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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호

별이와 감나무
  글·조임생 (동화작가. 시인. 여의도순복음교회 )

우리 집 별이가 집을 나가다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별이는 생후 두 달째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왔거든요. 별이는 지금 열 살입니다.
개 나이로 열 살이면 할머니라니 우습지요? 10년씩이나 한 집에 살았으니 정말 별이는 내 동생 같습니다. 그런 별이가 집 나간 지 열흘 째, 소식 깜깜입니다.
“우이동 집이 그리웠나 봐.”
별이가 없어진 날 엄마는 짚이는 게 있다며 젤 먼저 우이동 집에 전화를 하셨어요. 오랫동안 정 들이고 살던 집에서 이사할 때 식구들도 맘이 영 짠한데 별인들 오죽할까 하고요. 그런데 수화기에선 나무껍질처럼 버석거리는 목소리가 타타타닥 쏟아져 나왔습니다.
“개요? 아뇨, 오지 않았어요. 우리 식구는 개라면 그저 딱 질색입니다. 개털 풀풀 날리지요. 지저분하지요. 먹이려면 돈 들지요. 귀찮지요. 게다가 건강에 얼마나 나쁜데 그딴 개를 키웁니까? 개가 나갔으니 외려 잘됐네요.”
엄마는 저 쪽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다 말고 눈살을 찌푸리며 수화기를 귀에서 떼었습니다.
“별 사람이 다 있네. 인정머리라곤 좁쌀만큼도 없는 사람인가 봐.”
엄마는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별이에겐 유독 정성과 사랑을 쏟으셨어요. 별이는 혼자 아파트에 살다가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애견 해피의 아들이거든요. 외할머니는 꼭 자식처럼 해피를 사랑하셨답니다. 해피는 새끼를 네 마리 낳았는데 별이는 그 중에서 제일 막내래요. 조그만 강아지가 눈이 별처럼 반짝거려서 엄마가 별이라고 불렀답니다.
“진주야, 엄마, 회사 갔다가 올게.”
“별아, 집 잘 보고 있어. 엄마, 잘 다녀올게.”
엄마는 내게는 건성으로 말하면서 별이는 꼭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어주곤 회사에 출근했어요.
“씨이, 엄마는 별이 밖에 몰라.”
나는 별이가 얄미워 발로 한 대 걷어찼지요.
“깨갱!”
별이는 내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뒤란으로 도망갔습니다. 우리 집은 단독주택인데 뒤란에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지요. 별이는 이 감나무를 무척 좋아했어요.
별이는 오줌을 눌 때도 쉴 때도 꼭 감나무 아래를 찾아갔어요. 감꽃이 피면 멀거니 감나무를 한참씩이나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겨우내 메마른 가지에 뾰족뾰족 새순이 돋고 꽃이 핀다는 게 여간 신기하지 않다는 표정이었어요. 난 개가 그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습니다. 감꽃은 밤새 뚝뚝 떨어져 감나무 아래는 노란 꽃장판을 깐 것 같았지요. 별이는 엄마의 바느질 그릇 속 골무 같은 감꽃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기도 했습니다. 감이 다 영글어 볼이 빨갛게 물이 들면 별이의 눈빛도 잘 익은 감처럼 달콤해지곤 했지요.
감나무는 별이의 오줌을 먹고 더 튼튼하게 자랐어요. 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열린 감가지는 꽃보다 더 고왔습니다. 엄마는 그 가지를 툭툭 분질러 엄마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곤 했는데 별이는 그것을 무척 싫어했어요.
“끼깅 끼깅!”
별이는 엄마의 치마폭을 물고 엄마를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얘는 참, 무슨 개가 이렇게 욕심이 많지? 별아, 있는 건 서로 나누면서 살아야 하는 거야. 이렇게 감이 많은데 우리가 다 먹을 수도 없잖니?“
오래 정 붙이고 살던 우이동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 온 건 순전히 아빠의 직장 때문이었어요. 아빠는 우이동 우리 집과 아빠 회사가 있는 곳까지 교통체증이 심해 무척 힘들어 하셨거든요. 엄마랑 아빠는 이 집이 정이 들어 마음 아파 하셨지만 나는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이삿짐을 꾸리던 날 밤 별이가 보이지 않았어요. 뒤란에 돌아가 보니 감나무 밑에 가 엎드려 있는 거예요. 집으로 들어가라고 야단을 쳐도 소용없기에 그냥 내버려두었지요.
다음날 아침 일찍 이삿짐 차가 왔습니다. 아저씨들은 후다닥 짐을 들어내고 트럭에 싣기 시작했어요.
“진주야, 별이 챙겨야지?”
엄마의 말을 듣고야 난 별이가 생각났습니다. 
“별아! 어디 있니?“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별이가 보이지 않았어요.
“별아!”
난 방으로 벽장으로 마루 밑으로  별이를 찾아 다녔어요. 아차, 어젯밤 별이가 감나무 밑에 있었지? 뒤늦게야 그 생각이 나지 뭐예요.
아니나 다를까, 뒤란에 가 가보니 별이가 감나무 밑에 그냥 쭈그리고 앉아있더군요.
“너, 여기서 뭐하니? 우리 이사 가는 데. 그냥 두고 갈까 보다.”
나는 막 짜증을 냈지요. 그러자 별이가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지 뭐예요. 세상에, 개가 눈물을 흘리다니!
난 별이를 꼬옥 끌어안고 말해줬지요.
“별아, 넌 사람이 아니어서 아파트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 아파트는 살기가 참 편리한  곳이래. 나도 이제 침대를 가지게 됐단다. 창문엔 레이스가 달린 커튼도 있고 새 장롱도 들여놓으셨대. 너도 이사 가면 기분이 좋아질거야. 별아, 슬퍼하지 마, 응?  우린 더 좋은 데로 이사 가는 거란다.”
별이는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내 팔에 폭 안겨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아파트는 정말 내 맘에 쏙 들었습니다. 우리 집은 십오 층이라 전망도 끝내주었어요. 특히 밤에 창을 열고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크고 작은 불빛들이 출렁거려서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우리 집이 마치 눈부신 별들의 나라에 떠있는 기분이었지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기분도 멋졌어요. 까마득한 아파트 15층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스르륵 올라가고 스르륵 내려오잖아요.
게다가 내 방에는 침대랑, 분홍색 레이스 커튼이랑, 곰돌이가 그려진 하얀 장롱도 있어요. 난 갑자기 공주님이 된 기분이었죠.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어요.
“그렇게 좋으니?”
“당근이죠.”
아빠도 엄마도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덩달아 기분 좋은 표정이셨어요.
그런데 유독 별이는 이사 온 날부터 아무것도 먹으려들지 않았어요. 기운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눈을 내려 깐 채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별아, 별아! 얘가 왜 이러지?”
엄마는 애가 타서 어쩔 줄을 모르셨습니다. 치즈도 갖다 주고 우유도 갖다 주었지만 입에 대지도 않았어요.
그 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대청소하느라 잠시 현관문을 열어 놓았지요. 그 때 별이가 갑자기 후다닥  현관 밖으로 뛰쳐 나가버린 것입니다. 엄마는 청소기를 밀면서 우리 집이 15층 꼭대기니 별이가 곧 돌아올 줄 알았대요. 청소가 다 끝나도 별이가 돌아오지 않자 엄마는 그제야 걱정이 됐답니다.
엄마와 나는 15층 아파트에서 1층까지 다 찾아보고, 아파트 화단마다 뛰어다니며 별이를 찾아 다녔어요.
그런데 별이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거예요.
별이가 없는 집은 갑자기 텅 빈 것처럼 허전했습니다. 경비아저씨가 하얀 개 한 마리를 봤는데 찻길로 뛰어갔다고 하셔서 낯선 길을 여기저기 헤매 다니기도 했지만 별이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어요.
“이사를 괜히 왔나 봐.”
엄마가 후우 한숨을 쉬는 바람에 난 암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별이, 나쁜 자식. 신경질이 나니까 욕이 막 나오려는 걸 꾸욱 눌러 참았지요.
열흘째가 되는 날 오후였습니다.
따르르릉,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리는 거예요. 엄마가 부리나케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네? 아, 네네. 알겠습니다. 금방 갈게요.”
“엄마, 무슨 일이예요?”
“글세, 우이동 집 문 앞에 개 한 마리가 와 있다는 구나. 어서 가보자!”
우리는 급히 택시를 타고 우이동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저씨, 제발 빨리 좀 가 주세요.”
엄마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아저씨는 싱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거, 내사 빨리 가고 싶어도 길이 이래 막히는 데야 우짜겠능교.”
정말 그랬어요. 오늘따라 신호까지 자꾸 걸려 택시는 굼벵이처럼 느리게 갔습니다.
“차라리 지하철을 탈 걸 그랬어.”
엄마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마음을 졸이며 겨우 택시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옛날 우리가 살던 집으로 갔어요.
“이쪽으로 와 보세요.”
그 집 아줌마는 우리를 보자마자 뒤란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 털이 형편없이 엉키고 비쩍 마른 흙투성이 강아지 한 마리가 감나무 밑에 쭈그리고 있었어요. 아니  둥지를 틀고 있었어요.
“별아.”
엄마의 목소리엔 울음이 배었습니다. 잠자코 별이에게 다가가 더러운 털을 쓰다듬는 엄마의 손이 떨렸습니다. 엄마 목소리를 듣고 반짝 눈을 떴던 별이는 이내 스르르 눈을 내리감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개는 처음 봅니다. 아침에 우리아이가 학교 가려고 문을 여는 데 이 개가 문밖에 있잖아요. 저리 가라고 제가 막 야단을 쳤지요. 저녁에 아이가 학교서 돌아왔는데 그때까지 이 개가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더래요. 아이가 개를 안고 들어왔기에 내다버리라고 야단을 치다 생각하니 아줌마네 개인 것 같았어요. 개가 뒤뚱뒤뚱 뒤란으로 가기에 따라와 보았더니 이 감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꼼짝도 안 하더군요.”
나무껍질처럼 버석거리던 수화기 속의 아줌마는 그저 신기하기만 한지 연신 입을 쉬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동네서 여기가 어딘데 쪼그만 강아지가 집을 찾아와요? 어쩜, 신문에 다 날 일이네.”
아줌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엄마, 어떡해? 별이는 감나무랑 헤어지기 싫은가 봐.”
“글쎄 말이다.”
엄마와 나는 서로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보았습니다.
“저어…….”
아줌마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 개를 저한테 주실 수 없으세요? 우리 아이가 굉장히 좋아하는 데.”
“개를 싫어하신다면 서요?”
“전에는 그랬지만 이제 보니 개가 영물이네요. 한번 잘 키워볼게요.”
엄마는 나를 쳐다보셨습니다.
“엄마, 별이가 살 집인데 별이 더러 고르라고 해.”
엄마는 별이의 등을 쓰다듬으셨어요.
“별아, 그럼 넌 이 집에서 잘 살아야 돼. 네가 보고 싶으면 또 찾아올게.”
별이는 잘 알았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어요. 노란 감꽃 하나가 별이의 발 앞에 뚝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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