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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호

사막에서 피운 꽃
  글·최원현 (수필가.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사)한국수필가협회 연수원장. 청운교회 )
LA국제공항에 발을 내렸다.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의 물결, 무려 세 시간여를 기다려서야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가니 K회장이 먼저 나를 발견하곤 달려온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기다려 주고 12시간을 날아간 곳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제24회 해변문학제가 열리는 캘리포니아 남단 벤츄라 해변은 햇빛도 강하지 않은데다 바람까지 불어 짐짓 차가움을 느낄만 했다. 각지에서 세 시간에서 네 시간을 프리웨이를 달려왔다는 문인들이 오랜만의 만남과 정겨움을 진한 포옹으로 나누는가 하면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행사는 9시 30분에 시작이 되었다. 한국에서 강사로 초청된 문정희 시인과 나를 중심으로 먼저 장르별 문학토론이 열렸다. 야자수 그늘 밑에서 펼치는 문학이야기는 운치도 있고 의미도 있었다. 바베큐 파티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세라톤 호텔로 이동하여 본격 문학제의 문학강연이 열렸다. 라디오서울이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가운데 시낭송과 합창과 인터뷰가 진행되고 문정희 시인은 <문학의 도끼로 삶을 깨워라>, 나는 <소셜 커뮤니티 시대의 수필쓰기>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30년 이상을 이국 땅에서 삶과 문학을 함께 해온 사람들이며 더러는 새롭게 문학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었다. 모국을 떠나 살면서 낯선 타국에서 모국어를 지키며 문학을 하는 사람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이 전해져와 마음이 착잡해졌다. 내 나라에서 내 말과 글로 아무런 불편 없이 살던 내가 저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절실하고 깊이 있는 문학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사람마다 열정과 갈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들은 갈증도 잠재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우선 먹고 사는 게 급했고 가족을 돌봐야 하는 현실 앞에선 열정도 목마름도 후순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끝내 버릴 수 없었던 바람과 미련으로 잠재되어 있던 열정과 갈증을 끌어낸 그들이었다. 백일장 시상, 오랜만의 김치찌개 파티 등으로 그렇게 첫날의 행사가 막을 내렸다. 다음은 2박3일로 펼쳐지는 문학캠프였다.

쉬지 않고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일곱 시간이나 달려가서 이른 곳에서 다시 피우는 문학의 꽃이다. 모하비 사막을 건너 350마일을 지나야 만나는 곳, 한 여름을 달리며 만년설을 즐기는 맛은 유달랐다. 사막이라는 인식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아무것도 살 수 없다는 곳이었는데 사막엔 작은 꽃들이 피어 있었고 나름의 생명력을 갖춘 식물들이 독특한 생명 법으로 살아가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고 보면 사람이나 식물도 살아남기 위한 방법,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같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지금 문학이란 이름으로 달려가고 있는 저들 또한 이민이란 사막과 같은 삶터에서 살아남기를 감행하여 성공한 사람들이며 그들의 삶 속에서 이뤄낸 문학은 사막에서 피워낸 참으로 장하고 아름다운 꽃이 아닌가. 슬픔과 아픔과 절망까지 거름으로 하여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티우고 잎을 내며 자라 피워낸 거룩할 만큼 아름다운 꽃들인 것이다.

차창으로 스쳐가는 풍경들을 보면서도 내내 그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저들에게 문학은 뭣이었을까. 먹고 사는 것 이상으로 느껴지던 갈증, 그 갈증을 참고 견뎌낸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반직선, 그들은 비로소 삶의 맛을, 살아있음의 감격과 감사를 가슴에서 넘쳐나는 표현으로 나누게 된 것이다. 그들의 메마른 가슴에서 이만한 물줄이 터지고 생명의 꽃이 피기까지 그 아픔과 슬픔은 오죽 했겠으며 비로소 일손을 놓고 펜을 잡은 그들의 손은 또 얼마나 떨렸으랴. 그런 그들이 피워낸 꽃의 아름다움은 어느 꽃에서보다 더 진하고 더 멀리 가는 향기일 것이다.

이윽고 도착한 캘리포니아 북단의 맘모스 레이크(Mammoth Lake)엔 한국에선 맛볼 수 없는 맑은 공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차로 이동하여 곤도라를 타고 산의 정상엘 올랐다. 휘트니스 마운틴을 마주하며 3천미터가 넘는 맘모스 마운틴 정상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겉의 눈만 녹을 뿐 속의 눈은 녹을 수 없는 만년설을 발로 밟아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이 눈들이 녹아 이루었다는 스물여덟 개나 된다는 거대한 호수를 생각했다. 이 위대한 자연의 힘 앞에 나는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가. 그런데도 무엇이 어디가 그렇게 크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첫날은 시의 캠프, 둘째 날은 수필의 캠프로 밤늦도록까지 이어진 문학의 열정은 오랜만에 맘껏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삼일 째 되는 날 다시 되돌아가기를 했다. 가는 길에 모노레일과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들러 가기로 했다.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문학의 재료가 될 텐데 하나라도 더 보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선한 욕심들이 더욱 길고 바쁜 갈 길을 만들었다.

하나님께선 왜 미국에 이토록 큰 축복을 주신 걸까. 부럽고 부러웠다. 예측도 안 될 수많은 자원, 저 사막엔 또 얼마나 많은 양의 우리의 미래를 살게 할 자원들이 숨겨져 있을까. 그런가 하면 보이는 것만으로도 세계인들을 끌어 모으는 천연의 아름다운 경관,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드는 크고 놀라운 창조주의 솜씨를 보면서 가난한 나라 가난한 백성으로 살아온 우리나라를 생각했다. 어디서건 어떤 형태로건 결코 신의 사랑을 입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아닌가.

그렇고 보면 20년, 30년, 40년, 낯설고 물 설은 땅에서 거칠어진 손으로 살아왔던 저들 삶의 날들이야말로 광야요 사막이 아녔을까. 그 삶의 사막에서 피워 낸 오늘이란 삶이야말로 사막에서 피운 꽃이요 거기에 다시 문학의 꿈을 펼쳐 낸 저들이니 한 나무에서 두 가지의 꽃을 피운 것이 아닌가.

돌아오는 길, 그러나 사막은 갈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펼쳐진 선들도 날카로움이 아니었다. 주관적인 생각으로만 사막을 바라보던 나의 눈에 비로소 삶의 동반자로 삶의 터전으로 그리고 더 많은 날의 삶을 살아야 할 미개척지로 그들이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나는 오늘 사막에서 핀 두 종류의 꽃을 본다. 하나는 삶의 역경을 이겨낸 결과의 삶터라는 꽃이요, 그 삶터 위에 피워낸 문학이란 꽃이다. 하나도 이루어내기 어려운 현실을 넘어 두 가지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저들의 용기와 지혜와 열정과 갈증이 사막에서 피운 꽃의 향기로 가슴 뭉클하게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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