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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호

만나서 반갑습니다
  글·이장선 (안산장애인교회 담임 목사)
언젠가 길을 걷는데 하늘이 검게 되더니 비가 오더군요. 생각지 못한 터라 조금 발걸음을 재촉해 한 건물 현관으로 들어섰습니다. 소나기 같으니 잠시면 그치겠지 싶더군요.

비를 피하는 사람은 저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법 우산이 없어 찾아들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금 있자니 어느 젊은 아주머니가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더군요. 한 4-5살이나 되었을까? 아직 귀염 끼가 가시지 않은 모습이 초롱해 보였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비는 멎을 생각을 하지 않고 마냥 시간을 보내기엔 좀 그렇고…. 답답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예쁘장한 여자 아이가 엄마에게 충격적인 질문을 합니다.
‘엄마, 저 아저씨 다리 왜 저래?’

다른 질문 같았으면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을 텐데 저와 연관된 것이라 좀 신경이 쓰이더군요.

그 곳에 몸이 불편한 이는 저 혼자이니 틀림없이 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별로 이런 질문에 신경을 세우지 않습니다. 10대, 20대도 아니고,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깟 일로….

하지만 궁금하더군요. 그 엄마는 무엇이라 대답할까? 그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교양 있게 생기셨더군요. 저는 무슨 말이 나올까…. 호기심 어리게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 어린 딸아이에게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저 아저씨 엄마 말 안 들어서 저런 거야. 너도 엄마 말 안 들으면 저렇게 되는 거야. 알았지?’

기가 막혔습니다. 저는 졸지에 우리 엄마 말을 안 들어 다리가 불편케 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긴 제가 어머니 말씀을 안 듣긴 안 들었죠. 그렇다고 이렇게 심한 말을 듣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 때, 그 예쁘장한 여자 아이가 자기 엄마의 말을 되받아 더 어이없는 말을 합니다.
‘응, 그렇구나….’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냥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해 그냥 비오는 길을 걸었지요.
‘허…. 우리 엄마 말 안들은 것을 저 아주머니는 어떻게 알았지?’

언젠가 목욕탕을 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우나를 간 것이지요. 동료 목사들과 좀 쉬러 갔습니다. 저는 가끔씩 사우나를 갑니다. 몸도 씻고 마음도 씻고 겸사겸사 발걸음을 옮기지요.

옷을 벗고 우선 샤워를 하려고 목욕실로 들어갔는데 웬 아이들이 그렇게 왔는지 남자 아이들이 여기저기 눈에 밟힙니다. 저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나이 40이 넘어 무슨 신경을 이런데 쓰겠습니까?

그런데 한 남자 아이가 저를 자꾸 쳐다보는 겁니다. 4-5살 정도 되었을까 싶은 아이인데 저를 자꾸 바라봅니다. 처음엔 씽긋 웃어주며 넘어갔는데, 이 아이는 틈만 나면 저를 쳐다봅니다. 40이 넘었지만 신경이 쓰이데요.

그렇게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그 아이 아버지가 아이의 행동을 눈치 챘습니다.
어쩌다가 샤워기를 가깝게 쓰게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을 앉혀 놓고 연신 때를 밀어주더군요. 예전 우리 아버지가 제게 해주시던 대로….

아버지와 아들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듯했습니다. 그 대화 내용이 또렷이 들려옵니다.
자꾸 아이가 저를 쳐다보니, 그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그러더군요.
‘저 아저씨, 잘 생겼지?’
‘응…. 아빠’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아이가 그 대화 이후 더 이상 저를 쳐다보지 않더라고요.
저는 서너 칸 옆의 샤워기로 몸을 씻으며 지긋이 웃었습니다.
‘내가 한 인물 하긴 하지….’
앞 거울에 비킨 제 모습은 정말로 잘 생긴(?)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한 쪽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습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이리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큰 어려움 없이 자라, 공부를 잘 마치고, 더욱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두 딸아이가 있고, 많지는 않지만 좋은 친구들도 제 곁에는 있습니다. 잘 생긴 외모(?)에 키 170cm의 준수한 몸을 가지고 있지요.

저는 지금 크지는 않지만 결코 작지도 않은 저의 삶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놓고 사람들의 바라보는 시각은 꽤나 틀린 것 같습니다.

비단 이 문제는 저 하나 만의 문제는 아니고, 이 땅에 사는 많은 장애인들의 문제일겁니다.
장애인들을 보며, 부모 말을 안 들어서 그리 되었다고 바라보기도 하고, 그냥 가까이 함께 사는 이웃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어느 것이 맞을까요? 다 맞지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 틀릴 수도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가 한 광대에 대해 말을 했습니다. 한 광대가 있었습니다. 머리에 고깔모자를 쓰고, 몸엔 우스운 옷을 걸치고, 빨간 공을 코에 끼우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모양새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한 광대가 있었습니다.

이 광대는 열심을 다해 사람들을 웃겼습니다. 줄을 타기도 하고, 외발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웃기는 말과 행동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연습을 하려고 서커스 천막엘 갔는데, 아- 그만 불이나 타고 있는 겁니다. 광대는 깜짝 놀라 거리로 뛰어 나갔습니다. 광대복 차림 그대로 거리로 나가 도움을 구하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 서커스 천막에 불이 났어요. 빨리 오셔서 불 좀 꺼주세요. 도와주세요….'

거리의 사람들은 광대의 말을 듣곤 걱정을 하며 불을 끄러 갈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깔깔대며 웃는 겁니다.
'하하하, 저 광대 웃긴다. 오늘 서커스 공연이 있나보구나. 사람들을 모으러 왔네.’

광대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거리의 사람들은 믿지를 않고 웃기만 합니다. 결국 광대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맙니다.
우습죠? 그런데요. 키에르케고르가 이 글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사실보다는 감정을 크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그것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어떠냐에 따라 행동을 한다는 뜻입니다.

어찌 보면 참 위험하지요? 하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이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 땅에 사는 장애인들을 지금은 사실대로 봐주어야 한다고요. 감정만 가지고 바라보면 장애인들에게 커다란 실례를 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애인들, 그들은 몸이 불편한 우리의 가까운 이웃일 뿐입니다. 길거리에서도 만날 수 있고,목욕탕에서도 만날 수 있고, 백화점에서도 만날 수 있고, 학교에서도 만날 수 있고, 직장에서도 만날 수 있고….

독자 여러분이 「건강과 생명」, 월간 잡지를 통해 저를 만나듯이….

독자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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