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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호

왕소똥구리와 쇠똥 떡
  글·조임생 (동화작가. 시인)
여름해가 설핏 기울자 산 그리메가 허리를 길게 펴기 시작했어요. 언덕에 드러누워 질겅질겅 되새김질을 하던 얼룩배기 황소는 농부 아저씨가 고삐를 끌자 순순히 무거운 몸을 일으켰어요. 길섶에 주먹보다 큰 쇠똥을 툭툭 떨구면서 얼룩배기는 아저씨를 따라 언덕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지요.

바람은 재빨리 쇠똥 냄새를 싣고 어디론가 달려갔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피유웅, 한 쌍의 왕소똥구리 부부가 총알처럼 날아왔지요.

“와, 이건 아주 신선한 걸?”

“향기가 그만이에요.”

풀잎에 엎드려 왕소똥구리의 이야기를 듣던 풀무치는 그만 이맛살을 찡그렸어요. 똥이나 먹고 사는 더러운 족속과는 곁에 있기도 싫었어요.

“쯧쯧, 불쌍하기도 하지. 우리는 풀잎의 이슬만 먹고 사는데.”

풀무치는 머리를 한번 흔들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덕 위로 슈웅 날아갔어요.

“흥. 깨끗한 척 뽐내는 마음이 더 더럽지.”

왕소똥구리 부부는 코웃음을 쳤어요.

“당신은 어서 망을 보세요.”

엄마 왕소똥구리는 재빨리 떡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빠 왕소똥구리는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휘휘 살펴보았어요. 검은 철갑옷이 햇살에  유리알처럼 번쩍 거렸어요.

엄마 왕소똥구리는 해가 지기 전 일을 끝내려고 부지런히 손을 놀렸어요. 아기가 먹고 자랄 쇠똥 떡이라 아주 큰 떡을 만들 작정이었어요. 끈적끈적한 쇠똥을 잘라 먼저 작은 떡을 만든 후 그 위에 쇠똥을 자꾸 덧입혀 나갔어요.

‘우리 아기가 먹을 떡인데.’

부지런히 쇠똥을 잘라내는 엄마 왕소똥구리의 얼굴에 땀이 번들거렸어요. 이제 두달이 채 못돼 태어날 아기 생각을 하면 눈물이 번지도록 감격스럽기만 했어요. 쇠똥이 한없이 고맙고 감사했어요.

큰 떡은 해가 산마루에 기울 무렵에야 간신히  만들어졌어요.

“영차 영차!”

왕소똥구리 부부는 쇠똥으로 만든 떡을 굴려가기 시작했어요. 거꾸로 서서 뒷발로 쇠똥을 끙끙 밀고 가는 모습을 본 풀벌레들은 킥킥 웃음을 참지 못했어요.

“웃지들 마!”

방아깨비 할아버지가 호통을 치셨어요.

“왕소똥구리가 고마운 줄이나 알라구… 너희들 중 누가 저 쇠똥을 치우라면 치울 수 있겠어?”

그러자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모양 입을 다물었어요. 

“좀 도와드릴까요?”

베짱이 아저씨가 쇠똥 떡을 미느라 끙끙거리는 왕소똥구리 부부에게 다가갔어요.

“괜찮습니다. 우리 힘만으로도 충분히 해 낼 수 있답니다.”

왕소똥구리 부부는 점잖게 사양했어요. 영차영차 쇠똥 떡은 어느새 언덕을 저만큼 넘고 있었어요.

“아쿠!”

큰일이 났어요. 내리막길에서 돌부리를 피해 굴린다는 게 그만 쇠똥 떡을 놓쳐버린 거예요.

‘데굴데굴 덱데구르르’

쇠똥 떡은 구슬처럼 신나게 굴러 내려갔어요. 까만 쇠똥 떡에 흙고물이 잔뜩 묻었어요.

“저런, 깨질라.”

아빠 왕소똥구리는 재빨리 날아가 쇠똥 떡을 두 손으로 받쳤어요. 가속도가 붙어 데굴데굴 잘도 구르던 쇠똥 떡은 아빠 왕소똥구리의 몸을 밀쳐내고 개미굴 입구에 턱하니 걸렸어요.

 “쿠쿵!”
지진이 일어났나? 깜짝 놀란 개미들이 허둥지둥 굴 입구로 몰려나왔어요.

“아, 여러분. 대단히 미안합니다.”

아빠 왕소똥구리는 얼굴이 벌개져서 화난 표정으로 바라보는 개미들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했어요.

“휴우.”

왕소똥구리 부부는 다시 쇠똥 떡을 밀고 가기 시작했어요. 땀이 온몸에 범벅이 됐어요. 자랑스러운 철갑옷도 흙먼지 투성이가 되고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누군가 앞을 가로막았어요.

방해자는 가슴이 떡 벌어진 무너미 왕소똥구리였어요. 방해자의 얼굴을 본 엄마 왕소똥구리는 가슴이 철렁했어요. 방해자는 남의 쇠똥 떡을 가로채기로 유명한 외눈박이 왕소똥구리로 성질이 무척 사나웠어요.

아빠 왕소똥구리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어요. 이 쇠똥 떡은 장차 태어날 아기를 위한 양식인데. 절대로 양보할 수가 없었어요. 두 왕소똥구리는 한참이나 서로 노려보고 있었어요. 둘 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죠.

드디어 싸움이 벌어졌어요. 두 왕소똥구리는 서로 치고 받다가 나중엔 뒤엉켜서 엎치락 뒤치락하기 시작했어요.
무너미 왕소똥구리는 정말 힘이 세었어요. 하지만 아빠 왕소똥구리도 만만치 않았어요.

‘이건 우리 아기 거야. 내 목숨과도 바꾸지 않을 거야.’

엄마 왕소똥구리도 가만있지 않았어요.

‘그래, 우리 아기가 먹을 음식을 빼앗길 순 없어.’

엄마 왕소똥구리도 있는 힘을 다해 무너미 왕소똥구리를 공격했어요. 무너미 왕소똥구리는 부부의 공격 앞에 그만 두 손을 들고 항복하고 말았어요. 실컷 두들겨 맞고선 비틀비틀 어둠이 가라앉는 풀숲 사이로 사라져 버렸어요.

소똥구리 부부는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큰일 났군. 어두워지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하는데.”

벌써 어둠이 깔리고 있었어요. 풀숲에서 풀벌레들이 합창을 하기 시작했어요.

땀에 범벅이 된 채 왕소똥구리 부부는 간신히 굴 입구에 다다랐어요. 마지막 힘을 다해 쇠똥 떡을 굴속으로 밀어 넣은 후 엄마 왕소똥구리는 쇠똥 떡 속에 소중한 알을 낳았어요.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태어나 자라야 할 아기 왕소똥구리가 가여워 또 눈물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았어요.

‘아가야. 이젠 너 혼자 태어나 너 혼자 살아가야 한단다. 부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다오.’

엄마 왕소똥구리는 아기를 위해 간절히 빌었어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굴 입구를 단단히 봉한 왕소똥구리 부부는 날개를 펴고 서쪽 하늘로 슈웅 날아올랐어요. 소중한 알이 있는 굴 쪽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뒤돌아보면서요.

복숭앗빛 노을이 하늘을 온통 물들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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