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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호

주인과 손님
  글·송영옥 (늘푸른교회 담임목사)

마르다와 마리아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영접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접대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고 불리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바쁘게 일하던 마르다가 예수님께 요청하였습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상관하지 않으십니까? 저를 도와주라고 동생에게 명령하소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들로 염려하며 걱정하고 있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그 좋은 쪽을 선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눅 10:38~42)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마르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혼자 여러 가지를 준비하느라 마음이 바쁜데 마리아는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를 타일러 보내주시라고 요청해도 예수님은 마르다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고 두둔하셨습니다. 마르다의 봉사는 너무나 당연하게 보이는데 예수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말씀 먼저 듣고 식사하는 편이 식사 먼저하고 말씀 듣는 것보다 나아서일까요? 말씀의 중요성 때문에 그럴까요?

봉사의 중요성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실천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17).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봉사가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마르다 같은 사람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한국 교회의 교인 수가 감소하는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헌신이 사라져가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됩니다. 부모의 헌신이 가정을 따뜻하게 하고 가정을 결속시키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성숙한 신앙인들의 헌신이 교회를 따뜻하게 하고 성도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헌신, 특히 여전도회원들의 헌신이 줄어들면서 교회의 따뜻함도 사라지고 교회의 세속화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다양한 사역자를 세우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려고 하신 것인데, 봉사의 일을 하게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고 하셨습니다(엡 4:11,12). 마태복음 7장 12절에는 대접의 중요성에 대해 기록되어 있고, 로마서 12장 13절에도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3장 2절에는 대접하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 41절에는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

마르다의 접대야말로 귀감이 될 만한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마리아가 택한 ‘좋은’의 헬라어 ‘아가도스’는 ‘탁월한’, ‘우수한’, ‘좋은’, ‘선한’, ‘훌륭한’ 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사물이나 인격의 탁월이나 중요성을 표현합니다. 마리아는 탁월한 선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왜 마리아가 탁월한 선택을 했을까요?
결혼한 지 10년 쯤 되던 해에 장모님이 오셨습니다. 충남 서천에서 배 타고 또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광주까지 오신 것입니다. 점심때가 다 되어 가는데 아내는 밥 차려드릴 생각도 않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걱정이 돼서 아내에게 장모님 배고프신데 식사 차려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장모님은 괜찮다고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장모님을 엄마로 받아들여 함께하는 것이었고, 나는 손님으로 받아들여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아내와 내 생각을 가른 가장 중요한 차이였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도 생각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고, 마르다는 예수님을 손님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시각의 차이는 곧 자기 위치의 차이, 행동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예수님을 주인(주님)으로 보면 자기는 종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손님으로 보면 자기는 주인이 됩니다. 종은 항상 먼저 주인의 말을 듣습니다. 마리아의 자세는 종의 자세입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주의 계집종이 듣겠나이다.”라고 행동으로 말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손님으로 보았기 때문에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자기 생각으로 행동했습니다. 주인 앞에 종은 듣는 존재가 되지만 손님 앞에 주인은 말하는 존재가 됩니다. 주인 앞에 종은 자비를 바라는 존재가 되지만, 손님 앞에 주인은 자비를 베푸는 자가 됩니다. 마리아는 말씀을 듣는 예수님의 종이었고, 마르다는 말하는 주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자비를 바라는 예수님의 종이었고 마르다는 자비를 베푸는 주인이었습니다. 

봉사의 차이

종은 주인의 말을 먼저 듣고 정확히 이해해야 주인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종이 되어 말씀을 사모하여 들은 마리아와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시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봉사한 마르다의 신앙 수준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1주일 전이자,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 마르다의 집에 또 오셨습니다(요 12:1-3). 마르다의 가족은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벌였습니다. 잔치할 때 마르다는 무엇을 하였을까요? 역시 잔치를 위한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여전히 예수님을 손님으로 맞아 손님에 대한 예를 갖추어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 발에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부었습니다. 노동자 1년 품삯의 가치를 예수님을 위해 바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마리아는 향유를 부어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하였습니다. 머리털로 발을 씻어드림으로 종의 위치에서 주인을 섬겼습니다. 눈물로 발을 적신 것은 죄인 된 자신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주님으로, 구세주로 알고 섬긴 것입니다.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눈물로 말했습니다. 흉내가 아닌 자신만의 큰 헌신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손님으로 맞은 마르다는 원망과 불평으로 말했습니다. 헌신에 있어서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큰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는 마르다의 신앙이 위험한데도 사람들은 마르다 같은 사람이 신앙 좋다고 말합니다. 식사시간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눈치 빠르게 봉사하는 마르다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해 주지 않으면 자기 신앙을 돌아보고 점검하기 쉽지만, 사람들이 인정해주면 자기 신앙이 잘못되었어도 점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치기도 어렵습니다. 마르다는 결국 일하다 시험 들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부었을 때 마르다는 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마리아는 그 때도 음식장만 하는데 돕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또 불평하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일순간에 허비한 마리아를 낭비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 칭찬받는 마리아를 질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중심이 되어 일을 하면 자기 틀을 만들어 놓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원망하고 불평하여 성도들과 불화하기 쉽습니다. 만일 마르다가 내성적인 성격이었을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너무 열심히 일해서 몸이 아픈 사람도 있지만 마르다와 같이 잘못된 신앙으로 봉사하다 아픈 사람들도 많습니다. 마르다의 신앙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신앙입니다.

주인을 주인으로….

우리도 마르다처럼 신앙생활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말하는 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주인이 되어 하나님을 손님으로 만들게 됩니다. 더 심해지면 내가 주인이 되어 하나님을 종으로 만들게 됩니다. 기도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과 상관없이 내 멋대로 기도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버립니다. 더 심해지면 나는 산 자가 되어 하나님을 죽은 하나님으로 만들게 됩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 하는 사람들을 보면 죽은 돌이나 나무토막에 대고 자기의 말을 합니다. 우상들은 죽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지 않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죽은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신앙에 건강과 생명을 주시지 않습니다.

건생 가족 여러분, 2011년 새해 하나님의 온전한 종이 되어 말씀을 듣는 자가 되고, 긍휼을 바라는 자가되는 탁월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의 신앙을 가지란 말이야!’ 라고 속삭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건강과 생명’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건강과 생명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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