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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호

혼자서 놀기
  글·최원현 (수필 문학가. 칼럼니스트. 사)한국수필가협회 연수원장. 청운교회 )

내게 수필을 공부하는 K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저 지금 남원 혼불 문학관에 와 있어요” 그런데 그 다음 문구가 의미롭다. “혼자서도 잘 놀아요” 그 한 마디에 왠지 가슴이 찡해 온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그녀의 슬픔 아픔 외로움의 냄새가 맡아진다. 거기에 내 상상이 보태지면서 그가 겪었을 마음고생들이 더욱 시리게 가슴에 와 닿는다.
혼자서 놀기, 문득 나도 이제 그 혼자서 놀기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4년여 앞서 직장을 그만 두면서 제일 두려운 것이 혼자서 지내는 것을 잘 해 낼 수 있을까였다. 물론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어서 직장을 정리한 것이지만 첫째 목적은 얼마간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자는 거였다. 휴식은 나를 쉬게 하는 것 아닌가. 쉰다는 것은 여럿 보다는 혼자의 일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40여년을 매일 매일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있다면 그건 견딜 수 없는 고독이요 소외요 고립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퇴직을 결심 하면서 하루나 이틀씩 휴가를 냈다. 그리고 집에서만 그 하루나 이틀을 지내보았다. 하루 정도는 지낼 만한데 이틀만 되어도 리듬이 끊기고 몸이 뒤틀리는 걸 느꼈다. 그래도 그걸 몇 번 더 해 보자 나름대로 이력이 생겼다. 혼자서 놀기, 그냥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걸 놀이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사람은 언제나 혼자인 존재다. 누구랑 같이 있어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사람이다. 커플도 부부도 사실은 함께인 것 같으나 결국 혼자다.
K는 남편과의 사이에 조금 문제가 있었던가 보다. 둘과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과 다른 한 대상과의 관계에서 그가 겪게 된 피해인 셈이다. 그냥 스쳐가는 바람처럼 생각해 버릴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에겐 그게 되질 않았나 보다. 무엇보다 신뢰에 금이 갔다는 것이 그를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심한 우울증까지 앓은 그, 그러나 그는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었고 그 바람 또한 바람으로 지나가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남아 문득문득 세상에서 나 혼자만 남겨진 것만 같은 불안한 외로움을 겪는 것 같았다. ‘혼자서도 잘 놀아요’ 그녀의 한 마디 속에 스며 있는 짠한 맛이 오래도록 내 가슴도 아프게 했다.
신문을 읽다가 정신과 의사의 칼럼을 읽었다. 나와 같은 나이에서 준비하는 그런 혼자 놀기가 아니라 젊은이들 얘기다. 고등학생이 식판을 받아들고 같이 앉아 밥을 먹을 상대를 못 찾는다거나, MT를 가야 할 대학생이 자신의 옆자리에 아무도 앉을 것 같지 않은 두려움에 포기를 한다는 내용을 보며 우리 사회 아니 시대적 몸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부모 세대 할아버지 세대에서 어느 누가 이러한 현상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루 종일 남편의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해도 잘 견뎌내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 아니었던가. 인터넷이 발달된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와 놀기를 하고 그러다 그걸 공유하게 되면서 혼자가 아닌 같이 놀기로 발전한다고도 한다.
그렇고 보면 혼자서 놀기는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수도 있겠다. 자칫 폐쇄공간에 갇힐 수도 있는 스스로에게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작은 창을 선물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발견이다. 그래서 ‘혼자서 놀기’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책 한 권이 소개 되었다. <혼자 놀기>라는 30대의 여성이 쓴 책이었다. 그런데 그 책의 내용 중 목차 곧 소제목들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혼자놀기 1 Surprise - 내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나에게
혼자놀기 2 Energy - 낯선 공간이 나를 춤추게 한다
혼자놀기 3 Like - 내 속에 꼭꼭 숨겨둔 마음상자 열기
혼자놀기 4 Feel - 누구에게나 혼자이고 싶은 날이 있다
혼자놀기 5 link -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마음이 마음에게
에필로그 - 혼자를 넘어서…60억 개의 혼자 놀기

그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면서 ‘나만의 새로운 강점을 발견하는 창의적 실험’이  혼자 놀기라고 했다.
어쩌면 요즘의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관계에 지쳐있을 수 있다. 그래서 소원하는 것이 ‘혼자 있고 싶다’인데 그러면서도 문제는 그 혼자 있는 방법 자체를 모른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여러 차례 갔던 국밥집인데 어제야 비로소 국밥을 제대로 먹는 방법을 배운 것처럼 말이다.
교회 친구가 예배 후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교회 식당에서 먹을 수도 있는데 왜 나가자고 하느냐 했더니 무조건 따라 오란다. 가보니 전에 소문을 듣고 몇 번 와 봤던 곳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냥 내주는 국밥을 그대로 먹는 게 아니라 그 국에 콩나물을 빡빡할 만큼 듬뿍 넣고 가위로 잘게 자른 후 그 콩나물국을 먹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콩나물을 많이 올려놓았나 의아해 하기는 했었지만 그걸 이렇게 넣어서 먹는 것인지는 미처 몰랐었다. 맛이 완전히 달랐다. 입맛이 도는데 이렇게 국이 맛있을 수가 없다. 같이 간 한 친구는 나보다 더 많이 왔었다는데 그 또한 이렇게 먹는 방법은 오늘에야 알았단다. 그냥 국밥이 맛있어서 유명한 줄만 알았지 이렇게 먹으니까 맛이 있어서 유명한 줄은 몰랐었던 것이다.
국밥 먹는 방법을 제대로 모르고 먹던 그 국밥과 방법을 알고 먹게 된 국밥 맛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렇게 배가 터지도록 먹었는데도 저녁 예배 후 아내와 돌아오는 길에 그 집 생각을 하자 다시 입맛이 다셔졌다. 아까 같이 갔던 한 친구는 아내가 며칠씩 어디 간다 해도 자기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다 했다. 한 끼는 사무실에서 해결하고 두 끼는 이 집에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고 보면 그 친구는 세 끼 먹기에선 혼자 놀기가 가능한 셈이다. 
사실 아내 없이 혼자 있게 되면 제일 곤란한 것이 끼니 걱정이다. 하루 이틀은 어떻게 해본다고 해도 며칠씩 길어지면 그건 문제 이상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남자는 더욱 혼자 놀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젠 나도 먹는 것 뿐 아니라 기간이나 삶의 내용에서도 혼자서 놀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만큼 나를 훈련하고 길들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삶도 놀이로 생각하는 것, 그게 가장 바람직한 혼자 놀이겠지만 그러면서도 문명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갖가지 이기(利器)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마저 빼앗아버린 채 기기(器機)와의 놀이로 몰아가는 것만 같아 가슴 한켠에서 쓸쓸한 해질녘의 바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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