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건강과 생명
과월호 보기
특집
건생주치의
건생가이드
건생캠페인
건강한 사람들
신앙클리닉
시론
문학
2011년 5월호

솔뫼봉의 사슴가족
  글·조임생 (동화작가. 시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솔뫼봉에 지독한 봄가뭄이 들었습니다. 구불텅한 한줄기 외로운 등산로에 하얀 먼지가 푸스스 일고 있습니다. 솔 숲 자욱한 등성이의 초록빛도 이제 그만 맥이 풀렸나 봅니다. 막 터져 나오던 꽃망울들이 힘겹게 목마름을 견디고 있습니다.

숲속의 동물들은 계곡의 물을 마시기 위해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헉헉 마른 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다래 넝쿨 속 사슴네 동굴엔 올 봄 새 식구가 태어났습니다. 뒤뚱거리며 일어서는 아기를 보며 엄마 아빠 사슴은 함박 미소를 짓다가 금방 어두운 얼굴이 되고 맙니다. 아기를 데리고 먼 계곡의 물을 마시러 갈 일이 걱정스럽습니다.

“그래도 물을 마실 곳은 거기 밖에 없어요.”

엄마 사슴은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쳐다봅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갠 하늘에 햇빛이 쨍하니 부서집니다.

‘후우”

엄마 사슴은 한숨을 쉽니다.

아침 일찍 세 식구는 계곡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아기는 가파르고 먼 길을 용케 잘도 견뎌냅니다. 새순처럼 여린 발바닥이라 금방 피멍울이 맺힙니다. 하지만 아기는 보채거나 떼를 쓰지도 않아 엄마 아빠는 더 안쓰럽기만 합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지만 하늘은 여전히 쨍쨍하고 휴일의 등산로는 종일 하얀 먼지로 푸석거립니다. 등산객들은 가뭄에도 아랑곳없이 산을 찾아 왔습니다.

아기 사슴은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울긋불긋 등산복을 입은 사람 가까이 가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건 안 돼.”

엄마가 주의를 주었습니다.

“왜요?”

아기는 머루알 같은 눈으로 엄마를 빤히 쳐다봤습니다.

“사람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니까.”

엄마사슴은 등산로를 멍하니 바라보는 아기의 엉덩이를 떼밀어 바위 그늘 뒤에 숨겼습니다.

어느덧 산 그리메가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습니다. 산기슭에 곧장 먹물 같은 어둠이 번졌습니다.

높은 소나무 가지에 얼레빗 같은 달이 하나 걸렸습니다. 우우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게 무슨 냄새야?”

아빠 사슴이 갑자기 잠자다 말고 후다닥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 서슬에 엄마사슴과 엄마 곁에 누워 자던 아기 사슴도 잠을 깨었습니다.

“큰일 났어. 어서 밖으로 나와요!”

아빠의 목소리가 다급했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아니, 이게 무슨 냄새지?”

엄마사슴은 후딱 일어나 아기를 안았습니다. 휘이익, 한줄기 불안이 덮쳤습니다.

“산불이야. 산불!!”

굴속으로 들어 온 아빠의 목소리가 댓잎처럼 파르르 떨렸습니다.

“뭐라고요?”

정말 난리가 났습니다. 솔뫼산 한쪽 봉우리의 등산로를 중심으로 불길이 마구 번지고 있습니다.

“정말 큰일이군. 가뭄이 심한 데다 이렇게 바람까지 부니…….”

“이게 다 사람들 때문이에요. 지난번에도 하얀 불씨를 함부로 버려서 불이 났었잖아요?”

엄마 사슴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하얀 불씨가 뭐예요?’

아기도 뭔가 큰일이 일어났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가, 하얀 불씨는 사람들이 입에 물고 피우는 물건이란다. 사람들 중엔 그 하얀 불씨를 산에까지 물고 왔다가 휙 집어던지기도 해. 바람은 하얀 불씨의 끝에 매달린 빨간 색점을 아주 좋아해서 금방 구름처럼 부풀려 놓는단다.”

그러는 사이에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휘이익 불었습니다. 불길도 따라서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틀었습니다, 그러자 불은 사방으로 후루루 번져 나갔습니다.

“피난을 가야겠어. 바람이 이리저리 부는 게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

“그렇지만 집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이에요?”

엄마 사슴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습니다.

“여기 있으면 목숨이 위험해요. 자, 어서!”

아기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깜빡거렸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산불은 사정없이 번졌습니다. 숲을 흔드는 바람을 타고 불은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보이는 모든 것을 삼켜버렸습니다. 동물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후다닥 숲을 헤치며 내닫는 소리들로 솔뫼는 금방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동풍과 서풍이 맞부딪치면서 정신없이 검붉은 머리채를 흔들어대는 불길, 불길들…….

매캐한 연기가 온 산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자, 이쪽으로 와요.”

사슴네 가족은 아빠가 인도하는 대로 숲을 헤치며 달렸습니다. 하지만 잘 달리지도 못하고 밤길에 익숙지도 않은 아기 때문에 마음처럼 달릴 수가 없었습니다.

“건너편 산으로 가야해.”

“거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엄마 사슴은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할 수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린 모두 타 죽고 말거야”

“아기가 외나무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요?’

엄마사슴의 목소리에 울음이 배었습니다.

“할 수 있어요. 아니, 해야만 해.”

드디어 외나무다리에 닿았습니다. 이 다리는 건너편 계곡과 연결돼 있습니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아주 길었습니다.

다리는 벌써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매운 연기가 긴 혀를 날름거리며 이곳까지 달려와 동물들은 쉴 새 없이 재채기를 해댔습니다. 아기도 괴로워서 숨을 헐떡였습니다. 크고 작은 동물들은 서로 먼저 다리를 건너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아빠사슴도 재빨리 그 틈바구니로 끼어들었습니다.

“자, 어서!”

엄마사슴과 아기사슴은 아빠가 만들어 준 틈 사이에 겨우 엉덩이를 들이밀었습니다.

“깽!”

노루 한 마리가 발을 헛디뎠는지 계곡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모두들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계곡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커다란 입을 벌린 채 먹이를 노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가, 조심해야 한다.”

엄마사슴은 오직 아기사슴에 대한 염려뿐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중간에서 아기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걸음을 떼어놓았습니다. 처음으로 건너는 외나무다리에 가슴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악!”

갑자기 눈앞이 아뜩해졌습니다.

“아가!”

발을 헛디딘 아기사슴이 떨어지려는 순간 엄마사슴은 재빨리 앞발을 뻗어 아기를 받쳐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엄마 사슴이 그만 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아, 아가…….”

엄마사슴은 그만 아득히 검은 계곡 아래 떨어져 갔습니다.

“엄마! 엄마아!”

“여보…….”

슬픈 메아리는 잠시 계곡을 울렸습니다.

“안됐지만 할 수 없지. 빨리 가시오.”

뒤에서 재촉을 했습니다. 아빠사슴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아가, 얼른 등에 타렴. 꼭 붙들어야 한다!”

아기는 필사적으로 아빠 등에 매달렸습니다. 눈물이 아기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아빠사슴은 울지 않았습니다. 오직 아기를 살려야겠다는 마음만 불길처럼 타오를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건너편 계곡에 닿았습니다. 아빠사슴은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엄마사슴을 삼켜버린 계곡 앞에 서 있었습니다.

갑자기 귀청을 찢는 소리가 들리더니 헬리콥터들이 날아와 불타는 산 위로 날아갔습니다.

헬리곱터는 거대한 불덩어리로 변하는 산 위를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아빠!”

울음 섞인 아기의 목소리에 아빠사슴은 퍼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기는 무서움에 잔뜩 질려 파들파들 떨고 있었습니다.

“아가, 걱정마라. 아빠가 엄마 몫까지 널 돌봐줄게.”

우선 잠 잘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북쪽 솔뫼산은 아빠사슴에게도 낯설기만 합니다. 어두운 숲을 헤치며 아빠사슴과 아기사슴은 하룻밤 쉴 곳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나 워낙 많은 동물들이 피난을 나온 터라 빈 동굴은커녕 움푹 꺼진 바위틈까지 임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아빠는 칡덩굴 밑에 아기를 안고 누웠습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아니, 꿈이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아기는 품속에서 이리저리 뒤채더니 곧장 잠에 곯아 떨어졌습니다. 넝쿨 사이로 까만 하늘이 보이고 별들이 파란 눈을 깜박였습니다. 커다란 눈에 눈물을 가득히 담고 아빠 사슴을 바라보는 별이 꼭 엄마 사슴의 눈망울 같습니다.
아빠 사슴의 눈에서 주르르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앞으로 엄마도 없이 아기랑 쓸쓸히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습니다.

새벽이슬이 내릴 즈음에야 아빠 사슴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빠 사슴은 퍼뜩 잠을 깼습니다. 해는 벌써 산마루에 올라와 있는 데 옆에 있어야 할 아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가! 아가!”

주변 어딘가에 있겠거니 했는데 귀 기울여도 솔잎에 이는 바람소리뿐입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습니다.

아빠 사슴은 얼른 일어나 주변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혹시?”

짚이는 게 있었습니다. 아빠 사슴은 어젯밤 온 길을 되짚어 외나무다리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숲 사이로 서쪽 솔뫼산 봉우리가 드러났습니다. 산불은 잡혀있었지만 아직도 봉우리에선 검푸른 연기가 뭉클뭉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무성하던 숲은 온데간데없고 불길에 타버린 검은 살갗이 처참하게 보였습니다.

울컥 솟구치는 눈물을 참으며 아빠사슴은 외나무 다리주변을 살폈습니다. 하지만 다리 주변은 전 날의 아우성과는 달리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아가, 어디 있니?’

아빠 사슴은 뒤돌아서서 숲속을 무작정 헤맸습니다. 아기가 금방 어디선가 뛰쳐나올 것만 같아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습니다.

“혹시 우리 아기 못 보셨어요?”

만나는 동물마다 물어보았지만 모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빠 사슴은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헤매 다녔지만 아기 소식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목숨처럼 사랑하는 아내도 잃었는데 아기마저 잃는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사슴은 힘없이 바위 턱에 기대앉았습니다.

“아기사슴을 찾는다고요? 제가 봤어요.”

흰점 고라니였습니다. 서쪽 솔뫼산에서 이웃해 살았던 그 흰점 고라니가 틀림없었습니다.

“어디서요?”

아빠사슴은 벌떡 일어나 고라니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흰점 고라니는 고개를 외로 꼰 채 잠시 망설였습니다.

“어디서 우리 아기를 보셨냐구요?”

“저어…… 사람들이…….”

“사람들이?”

갑자기 깊은 절망의 늪 속으로 빠져 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아기를 헤쳤다면… 아, 이를 어쩌나.

“새벽녘이었어요. 샘을 찾아 가는 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달려가 보니 아기사슴이 덫에 빠졌더군요.”

“네?”

아빠 사슴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이 어디지요?”

“소용없어요. 벌써 사람들이 아기를 잡아가 버렸거든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사슴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가누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밤이 왔습니다.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은 아빠 사슴은 외나무다리 쪽으로 지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엄마 사슴이 자꾸 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양쪽 솔뫼산 계곡을 잇는 외나무다리 위에 달빛이 파랗게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아빠 사슴은 천천히 다리 위에 누운 제 그림자를 밟으며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갔습니다.

엄마 사슴이 떨어진 곳까지 왔을 때입니다. 갑자기 그 곳에 웅크리고 있던 작은 몸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빠 사슴은 깜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습니다.

“아빠!!”

“아니, 아가야, 네가……“

이게 꿈이 아닌가? 아빠 사슴은 눈을 비볐습니다.

“사람들이 날 잡아 가지고 가다가 산림을 보호하는 아저씨들에게 들켰어요. 그 아저씨들이 날 놓아 줬답니다. 아빠, 사람들 속엔 우리의 친구도 있었어요.”

아빠 사슴은 와락 아기를 끌어안았습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눈물 속에 엄마사슴의 미소가 어른거렸습니다.

달빛을 밟으며 아기를 등에 태운 아빠 사슴은 아주 천천히 다리를 건넜습니다.




[Copyright ⓒ 건강과 생명(www.healthlif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컨텐츠 사용 문의 및 저작권 문의

Untitle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