은 나이에 비해 조금은 젊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그건 머리 탓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인자, 할아버진 여든 일곱에 돌아가셨지만 흰 머리카락 하나 없으셨다. 그걸 내가 받았나 보다. 나도 아직까진 흰 머리카락 하나 없다. 그래서 아내는 어쩌다 내 머리에서 새치라도 하나 발견하면 뽑질 못하게 한다. 괜히 자신만 늙어가는 것 같아 억울한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내가 나이보다 조금은 젊게 보이는 것은 순전히 검은 머리카락 때문인 것이 맞는 것 같다.

나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통화를 한 후 나중에 만나거나 내 나이를 알게 되면 목소리가 젊다고들 한다. 전혀 그 나이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나이에 이르지 못한 모습과 목소리란 말이 된다. 그렇다면 어찌 그게 모습과 목소리만이겠는가. 속에 든 것도,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그렇지 않겠는가 싶다.
나이가 들면 철도 드는 법인데 나는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제대로 철이 든다는 걸까. 나는 아무래도 죽는 날까지도 제대로 철든 사람 노릇을 못해볼 듯싶다. 웬만하면 이만큼에서는 어른스러워질 만도 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내가 생각을 해 보아도 나는 철이 덜 든 아이만 같으니 걱정이다.

그런 내 모습을 어떤 이는 맑다, 순수하다 라고 보아주기도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넌 언제나 철이 들래? 이 불쌍한 인간아 나이 값이나 좀 해라, 이젠 제발 그만 철 좀 들거라 하는 것 같아 부끄러울 때도 있다.

그런 철딱서니 없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고 여전히 그런 아이 같은 마음인 것 같기도 하여 스스로도 ‘어른 애’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이마에 주름살이 있는 아이처럼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은 그 ‘아이’라는 말이 크게 거슬리거나 싫지가 않다. 어쩌면 그게 나름의 위안이 되는 것 같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참 잘 운다. 슬픈 일, 안타까운 일 같은 데 흘리는 게 아니라 별 것도 아닌 아주 자잘한 감동스런 얘기들에 곧잘 흘린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 꼭 눈물을 흘림직한 일엔 말짱하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얘기거나 심지어 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 같은 데서도 곧잘 눈물을 훔친다. 너무 심하다 싶을 만큼 그런 데선 눈물이 헤프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다가도 눈물을 흘린다. 말하자면 감성이 지나쳐서 오히려 모자라고 부실한 것 같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있게 하는 힘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야단치고도 삼일은 마음을 앓고 누군가와 마음이 틀려도 그게 되돌아오고 풀리기까지 안절부절 못 한다. 일종의 소심증일 수도 있겠다.

자화상, 내 모습을 그려본다. 특징도 없고 그렇다고 모난 곳도 없다. 너무나 평범하고 평범한 나, 그런 나로 이만큼 살아왔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단 한 군데도 고친 곳이 없는 내 모습 그대로다. 여기에 더 세월이 가면 주름살이 더 굵어지고 늘어날 것이며, 쪼그라지거나 왜소해질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어른 아이’는 벗어날 것 같지 않다.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남의 앞에 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사랑한다. 그게 나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더 이런 모습을 지켜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아이 같은 마음이 내겐 위안이 되고 그런 내 마음을 나이와 상관없이 보아 주었으면 싶다. 나이 들지 않는 피터 팬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게 나를 지켜주는 순수라 생각되어져서이다. 그런 나로 그냥 살고 싶은 것이다. 아직도 아이 같은 어른아이, 내게 딱 맞는 말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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