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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호

난파선
  글·조임생 (동화작가. 시인. 여의도순복음교회 )

남쪽나라 파아란 바다 속에 커다란 섬이 하나 있었다. 이 섬은 바닷물 속 깊이 잠겨있었는데 물고기들의 천국으로 불렸다.
섬은  화려한 산호초 숲이 우거져 몹시 아름다웠다. 다시마와 미역과 말미잘도 곳곳에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어 물고기들이 하루 종일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면서 실어오는 먹이도 풍성해서 그야말로 바다 속의 낙원으로 손색이 없었다.
소문을 듣고 많은 고기들이 이 섬으로 이주해 왔다. 저녁노을이 바닷물을 빨갛게 물들이던 어느 날,
이 평화로운 섬에 은빛 상어 한마리가 나타났다. 이 상어는 흰 톱날이란 별명을 가진 아주 사나운 상어였다. 흰 톱날은 맨 처음 섬을 한 바퀴 비잉 돌았다. 그 검은 그림자는 주민들을 오싹 몸서리나게 했다.
“너희들은 들어라.”
흰 톱날의 목소리는 천둥을 치는 것 같았다.
“나는 바다 속의 황제이다. 그러므로 이 섬도 내 영토의 한 부분이다. 나는 지금까지 손수 먹이를 찾아 다녔지만 그것은 바로 왕의 체통에 먹칠하는 일임을 알게 됐다. 이건 순전히 너희들이 그동안 왕을 받들어야 할 의무를 게을리 한 탓이다.
내 영토 안에서 지금까지 편안하게 살아 온 너희들은 이제부터라도 나를 잘 섬기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왕을 무시한 죄를 물어 나는 이 섬을 바다 속의 쓰레기더미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고기들은 벌벌 떨었다.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이장인 나비가오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흐음, 그건 아주 쉬운 일이다. 이틀에 한 번씩 나를 위해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면 된다.”
“식사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흰 톱날은 시뻘건 입을 쩍 벌리며 입맛을 다셨다. 톱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소름을 끼치게 했다.
“멀리 갈 것 없다. 내 음식은 이곳에 널려 있으니까.”
“네?”
“너희들 모두가 내 음식이란 말이다. 그러나 너희는 사랑하는 내 백성들이다. 결코 함부로 잡아먹진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규칙을 정하고 스스로 그 규칙을 잘 지키려고 한다.
나는 하루에 한번 식사를 하는데 그 양을 잘 받아 적도록 하라.”
서기인 망둥어가 얼른 미역 잎을 따서 떨리는 손으로 메모를 시작했다.

<왕에게 필요한 하루치의 식량>

1. 5킬로짜리 방어 10마리.
2. 2킬로짜리 참치 10마리
3. 1킬로짜리 연어 10마리
4. 사람들의 엄지 손가락만한 대하 20마리
5. 후식으로 전복 5마리

“이상이다. 이 음식들을 하루에 한 번씩 밀물이 들기 전 내 앞에 대령하도록 하라. 내일부터 당장 시행하도록. 알겠느냐?”
섬의 주민들은 공포로 온 몸이 후둘후둘 떨렸다.
성격이 사납고 거친데다 무서운 힘을 가진 흰 톱날이다. 낙원의 평화는 이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특히 상어의 음식으로 지목된 방어와 참치, 연어와 대하 그리고 전복은 공포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큰일 났다. 이 일을 어쩌면 좋지?”
방어들은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고 참치들은 눈물만 흘렸다.
섬의 주민들은 흰 톱날의 음식으로 지목된 이들을 동정했다. 한편으론 자기들이 지목되지 않은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는 표정이기도 했다.
그때 청년 연어가 단상으로 나갔다. 청년 연어는 섬의 수비 대장이었다.
“여러분, 여러분이 흰 톱날의 음식으로 지목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사할 거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우리를 다 먹어치우면 다음엔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우리는 흰 톱날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불의 앞에 굴복하지 맙시다!”
“무슨 수로 저 무서운 흰 톱날과 싸운단 말입니까?”
곰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했습니다. 무엇보다 뭉쳐야 삽니다. 여러분, 좋은 의견을 말해 주십시오.”
우우우 밀물 드는 소리가 났다. 수압이 느껴지면서 미역 숲이 심하게 흔들렸다. 연산호초가 폴립을 내밀었다. 연산호초 무리는 연분홍의 벚꽃가지가 잔뜩 휘늘어진 것처럼 고왔다. 하지만 아무도 산호의 모습을 눈여겨 볼 정신이 아니었다.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자 청년 연어는 더욱 목청을 높였다.
“당장 내일부터 시행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말씀들을 좀 하세요!”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소? 안됐지만 흰 톱날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맞아, 자칫하다가는 이 섬 자체가 황폐해지고 말거야.”
대머리 문어의 말에 다른 주민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간이 가다보면 좋은 방법이 있을 거요.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돌아들 갑시다.”
문어가 일어서자 다들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저런 의리 없는 녀석들!”
이제 흰 톱날의 음식으로 지목된 물고기들만 남았다.
“처얼썩 처얼썩“
파도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렸다. 전에는 잘 들리지 않던 소리가 오늘은 온통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청년 연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 수 없군요. 누가 희생양이 될지 제비를 뽑을 수밖에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청년 연어는 기다란 다시마 잎을 한 아름 잘라왔다. 그 잎을 주민들의 숫자만큼 네모지게 자른 다음 필요한 숫자의 앞면을 잘 표시나지 않게 긁었다. 그것들을 모조리 엎어놓은 뒤 방어네 식구부터 나오게 했다. 모두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잘라진 다시마 잎을 집었다.
“앞면에 긁힌 자국이 있나 봐 주십시오.”
그러자 여기저기서 왁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난 죽기 싫어!”
은빛방어가 발버둥을 치며 울었다.
“안돼! 이 애를 죽게 할 순 없어. 차라리 내가 죽을 거야.”
은빛 방어의 늙은 어머니가 몸부림을 쳤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섬을 온통 뒤흔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주민들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이장인 나비가오리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년 연어의 말이 옳습니다. 흰 톱날은 결국 힘들이지 않고 우리 모두를 차례로 먹어치울 심산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먼저 먹히고 나중 먹히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이럴 바엔 모험을 해 봅시다.”
“무슨 말씀입니까?”
은빛 갈치가 물었다.
나비가오리는 또 한 번 날개를 크게 펄럭였다.
“나는 이 섬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이 섬은 사실은…… 섬이 아닙니다.”
“섬이 아니라니요?”
“난파선입니다.”
“난파선? 항해도중 침몰한 배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설마,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
“나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따라 이 섬의 맨 밑바닥에 들어가 본 적이 있지요. 그곳은 캄캄한 어둠의 나라였습니다.”
주민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비가오리를 쳐다보았다.
“어휴, 답답해. 섬이든 난파선이든 그게 무슨 문제예요? 흰 톱날이 문제지…….”
작은 쥐치가 제 입보다 더 뾰족하게 쏘아붙였다.
“자, 생각해 보세요. 배는 튼튼한 철로 만들어졌습니다. 수십 년간 물속에 잠겨있었지만 아직도 튼튼합니다. 흰 톱날이 감히 부서뜨리진 못할 겁니다. 자, 우리 모두 청년 연어에게로 갑시다.”
나비가오리와 함께 섬 주민들은 흰 이빨의 음식으로 지목된 주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엔 불안과 절망과 공포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나비가오리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청년 연어에게 다가갔다.
나비가오리의 설명을 들은 청년 연어는 눈을 크게 떴다.
“난파선이라구요?”
“그렇다네. 배의 밑바닥인 어둠의 나라는 우리 모두를 충분히 숨겨 줄 거야.”
“좋습니다. 그럼 어디 한번 같이 가보실까요?”
섬의 주민들은 모두 나비가오리를 따라갔다. 우거진 미역과 다시마 숲을 지나 마침내 어둠이 깔린 섬의 뿌리에 닿았다.
“여기쯤에서 출구를 찾아보시오!”
나비가오리의 말에 따라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반쯤 모래더미에 묻힌 출구가 나타났다. 그러나 출구를 들여다 본 주민들은 오싹 몸서리를 쳤다. 먹물처럼 새까만 어둠의 나라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흰 톱날은 눈에 드러나는 공포인데, 이 어둠은 드러나지 않는 공포이군 그래.”
“맞아. 저 캄캄한 어둠 속에 흰 톱날 보다 더 무서운 괴물이 숨어있을지도 몰라.”
청년 연어는 기가 막혔다. 이제 밤이 지나면 꼼짝없이 흰 톱날에게 당할 판인데 상상속의 괴물까지 만들어내는 주민들이 딱하기만 했다.
“좋습니다. 저 혼자 어둠의 나라를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제게 아무 일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어둠의 나라를 피난처로 삼아 흰 톱날과 대항해야 할 것입니다.”
청년 연어는 혼자 어둠의 나라로 들어갔다. 깊은 적막이 청년 연어를 삼킬 듯이 덮쳐왔다. 마음속으로 무서운 생각들이 가시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이 섬이 난파선이라면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이 배안을 떠돌고 있을 거야.
쭈뼛, 지느러미가 곤두서고 온몸이 굳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다. 내 생각이 공포를 만드는 거야.
청년연어는 눈을 부릅뜨고 어둠을 누볐다. 어둠의 나라는 무척 크고 넓었다.
한편, 출구 앞에 모인 주민들은 시간이 지나도 청년 연어가 돌아오지 않자 웅성대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 난파선을 떠나 먼 곳으로 떠나자고 했다.
나비가오리는 이제 어떡하면 좋을지 몰라 한숨을 쉬었다. 그저 간절히 청년 연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아, 그렇지!’
“여러분, 소리를 크게 지르십시오. 어둠속에선 소리를 등대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주민들은 왁!왁! 소리를 질러댔다. 드디어 청년 연어가 출구를 빠져나왔다.
“와아!”
모두들 환성을 질렀다.
청년연어가 말했다.
“여러분, 이 어둠의 나라는 그 품이 넓어 우리 모두를 숨겨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은 공포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어둠을 조금이라도 밝혀줄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저어…….”
배불뚝이 복어가 나섰다.
“남쪽 해안에 사는 제 친구 중에 초롱아귀란 친구가 있는데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친구인 주둥치도 빛을 내는 걸 봤습니다.”
모두들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였다.
복어는 그 기대감을 등에 지고 친구인 초롱아귀에게 도움을 구하러 떠났다. 벌써 희부옇게 물빛이 밝아오고 있었다.
모두들 복어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렸다.
“자,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집으로들 가서 피난 준비를 하고 오세요. 이제 밀물이 들 시간도 머지않았습니다. 밀물이 들기 전 흰 톱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자 다들 우우 흩어져 집으로 갔다. 청년 연어는 나비가오리와 함께 복어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아. 저기 옵니다. 그런데 한 무리를 지어 오네요! 얏호!”
청년 연어가 소리를 질렀다.
배불뚝이 복어를 따라 수십 마리의 발광어들이 난파선의 뿌리로 다가왔다.
집으로 갔던 주민들도 꼬마들을 데리고 혹은 알을 입에 물고 속속 모여 들었다. 발광어들이 어둠의 나라에 힘껏 빛을 뿌렸다. 그러나 워낙 어둠이 깊어 희미하게 앞을 분간할 정도였다. 그때 천둥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흰 톱날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꽈르릉, 쾅쾅!”
먹이를 대령하기는커녕 고기들이 모두 사라지자 흰 톱날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는 닥치는 대로 섬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철로 만든 섬이 여간 단단한 게 아니었다. 그럴수록 흰 톱날은 길길이 날뛰었다.
‘불쌍한 산호초들…….’
그 찬란한 꽃밭이 형편없이 망가져 버릴 걸 생각하니 모두들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애써 만든 보금자리도 쑥대밭이 될 게 뻔했다.
“콰릉, 콰당탕!”
우레 치는 소리는 밤낮 사흘간이나 계속됐다. 정말 이러다간 배가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다들 얼굴이 하얘졌다. 나흘째 되던 아침, 드디어 소동이 가라앉았다. 청년 연어는 동정을 살피러 살그머니 배 위로 올라갔다. 혹시 들킬까 미역 잎을 온몸에 둘둘 감았다.
“아!”
온통 피였다. 산호보다 더 붉은 핏물이 배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었다.
제 분에 못 이겨 날뛰다 죽은 흰 톱날의 커다란 시체가 둥둥 배처럼 떠 있었다. 청년 연어는 잠시 눈을 감았다.
배위는 난장판이었다. 그 아름다운 섬의 모습은 간 데 없고 부러진 철판이 나무토막처럼 흩어져 있었다. 산호초는 모조리 부러지고 뽑혀 처참하기만 했다. 다시마숲과 미역숲도 엉망이 됐다.
청년 연어는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언제 따라왔는지 나비 가오리가 커다란 날개로 청년 연어를 감싸 안았다.
“슬퍼하지 말게. 우린 이겼어!”
“네, 우린 다시 시작 할 수 있어요. 이 난파선은 다시 낙원이 될 거예요!”
청년 연어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우우우 수압이 느껴지면서 밀물 드는 소리가 요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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