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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호

기다릴께요
  글·이장선 (안산장애인교회 담임 목사)
얼마 전 퇴근해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데 저만치 전동 휠체어 한 대가 달립니다.
빠르게 달리는 많은 차들과 느릿한 외로운 전동 휠체어가 유난스레 비교가 되더군요.

‘위험스러운데….’
좀 가까이 가보니, 아-! 전동 휠체어를 운전하고 있는 분은 우리 교회 남자 집사님이셨습니다. 나이는 40대 중반이고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계신 분입니다. 몸이 점점 경직돼 전에는 잘 걸으셨다고 하는데 지금은 걷는 것이 몹시 불편스레 보이는 분입니다.

차창으로 보니, 얼굴이 벌게 보이는 게 한 잔 하신 것 같고, 입에는 담배 한 대가 물려 있었습니다. 전동 휠체어는 술이 취해 이리저리 흔들거리더군요.

그 모습을 본 제 마음은 참 괴로웠습니다. 당장이라도 내려서 그냥…. 하지만 그럴 수도 없고, 모른척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오른쪽 백미러로 보이는 술 취한 집사님의 전동 휠체어는 내 마음을 어지럽히기에 충분했습니다.

‘아… 정말….’

생각해보면 그 집사님은 그 전 날도 그리고 그 며칠 전에도 교회에 오셨었습니다. 잔뜩 술이 취해 전동 휠체어를 끌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오셨었죠. 저는 목양실에서 인기척을 하지 않았는데,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어눌한 말투에 술 취한 취객의 말이 뒤섞인 반갑지 않은 소리였습니다.

누군가가 타이르는 듯 애절한 목소리도 들려 왔는데, 목양실에 갇힌 제 마음은 그야말로 속상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도 아는 척 하지 않았었습니다.

차도에서 집사님을 뵌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었을까요. 다 퇴근하고 교회에는 아무도 없는 듯한데, 밖에서 쿵 소리가 납니다. 고무가 끌리는 듯 한 전동 휠체어 소리도 들리고요. 나가보니 그 집사님이셨습니다. 그 날도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겋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굵게 나더군요.

‘목-사-님-’
어렵게 어렵게 저를 부릅니다.

‘예-’
저는 좀 화가 났습니다.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가 문제가 아니라 거의 매일을 술로 사는 집사님의 모습이 그날따라 유난히 마음에 거스렸습니다.

‘목사님, 괴롭습니다. 제 마음 목사님도 모르십니다. 정말로….’
힘들게 한 마디씩 하시는 집사님의 소리를 저는 가만히 들었습니다. 반은 알아듣고 반은 짐작하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 듣고 그 분의 눈을 쳐다보았습니다.
벌건 눈이 그래도 무언가를 기다리는지 애처로워 보입니다.

‘집사님, 왜 이러세요. 거울을 드릴까요?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좀 보세요.’
저는 내친김에 며칠 전에 차도에서 본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전 집사님이 술에 취해 가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담배까지 물고 가시더군요. 전동 휠체어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도대체 왜 마음을 못 잡으세요?’
화가 난 저는 좀 거칠게 말을 했습니다.

그 집사님이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군요. 노려본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었는지 쳐다보는 그 집사님의 눈은 살아 있었습니다.

저는 말을 이었습니다.
‘기다릴께요…. 집사님이 돌아오시길 기다릴께요….’

그 순간이었습니다. 저를 노려보듯 쳐다보던 집사님의 빨간 눈이 잠시 흔들리더니 눈물이 쏟아집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주르르 흐르는 눈물에 콧물에…. 휴지를 들어 닦아 들이며 참 무어라 표현키 어려운 감정이 교차하더군요.

“싫은 소리해서 미안해요….”

“목-사-님-. 아닙니다. 기다리신다고 하셨나요?”

“예…. 예….”

“꼭 입니다…. 이제 저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생겼네요….”

“예…. 예….”
그 집사님은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기다리겠다는 말에, 약속을 지켜 달라며, 이제는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며 좋아하시는 그 분의 모습이 결코 작게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얼마나 사람대접을 못 받았으면, 얼마나 괴로웠으면….
누가 저 마음을 알까요.

저는 이 집사님의 모습을 비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술이 취해 자기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람이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는 지경까지 이른 이 분의 행동을 비호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욱이 취해서 담배까지 물고 위험스레 전동 휠체어를 끄는 이 분의 모습은 밉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뭐라 할까 싶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누가 저리 만들었는가?
저 분의 말에 누가 한 사람 진지하게 귀 기울여 줬던가?
비난만 하고, 타이른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상처만 주고….

그 명분 있는 비난자 중 하나가 바로 저 이기도 합니다.
저 분에게 새로운 세상을 소개하기 보단 새로운 친구가 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이 없어지면 멸망해 버리는 권리란 대체 어떤 것인가? 만일 힘 때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면 의무 때문에 복종할 필요는 없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을 격변 적으로 바꾼 사람 루소의 말입니다. 사회변혁을 이야기 한 만큼 루소는 외로웠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고독한 산책자’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친절과 상냥한 마음을 가진 한 여성의 사랑을 받았던 나는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고,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가를 이용해서 그녀의 가르침과 독서로서 소박하고 티 없는 나의 영혼에 한층 더 적합한 형태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짧은 기간에 얻었던 모든 것은 그 후 영원토록 변함없이 내 마음의 양식이 되어 주었다.’

나이들은 루소가 수십 년 전 바랑 부인과의 사랑을 회상하며 한 말입니다.
얼마나 행복했으면….

사랑은 고독하고 외롭고 스스로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힘이 있는 듯합니다.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 조금만 따뜻했으면 합니다. 비난거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비난받는 이유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다 잘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모두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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